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내 몸인 듯 내 몸 아닌 내 몸 같은 너

이예훈 소설가 2023. 6. 9.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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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들과 야외 나들이 갔을 때의 일이다.

마침 인원수도 차 한 대로 가기에 맞춤한 네 명이어서 한 친구의 차에 모두 타고 대청호 근처로 이동했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의 차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마침 건너편에 있는 버스 승차장으로 내가 탈 버스가 들어오고 있다.

생각해보니 조금 전까지 한나절이 넘게 앉아 놀았던 카페 이름도, 20여 년 넘게 만나온 친구들의 전화번호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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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훈 소설가

얼마 전 친구들과 야외 나들이 갔을 때의 일이다. 마침 인원수도 차 한 대로 가기에 맞춤한 네 명이어서 한 친구의 차에 모두 타고 대청호 근처로 이동했다. 산책로가 예쁜 호수 위쪽으로 올라가 차를 대놓고 주변을 잠깐 산책한 후 정갈한 브런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오랫동안 모임을 피해 왔던 터라 반가운 마음도 컸고, 이야기보따리도 끝이 없었다. 차와 음식을 주문한 후 우리는 심신의 포만감을 한껏 만끽하며 오랫동안 잊고 지낸 수다 본능을 풀어 놓았다.

격의 없이 만나는 친구들과의 수다라는 게 그저 막혔던 봇물이 터지듯 앞뒤 맥락 없이 풀어놓아도 넉넉히 공감하고 호응하며 흥을 돋우게 되는 것이 아니던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니 어느 새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의 차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마침 건너편에 있는 버스 승차장으로 내가 탈 버스가 들어오고 있다. 헐레벌떡 뛰어가서 버스에 올라타고 승차 태그를 할 참인데, 주머니 속으로 밀어 넣은 손에 핸드폰이 잡히지 않는다. 평소에 늘 몸에 지니는 물건이다 보니 교통카드를 거기에 저장해 놓고 사용해왔다. 헉, 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과 함께 찌릿한 전류가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정신 차리자, 일단 자리에 앉아 지갑 속에 있는 카드를 꺼내 찻삯을 치르고 생각을 가다듬는다. 그것을 어디다 떨구었을까. 친구의 차에 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집에 가서 전화로 확인하면 되는데 친구의 전화번호가 몇 번이더라? 모르겠다. 핸드폰 속에 있다. 생각해보니 조금 전까지 한나절이 넘게 앉아 놀았던 카페 이름도, 20여 년 넘게 만나온 친구들의 전화번호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모두 그 안에 기록돼 있다. 이럴 수가, 마치 내 뇌의 일부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결국 이런 과정을 통해 핸드폰의 기능을 아예 몸 안에 내장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는 것이리라.

몸 어딘가에 칩을 심어놓고 제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게 될 미래를 상상하며 멍하게 앉아있는데, 다음 정거장에서 어떤 낯익은 여인이 마스크 안 썼다고 운전 기사에게 지청구를 들어가며, 손을 앞으로 내밀고 부득부득 버스에 오른다. 세상에, 내 친구다. 손에는 문제의 그 핸드폰이 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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