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상승·장기 가뭄·강우 변화… 통제 불능 산불 만들었다 [기후위기 몸살]

박영준 2023. 6. 9.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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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면적 40% 규모 불타… 기후변화의 현주소
加 410여건 산불 현재진행중
美 동부 1억명에 대기질 경보
뉴욕주 ‘건강비상사태’ 규정
캐나다·미국 산불 피해 확산
캐나다 겨울 강수량 적고 봄 건조 지속
숲을 더 빨리 뜨겁게 크게 타게 만들어
번개도 많이 발생시켜 산불 야기 많아
온난화에 제트기류 약화로 대기 정체
대기질 악화 상황 장기화 가능성 고조
뉴욕 항공기 이륙 지연·야구경기 취소

인간을 위협하는 기후변화 재앙이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발생한 캐나다 산불이 강수량 부족과 이상 고온으로 바짝 마른 나무 등을 태우며 역대급으로 번지면서 내뿜은 연기가 주변은 물론 미국의 대도시를 위협하는 것도 기후변화가 낳은 불상사다.

로이터통신, CBS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5월 캐나다 서부에서 시작된 산불은 7일(현지시간) 현재 동부 지역인 노바스코샤, 퀘벡 및 온타리오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캐나다 산불은 매년 5∼9월 사이 번개 등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발생하지만, 올해 산불 피해는 최근 20년 만에 가장 크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지난 7일(현지시각) 캐나다 산불로 연기가 자욱한 미국 뉴욕에서 자동차들이 월드트레이드 센터를 지나 웨스트 스트리트로 이동하는 모습이 한 건물 벽에 비치고 있다. 뉴욕=AP뉴시스
캐나다에서는 올해 들어 약 2290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이날 현재 410여건의 산불이 진행 중이고, 그중 230여건은 자연 강우 등이 없이는 진화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캐나다산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캐나다에서 올해 발생한 산불로 인한 피해는 지난 10년 평균보다 13배나 더 심각하다고 CBS가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주말까지 캐나다에서 12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이날 현재 산불로 남한 면적(약 10만㎢)의 40%에 해당하는 약 380만헥타르(3만8000㎢)가 캐나다에서 잿더미가 됐다. 산불로 발생한 연기 기둥은 캐나다와 가까운 미국 동부를 덮쳐 미국 인구 3분의 1에 달하는 1억명에게 대기질 경보가 발령됐다. 연기는 남부 앨라배마주까지 내려가 남동부 노스캐롤라이나·사우스캐롤라이나 주정부도 이날 대기질 경보를 발령했다.

뉴욕의 이날 대기질지수(AQI)는 ‘위험’ 수준에 해당하는 400을 넘기며 미 환경보호청(EPA)이 1999년에 대기질 측정치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 역대 최악으로 치달았다. 뉴욕시 보건국장은 뉴욕의 대기질이 1960년대 이후 최악의 수치라고 밝혔다.

EPA는 AQI가 151 이상일 때 모든 사람의 건강에 안 좋은 수준으로 보고 경보를 발령하는데, AQI가 300 이상이면 천식·심혈관질환 등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나 임산부, 고령 노인 등은 건강에 치명적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는 이날 대기질 악화 상황과 관련해 ‘긴급 위기’, ‘건강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뉴욕시를 포함한 주요 도시에 공기 중 미세입자를 95% 이상 걸러주는 N95 마스크 100만장을 무료 배포하겠다고 밝혔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포트 넬슨 남부에서 발생한 산불 연기가 지난 3일(현지시간) 하늘로 치솟으며 ‘화재적운’을 만들어내고 있다. 화재적운이란 산불로 뜨거워진 공기와 연기가 급상승하면서 뭉게구름처럼 하늘을 뒤덮는 현상을 말한다. 포트넬슨=로이터연합뉴스
역대급 산불의 원인으로 기후변화가 지목된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 장기간의 가뭄, 변화하는 강우 패턴 등이 통제 불능의 산불을 불렀다는 것이다.

