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오래된 기도는 새로운 기도다

관리자 2023. 6. 9.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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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손바닥을 하늘 쪽으로 펴고 그 위에다 오른 손바닥을 포갠 다음, 손등이 보이는 오른손을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무어라 중얼거렸다.

오래된 기도일수록 절실한 기도일 것인데, 그런 기도일수록 잘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니 진정한 기도는 오래됐으나 매번 '새로운' 기도일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이 또한 오래된 기도, 그래서 매번 새로운 기도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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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손바닥을 하늘 쪽으로 펴고 그 위에다 오른 손바닥을 포갠 다음, 손등이 보이는 오른손을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무어라 중얼거렸다.

소원을 비는 어머니의 앉은 모습은 어느 쪽에서 보아도 동그랬다. 새벽녘 머리맡에서도 그랬고, 봄날 밭머리에서도 그랬다. 밥을 지을 때, 어쩌면 걸으면서도 빌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기도 중에 이뤄진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가족과 이웃이 복되게 해달라고, 비와 바람이 적당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기도에는 역설이 있다. 오래된 기도일수록 절실한 기도일 것인데, 그런 기도일수록 잘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니 진정한 기도는 오래됐으나 매번 ‘새로운’ 기도일 수밖에 없다. 사랑과 평화에 대한 염원보다 더 오래되고 새로운 기도가 또 어디 있으랴.

정채봉의 ‘기도’에는 타인이 보이지 않는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자기 자신을 여유로운 삶의 주체로 거듭나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기도의 핵심이다. 지금 ‘나’에게 갈급한 것은 느림·관찰(교감)·사색·배움과 같은 능력이다.

흙과 더불어 살다 간 내 어머니의 기도를 전근대의 기도, 시멘트 위에서 살아가는 정채봉 시의 기도를 근현대의 기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두 기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둘 다 오래된 기도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찌하여 저 ‘풀밭 같은 부드러움’을 잃어버린 것일까. 아니, 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진 반납한 것일까. 안타깝게도 이 또한 오래된 기도, 그래서 매번 새로운 기도가 될 것 같다.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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