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 갈래” 조심스런 권유에 자존심도 꺾었다… 지친 SSG 불펜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김태우 기자 입력 2023. 6. 9.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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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승원은 최근 5경기 8이닝에서 무실점 역투를 선보이고 있다 ⓒSSG랜더스
▲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문승원은 불펜의 다목적 카드로 맹활약 중이다 ⓒSSG랜더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지난 5월 11일 광주 KIA전을 앞두고 김원형 SSG 감독은 향수 선발 로테이션에 대한 질문에 “면담을 할 선수가 있다”고 확답을 아꼈다. 굉장히 조심스러운 어투였다. 처음에는 선수의 이름을 밝히기도 꺼렸지만, 결국 문승원(34‧SSG)의 이름을 털어놨다.

SSG는 올 시즌 초반 외국인 선수 애니 로메로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선발 로테이션이 비교적 잘 돌아가고 있다. 토종 에이스인 김광현에 외국인 에이스 커크 맥카티가 기둥 몫을 했다. 여기에 문승원 박종훈 오원석이 자리를 채웠고, 고졸 신인 송영진의 가세로 외국인 하나 없이도 6인 선발진이 돌아갈 정도였다.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할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로메로를 대신할 외국인 투수 로에니스 엘리아스가 5월 4일 계약했고, 5월 중순 엔트리 합류가 예정되어 있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송영진을 제외한다고 해도, 선발 로테이션에 6명을 두는 건 어느 시점에서는 낭비가 될 수 있었다. 게다가 SSG 불펜은 시즌 전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데다, 시즌 초반에는 특정 선수들에 부하도 걸리고 있었다. 누군가를 하나 빼 불펜으로 돌리는 건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김 감독은 당시 휴식차 2군에 내려가 있었던 문승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기량과 성적에서 밀린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스타일과 불펜 경험 등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불펜에 가면 ‘가장 잘할 수 있을 것’으로 본 선수가 문승원이었다. 그러나 선수의 생각을 존중할 참이었다. 만약 문승원이 선발로 남겠다고 하면 2군에서 선발로 던지게 하며 감을 찾게 할 구상이었다. 어차피 어느 순간에는 필요한 선수였다.

이 조심스러운 면담에서 문승원은 불펜행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어쨌든 팀에 도움이 되려면 1군에 있어야 했고, 1군에 있다면 보직은 크게 상관이 없다고 여겼다. 선발에 대한 미련이 남는 건 당연했지만 지금은 그것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5월 13일, 문승원은 ‘불펜 투수’로 다시 1군에 올라왔다.

선발과 불펜은 분명히 다르다. 경기를 준비하는 것 자체부터 차이가 난다. 경기를 임하는 방식도 다르다. 선발은 1~2점을 줘도 그 다음을 끌고 나가면 된다. 하지만 불펜은 1~2점을 주면 경기가 끝나버리는 상황이 많다. 마음가짐과 패턴부터 바꿔야 했다. 지난해 팔꿈치 수술에서 복귀한 뒤 불펜에서 뛴 경험은 있었지만, 문승원은 기본적으로 데뷔 당시부터 선발로 육성된 선수였고 또 선발로 뛴 선수였다. 그래서 그런지 초반에는 고전했다.

▲ 문승원은 여러 상황에서 등판하며 기존 필승조들의 부담을 지우고 있다 ⓒSSG랜더스

그러나 감을 잡기 시작하자 불펜에서 궂은일을 도맡으며 선전하고 있다. 문승원은 6월 들어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다. 6월 1일 인천 삼성전부터 6월 8일 광주 KIA전까지 5경기에서 8이닝을 던지며 1승1세이브2홀드 평균자책점 0을 기록 중이다. 경기 내용도 몰라보게 안정되고 있다. 이 8이닝 동안 피안타율은 단 0.074에 불과하고, 피OPS(피출루율+피장타율)도 0.249로 뛰어나다.

말 그대로 SSG 불펜의 애니콜이다. 기본적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의 필승조 몫은 물론, 근소하게 뒤지고 있는 상황, 접전 상황에서 멀티이닝이 필요한 상황 등을 가리지 않고 나간다. 8일 광주 KIA전에서는 마무리 서진용과 그 다음 마무리 순번인 노경은이 모두 휴식일에 걸리자 5-4로 1점 앞선 9회 마운드에 올라 경기의 문을 닫았다. 볼넷과 불운의 내야 안타도 있었지만 후속타를 잘 봉쇄하고 시즌 첫 세이브를 거뒀다.

기가 막힌 순간에 구세주가 나타난 그림이다. 필승 셋업맨인 노경은은 올해 벌써 30이닝을 던졌다. 연투 관리는 잘 되고 있지만 리그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불펜 투수 중 하나다. 역시 멀티이닝 소화가 가능한 최민준도 28⅓이닝을 소화했고, 고효준은 26경기라는 적지 않은 경기에 나갔다. 이기는 경기가 많다보니 사실 마무리 서진용의 출전 경기와 이닝 수도 적은 건 아니다. 이제는 서서히 지쳐 갈 단계다.

이런 상황에서 좋을 때는 좌우 타자를 가리지 않고, 하이 레버리지 상황에 대한 경험도 많으며, 멀티이닝 소화까지 가능한 문승원의 존재는 가뭄의 단비일 수밖에 없다. 서진용 노경은 고효준 최민준의 필승조에 문승원이 가세하면서 선발이 6이닝만 막아주면 이들을 돌려가며 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구위의 고점을 놓고 보면 노경은 최민준보다 못할 것이 없는 게 문승원이다. 상당수 이름을 지워버린 8일 경기에서의 불펜 운영도 결국 문승원이 중심이 있기에 그 구상을 짤 수 있었다. “불펜 투수도 할 수 있다”고 생각 하나를 바꾼 선수가, 팀의 전체 시즌 구상에 여유를 제공하고 있다.

▲ SSG 문승원 ⓒSSG랜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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