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폐허’ 40곳이 들려주는 인간의 탐욕과 오만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영국의 유명 대중문화역사가인 트래비스 엘버러는 낯선 장소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기가 막히게 풀어내는 이야기꾼이다.
이외에도 아이티의 혁명 영웅 앙리 크리스토프가 독재자로 변해 무수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건설한 상수시 궁전 이야기나 정신병자들을 감옥처럼 가두고 학대했던 이탈리아의 볼테라 정신병원 이야기까지, 폐허에는 인류 역사의 '그림자'가 가득하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버려지고 잊혀진 장소들 찾아 소개
방치됐던 원전 터, 쇠락한 광산…
흥망성쇠의 역사 속 ‘그림자’ 직시
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l 한겨레출판 l 2만3000원
영국의 유명 대중문화역사가인 트래비스 엘버러는 낯선 장소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기가 막히게 풀어내는 이야기꾼이다. 전작 <사라져가는 장소들의 지도>에서 그가 더는 여행할 수 없거나 곧 지도에서 사라질 곳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렸다면, 이번에 펴낸 <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에서는 버려지고 잊혀지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 폐허 40곳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폐허’를 굳이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이러한 장소들이 품은 이야기는 덧없음과 소진, 흥망성쇠, 산업화와 환경, 인류의 오만, 신뢰할 수 없는 기억과 기념에 관해 중요한 교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생생한 컬러 사진과 친절한 지도를 보며 그가 안내하는 폐허를 따라가다 보면 책 제목 그대로 인류의 ‘흑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탐욕스럽고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고 차별과 편견에 가득한.
폴란드 정부는 1982년 북부 발트해 연안 근처 자르노비에츠라는 마을에 국가 최초의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에너지의 80%를 석탄으로 충당했는데 천연자원을 절약하고 화석연료를 수출하기 위해 이 같은 계획을 세운 것.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1986년엔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인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했고, 이 여파로 원전 반대 시위가 거세졌다. 1990년 원전 개발은 결국 중단되고 만다. 30년 동안 녹슨 채 버려져 있던 원전 터가 최근 다시 차세대 원전 건설 기지 후보로 꼽히고 있다고 하니,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 수 있다.
책은 또 자원이 고갈되고 산업의 흐름이 바뀌면서 쇠락한 장소도 다루는데, 스웨덴 그렌게스베리 지역이나 볼리비아의 우유니 기차 폐기장이 대표적인 예다. 비금속과 철광석이 풍부했던 그렌게스베리 지역엔 300년 동안이나 광산 산업이 발달했지만 자원이 바닥나자 광부들도 이 마을을 떠났다. 데스메탈과 블랙메탈 같은 음악 축제를 열며 지역을 되살려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소금 사막으로 유명한 우유니 지역 외곽에는 ‘기차의 무덤’이 있다. 이는 19세기 말 볼리비아를 탐욕스럽게 착취했던 영국의 흔적이다. 당시 영국은 런던 주식시장에서 끌어모은 자금으로 칠레에서 볼리비아까지 이어지는 철도를 건설해 비료와 폭약을 제조하는 데 쓰이는 초석 또는 질산나트륨을 기차로 운송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직전 독일의 화학자가 인공 질산염을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 볼리비아에서 나오는 초석에 대한 수요가 줄었고 결과적으로 기차 또한 쓸모가 없어지게 됐다.
이처럼 한때는 영원히 번영하고 성공하고 성장할 것이라 생각했던 여러 지역의 흥망성쇠 이야기를 읽다 보면, 영원한 것은 없는데도 끝없이 탐욕만 추구하는 인간의 민낯을 직시하게 된다. 이외에도 아이티의 혁명 영웅 앙리 크리스토프가 독재자로 변해 무수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건설한 상수시 궁전 이야기나 정신병자들을 감옥처럼 가두고 학대했던 이탈리아의 볼테라 정신병원 이야기까지, 폐허에는 인류 역사의 ‘그림자’가 가득하다.
이색적인 주제, 길지 않은 분량으로 백과사전식 구성을 한 이 책은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구글 지도에서 저자가 소개한 곳들을 찾아 사진을 보며 함께 읽는다면 재미를 두 배로 느낄 수 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 경찰, 건설노조 압수수색…야간 문화제 ‘불법’ 규정
- “머리를 책상에 300번 찍게”…이동관, 아들 학폭 ‘외압’ 의혹
- “민주당 과반 의석 줬는데 자기 이익만 챙겨” 등 돌린 지지자
- 사라졌다는 꿀벌 “근무 중, 이상 없어요!”…정말이니?
- 후반 41분 통한의 실점…U-20 월드컵 4강서 이탈리아에 1-2패
- 강성당원이 ‘청원’ 좌지우지…지도부는 그 위에 올라타기만
- 뉴홈 ‘부모 찬스’ 막는다는데…부모 자산 제한 없는 물량 있다?
- “중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 이재명 만난 중국대사, 윤 정부 직격
- “우크라 댐 붕괴, 3억명 굶을 위기”…홍수가 1만㏊ 삼켰다
- 42살에 귀촌 준비…200명 눌러앉은 은모래 해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