지금 국내 미술시장은 파격과 실험이 아닌 모범답안을 산다

한겨레 2023. 6. 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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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ㅣ 시장 아닌 미술전문가 감식안이 필요한 이유
폴 세잔의 <앉아 있는 남자>, 1905~1906, Oil on canvas. 64.8×54.6㎝, 서구 모더니즘은 새로운 화상이 새로운 작가와 사조를 발굴하면서 시장과 함께 발전했다.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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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는 한 푼도 남지 않았고, 푸줏간에서도 빵집에서도 외상조차 주지 않습니다. …20프랑짜리 수표 한 장 보내주실 수 있는지요?” 1875년 7월 모네는 마네에게 이런 편지를 수차례 보냈다. 1877년에도 그는 초기 인상주의 작품의 수집가인 빅토르 쇼케에게 40~50프랑이라도 좋으니 그림 두어 점만 사달라고 애걸하는 편지를 보냈다. 1878년에는 친구인 졸라에게 아내가 아픈데 한 푼도 없다며 돈 좀 빌려달라고 애원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쯤 되면 완전 ‘상거지’라 할 수 있다.

미술사에서 인상주의는 1868년쯤 시점으로 기록하며, 미술사 연대기에 따라 우리는 그때부터 인상주의 작가들이 미술계 전면에 등장했으리라고 추측한다. 마치 지금 수억원에 팔리는 단색화가 1970년대에 등장했으니 그때부터 한국미술은 단색화가 주도했으리라고 믿는 것과 같다.

그런데 모네를 비롯한 인상주의 그림은 1890년 무렵에야 팔렸고, 인상주의가 프랑스 미술 전면에 자리를 잡아 고가에 팔리는 시기도 세잔·반고흐·고갱 등 이른바 후기인상주의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1910년대 이후의 일이다. 인상주의도 단색화도 대중이 받아들이고 고가에 팔리기까지 대략 반세기가 흘러야 했다.

새로운 사조와 대중의 수용

미술사에 기록된 시점과 대중이 그 가치를 받아들여 소비하는 시점 간의 차이는 정확하게 미술품을 사서 팔기까지의 보유기간, 즉 적정 투자기간이다. 만약 1877년 쇼케가 모네의 간청에 못 이겨 50프랑으로 모네의 작품 두세 점을 사서 반세기 동안 소장했다면 그의 후손은 그 작품들을 팔아 평생을 먹고살 수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1970년대에 박서보나 이우환의 작품을 사서 지금까지 갖고 있다면 수백 배의 시세차익을 얻을 것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작업의 시작과 이를 수용하는 데까지의 시간적 차이는 ‘시장’과 ‘전시장’이라는 두 공간과 전혀 상이한 두 전문가 집단을 낳는다. 시장에서 ‘팔리는’ 작가와 주류 미술계의 전시 현장에서 큐레이터와 평론가가 주목하는 작가는 아주 다르다. 따라서 시장 전문가와 주류 미술계 현장에 종사하는 전문가 역시 대개는 전혀 다른 인물이기 십상이다. 미술에 존재하는 이런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 번지수를 잘못 찾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예를 들어 경매시장에서 작품을 구매하려 할 때 주류 미술 현장의 큐레이터에게 자문하면, 그는 자신과 함께 활동하는 동시대 젊은 작가들이 배제된 그 시장과 관련해 딱히 해줄 말도 없고 시장에 대한 이해도 깊지 않을 것이다. 반면 미술시장이 활황이 되면 미술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갑자기 우후죽순처럼 나타난다. 이들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유명작가의 작품유형과 가격동향 등에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아는 미술지식은 미술사에 남은 이미 평가가 끝난 과거의 사조와 작가, 그리고 시장에서 팔리는 일부 작가에 대한 단편적 정보가 전부다. 이들은 미술전문가라기보다 시장전문가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당장 돈이 안 되는 전문지식은 대접받지 못한다. 특히 미술시장에서 작품을 사는 영향력(돈) 있는 컬렉터에게 작품가격도 모르는 전문가는 신뢰를 얻기 힘들다.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미술전문가는 도태되고 시장전문가만 남는다. 그래서 미술시장에서는 갤러리스트나 딜러, 아니면 경매회사의 스페셜리스트가 미술전문가로 대접받는다. 최근 시장에서 만나는 단색화의 아류들이 그렇듯, 이들이 권하는 동시대 미술은 여전히 반세기 전 안목에 머물고 있다. 이들은 1970년대 단색화가 등장할 때의 그 파격과 실험정신을 높이 사는 것이 아니라 단색화와의 유사성을 산다.

미술시장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면, 좋은 작가의 작품거래를 활성화해 미술의 전반적인 질적 향상에 간접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미술시장이 이런 기능을 수행하려면 미술사적으로 검증된 작가의 작품을 재평가함과 동시에, 동시대 미술현장에서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도모하는 미래의 인상주의, 미래의 단색화 작품을 마찬가지로 평가해줘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시장이 사는 동시대 미술은 50년 전의 시도를 여전히 답습하고 있다.

서구 모더니즘은 새로운 화상이 새로운 작가와 사조를 발굴하면서 시장과 함께 발전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을 뒤랑뤼엘이 독점하던 시절, 르누아르와 거래를 원했던 신규 화상 볼라르에게 르누아르는 세잔을 추천했다. 볼라르는 뒤랑뤼엘과 거래가 없던 세잔을 전속했고, 뒤랑뤼엘에게 배운 독일의 화상 카시러는 반고흐와 뭉크를 전속했다. 이후 볼라르는 다시 마티스를 발굴했고, 독일 출신 칸바일러는 피카소와 브라크의 큐비즘(입체파)을 후원했다. ‘팔리는’ 작가는 이미 기존 화상과 계약한 상황에서 새로 시장에 진입한 화상은 새로운 미술을 시도하는 작가들을 통해 자신만의 시장을 개발해야 했다.

모범답안만 따를 것인가

인상주의를 비롯해 세잔의 왜곡이나, 반고흐의 일그러진 화면, 피카소의 파편화된 큐비즘 등 동시대의 규범을 벗어난 새로운 실험은 하나같이 대중의 조롱에 직면해야 했다. 그럼에도 당시 서구 화상들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자신의 감식안을 믿고 대중의 몰이해를 무릅쓰는 위험을 감수했다. 반면 우리 시장은 서구 사조라는 모범답안을 뒤좇아 상대적으로 안정된 길을 걸으면서 시대를 앞서가는 감식안의 의미와 필요성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했다.

세잔이 남긴 글에 따르면, 화가는 단순한 칠장이로 비칠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대중이 아니라 극소수 사람을 위해 그림을 그려야 한다. 동시대의 유망한 젊은이들 역시 이와 유사한 신념으로 새 실험에 도전할 것이다. 이들의 모험이 결실을 보려면 반세기 앞을 내다보는 감식안에 의지해 위험을 감수할 화상과 수장가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술시장뿐 아니라 동시대 작가들의 전시장을 다녀야 한다. 또한 시장전문가가 아닌 미술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수개월, 수년의 단기보유가 아니라 수십 년의 장기보유가 요구된다.

이승현 미술사학자 shl2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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