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재부·복지부 기싸움에 표류하는 ‘담배 유해성분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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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 주류 제조사가 이달 초 주력 소주 제품의 영양정보 표시 라벨에 '제로 슈거'라는 활자를 덧썼다가 곤욕을 치렀다.
건강권 보장을 위서라도 성분 공개는 이뤄져야 하지만, 담배가 함유한 성분은 소비자가 알 수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17년 국내에 시판 중인 담배 5종류를 분석한 결과만 해도 폼알데히드, 벤조피렌 등 발암물질을 포함해 많게는 28종의 유해 성분이 검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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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 주류 제조사가 이달 초 주력 소주 제품의 영양정보 표시 라벨에 ‘제로 슈거’라는 활자를 덧썼다가 곤욕을 치렀다. 영양 정보 표시란을 마케팅에 활용, 식품 유형과 성분 정보 가독성은 해쳤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해당 제조사는 곧장 라벨 전량을 폐기했다.
현행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은 식품 등 제조사가 모든 제품에 원재료와 나트륨·당류 등 성분 정보를 반드시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소비자 알 권리’와 ‘건강권 보장’을 위한 조처로 피부에 닿는 화장품은 제조에 쓰인 모든 성분을 제품에 표시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소비자 알 권리 보장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제품이 있다. 바로 담배다. 담배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정한 1군 발암물질이다. 건강권 보장을 위서라도 성분 공개는 이뤄져야 하지만, 담배가 함유한 성분은 소비자가 알 수 없다.
담배사업법의 적용을 받는 담배는 표시 의무 성분이 니코틴, 타르, 비소, 벤젠, 니켈, 카드뮴, 나프틸아민, 비닐 클로라이드 등 8종뿐이다. 그나마도 니코틴과 타르를 제외한 나머지 6가지 성분은 함량 표시조차 없다. “발암성 물질이 들어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이 전부다.
담배에는 4000여종이 넘는 화학물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8종만 표기되는 셈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17년 국내에 시판 중인 담배 5종류를 분석한 결과만 해도 폼알데히드, 벤조피렌 등 발암물질을 포함해 많게는 28종의 유해 성분이 검출됐다.
담배의 성분이 공개되지 않는 데는 유해 성분의 종류와 양을 공개하는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탓이 크다. 2013년부터 의원들의 법안은 꾸준히 발의됐지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특히 감독권을 놓고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가 대립, 자동 폐기를 반복했다.
국회에 따르면 유사 법안의 주무 부처 중복 시 해당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그동안 기재부는 현행 담배사업법을 개정하겠다는 주장을, 또 복지부는 금연 정책을 담당하는 자신들이 성분 공개를 주도하겠다는 주장을 펴왔다. 이렇게 지난 10년간 12건 법안이 자동 폐기됐다.
문제는 올해도 담배 성분 공개를 두고 기재부와 복지부 간 알력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국회 복지위원회가 복지부를 주무 부처로 하는 ‘담배 유해성 관리법안’을 통과시키자, 기획재정위원회도 같은 내용의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달 16일 법사위 회의록을 보면 담배 성분 유해성 관리법안과 관련 기재부는 ‘담배 성분 등 담배 사업자에 대한 관리는 담배사업법 개정을 통해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반복했다. 이대로라면 담배는 또 성분이 공개되지 않은 제품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우리나라 정부의 부처 간 알력 다툼이 계속되는 사이 해외에서는 담배의 유해 성분을 공개하는 제도가 정착하고 있다. 미국은 2010년 이미 담배 회사들이 주요 성분과 600가지에 이르는 첨가물을 식품의약국(FDA)에 신고하도록 했다. 담배 성분의 유해성 연구도 해야 한다.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등에서도 비슷한 제도를 운용 중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지난해 말 2009년 이후 출생자는 평생 담배를 사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금연’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여기에는 담배 니코틴 허용치를 중독성이 없는 수준으로 낮추는 내용도 담겼다.
우리나라의 담배 성분 표시는 점점 더 허술해지고 있다. 최근 담배 회사들의 신성장동력으로 점찍은 궐련형 전자담배에는 ‘발암물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이 전부다. 니코틴·타르 함량 표시도 사라졌다. 정부의 직무유기에 국민 건강에만 비상등이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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