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중국, 쿠바에 미 도청 기지 건설 합의”

미국 “정확하지 않다”면서도 여운 남겨
쿠바는 “완전히 거짓된 기사” 반발
미·중 관계 개선 도모에 변수 될 듯

로이드 오스틴(오른쪽) 미 국방장관과 리상푸 중국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이 지난 2일(현지시간)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개막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이 미국과 인접한 쿠바에 도청 기지를 건설하기로 쿠바 당국과 비밀 합의를 했다는 보도가 8일(현지시간) 나왔다. 쿠바는 해당 보도에 대해 “완벽한 거짓”이라고 부인했지만, 미국 정부는 “정확하지 않은 보도”라고만 말해 미묘한 온도 차를 보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기밀 정보에 정통한 미국 관리의 말을 인용해 “중국과 쿠바는 미국에 대한 새로운 지정학적 도전에 발맞춰 전자 도청 시설을 설치하기로 비밀리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그 대가로 경제난에 시달리는 쿠바에 수십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WSJ는 “쿠바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약 100마일(160.9㎞) 떨어져 있다”며 “만약 쿠바에 도청 기지가 들어선다면 중국 정보기관은 군사 기지가 대거 몰려 있는 미 남동부 전역의 통신을 훔칠 수 있고, 미국 선박의 통행도 감시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중국을 가장 중요한 경제·군사적 경쟁자로 간주하는 상황에서 미국 뒷마당에 첨단 군사 및 정보 능력을 갖춘 중국 기지가 생긴다면 전례가 없는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관리는 구체적인 도청 기지 예정지나 실제 건설에 착수했는지 등의 정보는 공개를 거부했다고 WSJ는 밝혔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WSJ에 “사안에 대해 언급할 수는 없다”면서도 “우리는 중국이 이 반구(서반구)를 포함해 군사 목적이 있을 수 있는 전 세계 인프라에 투자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여운을 남겼다.

그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선 “그 기사를 봤지만 정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부분이 정확하지 않은지는 밝히지 않았다.

쿠바 당국은 펄쩍 뛰었다. 카를로스 페르난데스 데 코시오 쿠바 외교부 차관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WSJ는 완전히 거짓되고 근거 없는 기사를 냈다”며 “우리에 대한 금수 조치와 봉쇄를 정당화하려는 기만이자 명백한 오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미 중국 대사관은 관련 질의에 답변하지 않았다.

WSJ는 “군사 전문가들은 중국이 쿠바 감청 기지 건설을 ‘정보 활동’을 이유로 정당하다는 주장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며 “미 군용기 또한 남중국해 상공을 비행하며 감시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선임 연구원 크레이그 싱글턴은 WSJ에 “쿠바 내 도청 시설은 중국이 미국 뒷마당에서도 똑같이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지 설립은 중국의 광범위한 국방 전략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신호”라며 “쿠바를 선택한 건 미국에 대한 의도적인 도발”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정부는 특히 중국이 자신들을 견제하기 위해 선택한 장소가 쿠바라는 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분위기다. 미국은 냉전 시기였던 1962년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배치를 시도하자 격하게 반발했고 전쟁 발발 직전까지 치달았던 경험이 있다.

중국이 실제로 이러한 계획을 준비했다면 미·중 관계는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WSJ는 “올해 초 미국 본토 상공에서 중국 ‘정찰풍선’이 발견된 이후 양측은 서로를 비난해왔다”며 “이번 의혹은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제기됐다”고 우려했다.

공교롭게도 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이르면 다음 주 중국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실제 방문이 성사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이던 2018년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한 이후 최고위급 인사의 방중이 된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