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냉전 때 웃었던 日경제, 新냉전 때도 웃을까[뒷북 글로벌]

이태규 기자 2023. 6. 9.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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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무역적자 증가율 8년來 최대
수입 中비중도 17년만에 최저치
산업 공급망 갖춘 친서방 日 각광
日 성장률 2.7% 깜짝 호조
"단기 탄력일뿐" 신중론도 나와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시민들이 도로를 건너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서울경제]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일본 경제가 반사이익을 볼 조짐이다. 일본 경제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최고조에 달했던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인 1960~1980년대 초호황을 누렸는데 일각에서는 현대의 신냉전 시대에 비슷한 수혜를 누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우선 미국과 중국의 무역지표가 동반 악화되면서 미중 갈등이 결국 양쪽 모두에 부메랑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7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4월 상품·서비스 등 무역수지 적자는 746억 달러로 전월보다 23% 급증했다. 전월 대비 적자 증가율은 2015년 3월 이후 8년여 만에 최고다. 절대 무역적자 규모도 지난해 10월 이후 6개월 만에 최대였다. 세부적으로 수입이 3236억 달러로 전월보다 1.5% 늘어난 반면 수출은 세계 경제 둔화와 달러 강세의 여파로 2490억 달러를 기록해 3.6% 줄어들었다.

특히 미국 수입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7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4월 기준 최근 1년간 미국 전체 상품 수입에서 중국산 비중은 15.4%로 2006년 10월 이후 최저치를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임 행정부 시절 도입한 전방위 대중 관세 조치를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어가는 등 양측의 갈등이 결국 이 같은 결과로 나타났다는 평가다. 반면 미국 수입에서 일본·인도·베트남 등 25개 아시아 국가의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4.7%로 2018년 20%대 초반에서 꾸준히 상승했다.

중국의 무역지표도 좋지 않았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5월 수출액은 전년 대비 7.5% 급락한 2835억 달러에 그쳤다. 특히 미국으로의 수출이 18.2%나 급감했다. 미국 국내 수요가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에도 중국의 대미 수출은 큰 감소세를 기록한 것이다.

이에 반해 일본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1990년대 초반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비용 효율화를 최우선으로 삼고 인건비가 싼 중국 등에 대규모로 공장을 지었다. 하지만 코로나19 때의 공급망 대란을 겪고 미중 신냉전 시대에 접어들면서 비용이 더 들더라도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쪽으로 기업들의 생각이 변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정치·외교적으로 완전히 서방 편에 있으면서 제조 능력도 뛰어난 일본은 최적의 나라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과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일본 제조업에 대한 외국 기업의 인수 물결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이 중국과 상당한 경제·교역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 투자하면 중국에 직접 투자하는 리스크는 피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익스포저를 적당히 유지할 수 있다는 점도 일본이 부상하는 이유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미국과 동맹국들은 희토류를 포함해 중국의 공급망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호주·캐나다·스웨덴 등과 함께 일본이 더욱 중요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본 경제 내부 사정을 봐도 꿈틀대는 모습이 확연하다. 8일 일본 내각부는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7%(연율 기준, 전 분기 대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연율 기준은 이런 추세가 1년간 지속할 경우의 성장률이다. 이는 지난달 나온 속보치(1.6%)는 물론 전문가 예상치(1.9%)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속보치에서 설비투자는 전 분기보다 0.9% 늘어난 것으로 나왔는데 이번에 1.4%로 크게 상향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세계 경제 둔화 우려에도 일본 기업들의 심리가 여전히 탄력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는 6일 “임금·물가가 오르기 어려운 환경에 조금씩 변화가 있다”고 평가했다. 수십 년간 임금·물가가 정체되는 디플레이션을 겪은 일본 경제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진단을 중앙은행 총재가 내놓은 것이다.

다만 일본 경제의 탄력성이 단기적일 수 있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야마구치 노리히로 선임이코노미스트는 “그동안 억눌렸던 수요가 계속 살아나고 기업들도 투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 몇 달 동안 경제가 회복력을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그동안 단행된 미국과 유럽 등의 금리 인상 효과가 나타나면서 올해 후반과 내년 상반기에 일본의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상보다 빠른 고령화, 막대한 국가부채 등도 일본 경제에는 구조적 걸림돌이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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