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철주의 옛 그림 이야기] 인정사정 볼 것 있는 화가의 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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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화가 조영석은 인물화에 빼어났다.
그의 그림에 풍속화가 많다.
조영석은 그림이라는 기예를 자랑하다 사대부 지체에 흠집이 날까 걱정했다.
그의 그림은 눈썰미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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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속사정까지 화폭에 투영
아이 앞에 앉은 농군 표정 ‘눈길’
배고픈 시절 아비의 행복이어라
18세기 화가 조영석은 인물화에 빼어났다. 그는 내로라하던 산수화가인 겸재 정선보다 손아래뻘이지만 은근히 겨루는 말을 던졌다. “강산을 그리는 데는 내가 못 미치겠지만, 털 하나 머리카락 하나 똑같이 그리는 솜씨는 그대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오.” 엔간찮은 자부심이 그의 작품에 배었다. 보잘것없는 관직에 있을 때는 임금에게 울뚝밸 섞인 대거리도 했다. 윗대 왕의 어진을 그리라는 영조의 명령에 “사대부로 태어나서 화원과 함께 붓을 놀리겠는가”라며 거절한 그였다.
그의 그림에 풍속화가 많다. 바느질이나 우유 짜기, 말 징박기나 나무 다듬기 등 세간 풍습이 자잘하게 나온다. 그런 풍속화를 묶은 화첩(畵帖)에 조영석은 ‘사제(麝臍)’라는 제목을 스스로 붙였다. ‘사향노루의 배꼽’이란 뜻이다. 화첩 이름이 ‘사제’가 된 이유가 웅숭깊다. 사향노루의 향은 배꼽에서 나오고, 향기가 멀리 간다. 포수는 향기를 맡고 노루의 위치를 안다. 사향노루가 죽는 건 향 때문이다. 조영석은 그림이라는 기예를 자랑하다 사대부 지체에 흠집이 날까 걱정했다.
그의 그림은 눈썰미가 좋다. ‘새참’이라는 풍속화를 불러내보자. 여름날 논밭에서 땀 흘리던 농사꾼들이 일손 놓고 새참을 먹는다. 필치로 보면 요즘 스케치처럼 쓱쓱 그어 형태를 잡은 습작 같다. 뭣보다 구도를 수평으로 길게 늘인 게 유난하다. 등장인물을 둘·둘·셋·둘씩, 네토막으로 나눠 보게끔 구성했다. 맨 오른쪽과 가운데 아낙네는 광주리에 담아온 들밥을 그릇에 나눠준다. 저마다 편한 자세로 맨땅에 앉은 모습이 재빠른 붓질로 되살아났다.
눈에 띄기는 맨 오른쪽 갓쟁이가 젓가락질하는 장면이다. 농군이 모인 자리에 웬일로 갓을 쓴 신분이 끼어들었을까. 보란 듯 독상을 받은 이분, 올 농사를 감독하는 마름일 성싶다. 밥 먹는 일군들이 어쩐지 그를 곁눈질하는 기색이다. 사연이야 어떻든 신분 차이를 드러냈지만 가지런히 포치(布置)하는 화가의 내심은 갸륵하다. 함께 먹으면 다 식구(食口)인데 밥상머리에 무슨 내남이 있겠는가. 그림에 먹색만 칠하자니 싱거웠을까. 여인네 치마를 물들였으되 빛이 바랜 푸른색과 어느덧 때 묻은 흰색에서 옛 자취가 아련하다.
정녕코 이 그림의 알짬은 따로 있다. 맨 왼쪽, 살짝 비틀어 앉은 농군과 그의 아들을 놓치면 후회한다. 밥그릇을 든 아비가 아들에게 밥을 먹인다. 아들은 머리를 들이밀며 연신 입을 딱 벌린다. 아비 표정이 어떤지 눈여겨보라. 뭐랄까, 행복에 겨워 사무치는 듯하다. 초승달처럼 웃는 눈매와 살짝 들린 입꼬리에서 번지는 아비의 내리사랑이 마냥 뭉클하다. 배고픈 시절이라 한술 밥에도 정나미가 넘친다. 단원 김홍도도 같은 소재로 그린 바 있다. 아낙이 자식에게 밥 대신 젖을 먹이는데, 이 어미 역시 사랑에 절절매는 낯빛이다.
조선의 이야기책 ‘어우야담’에 성종 임금이 그림을 평가하는 대목이 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숟가락으로 밥 떠먹이는 작품을 보고 모두 생생한 그림이라고 칭찬했다. 성종은 딱 부러진 한마디로 내쳤다. “사람이 어린애에게 밥 떠먹일 때는 자기 입도 따라서 벌어지는데, 이 그림은 입을 다물고 있구나.”
모양을 잘 그린다고 좋은 화가가 되는 게 아니다. 인정(人情)을 끌어내야 사정(事情)이 절실해진다. 화가 조영석은 대상에 오롯이 감응할 줄 알았다. 그의 붓놀림은 보는 이마저 입 벌리게 한다.
손철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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