캐나다는 지난겨울 강수량이 적었고 봄에도 건조한 기후가 이어졌다. 노바스코샤주의 경우 3∼5월 사이 강수량이 평년의 3분의 1에 불과했고 5월 말엔 폭염이 찾아와 지난해보다 10도가 높은 33도 기온을 기록했다.

통상 산불의 직접적 원인 중 절반 정도는 사람의 실화 등으로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건조하고 더운 날씨 또한 번개를 더 많이 발생시켜 산불로 이어진다고 CBS는 분석했다.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UCLA) 환경 및 지속가능성연구소의 다니엘 스웨인 연구원은 USA투데이에 “캐나다 중서부 대부분 지역에서 기록적으로 덥고 건조했으며, 최근에는 캐나다 동부도 마찬가지”라며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늦봄이나 초여름에 비가 오면서 잎이 무성해지는 등 숲이 녹화되는데 올해는 극도로 건조하고 높은 기온으로 녹화가 늦어졌다”고 덧붙였다.
캐나다에서 발생한 산불 연기가 미국의 동부 지역까지 확산하는 가운데 7일(현지시간) 한 남성이 방진 마스크를 쓴 채 뉴욕 거리를 걷고 있다. 뉴욕 로이터=연합뉴스
민주당 소속으로 뉴욕주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척 슈머 미 상원 원내대표도 “이번 캐나다 산불은 전례가 없는 일이며 기후변화가 이러한 재난을 계속 악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면서 “높은 기온과 극심한 가뭄은 숲이 더 빨리 타고, 더 뜨겁게 타며, 더 크게 타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기후변화가 야기한 열돔(heat dome)이 산불 확산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산불은 고온의 공기 덩어리가 고기압의 대기층 아래 갇혀 열기를 뚜껑처럼 가두는 현상을 뜻하는 열돔 아래에서 처음 발생했다. 열돔의 고기압은 제트기류와 강우를 우회시켰고, 햇볕이 내리쬐도록 하는 동시에 뜨겁고 무거운 공기를 끌어들였다. 결과적으로 일대가 건조해지면서 산불이 급속도로 번지는 원인이 됐다.

캐나다 산불은 현재 초기 단계로 향후 피해가 더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ABC방송은 미국 동부지역의 연기 기둥이 짙게 형성된 것과 관련해 지구온난화가 제트 기류를 약하게 만들어 공기가 더 오랫동안 정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비영리단체 클리메이트 센트럴에 따르면 미국 241개 도시 가운데 83%가 1973년 이후 대기 정체 일수가 증가했다. 캐나다 산불 영향에 따른 미국 대기질 악화 상황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트뤼도 총리와 통화하고 추가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화재 진압을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는 모든 가용 연방 소방 자산을 배치하도록 지시했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이상 고온 현상은 중미나 아시아 등지서도 확인된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카리브해 미국령 섬인 푸에르토리코에서 이상 고온 현상이 이어지면서 사상 최악의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푸에르토리코 수도 산후안 기온은 6일 사상 최고치인 35도를 기록했다. 7일 체감온도는 45도에 달했다.
사진=AP연합뉴스
동남아 지역도 200년 만의 폭염을 겪고 있다. 일반적으로 동남아에서는 4월과 5월이 연중 가장 더운 달이고 이후 우기가 이 더위를 식혀주는데, 올해는 이 기간 태국과 베트남 등의 국가에서 최고 기온이 모두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스페인도 이상 고온에 신음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스페인 환경부와 기상청은 올해 봄이 기록이 시작된 1961년 이후 가장 더웠으며 여름에도 평균보다 높은 기온을 기록할 것이라고 이날 밝혔다.

유엔 세계기상기구(WMO)는 이르면 7월 말 적도 부근의 수온이 올라가고 대기 온도가 본격적으로 상승하는 엘니뇨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따른 비정상적 폭우 등 기상이변이 우려된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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