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득 칼럼]불안 장사 '올인' 민주당, 과학을 왜 때리나
한국과학기술원(KIST)탄생의 주역이자 2대 과학기술처장관을 지낸 고 최형섭 박사(1920~2004년). 대전 국립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 안장된 그의 묘비에 새겨진 유훈 ‘연구자의 덕목’만큼 이 땅의 과학기술계 후학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는 가르침은 흔치 않다. 과학기술의 불모지였던 1960년대 한국에서 누구보다 연구의 자율성과 환경 조성에 앞장서며 과학기술 행정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그가 전하는 금과옥조의 계명이기 때문이다. 다섯 문장의 가르침은 ‘학문에 거짓이 없어야 한다’는 것으로 시작해 ‘아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로 끝난다.
집념의 연구자, 나라를 위해 필요한 것은 대통령 앞에서도 당당하게 의견을 제시한 소신파 장관으로 기억되는 그를 후학들과 언론인, 주변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과학자로 꼽고 정부가 과학기술유공자의 명예를 헌정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고인의 이름을 언급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국가와 사회가 과학을 대하는 태도와 시각에 대한 그의 외침을 알리기 위함이다. 회고록(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과 각종 기록에 따르면 그는 “과학을 이해하고 기술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며 “과학기술 행정은 언제나 연구자들을 위한 조정과 지원이 원칙”이라는 생각을 누차 강조했다. 연구자로서 후배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유훈에서 당부했다면 한편으로는 과학기술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국가와 사회가 지켜야 할 도리에도 분명한 목소리를 냈다고 볼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시찰단의 활동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현지를 방문하고 돌아온 시찰단이 기자 회견을 갖고 “주요 설비가 정상대로 설치돼 있음을 확인했다”는 등의 결과를 설명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국민 기만”이라며 국회 차원의 청문회와 국제해양법 재판소 제소를 으름장놓고 있어서다. 출발 전부터 “일본에 들러리서는 격”이라면서 시찰단의 의미를 뭉갠 ‘마이웨이’식 주장이 한 치도 바뀌지 않았다. 뭐라고 하든 시찰단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시찰단이 추가 작업을 벌이고 있어 최종 결론 때까지 국민적 불안과 의구심은 계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민주당 등 야권의 언행과 태도는 과학에 대한 도전이요, 시찰단 겁박과 업무 방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원자력 안전, 환경 규제 분야에서 적어도 20~30년 이상 외길을 걸으며 현장 확인과 실험에 매달려 온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모욕이다. 현장에 날아가 이 잡듯 문제점을 뒤지고 캐려 한 전문가들을 허수아비로 매도하고 이들의 노력을 쇼로 취급해도 되나. 과학기술자들을 정치적 계산에 따라 줄 서는 집단으로 보는 건 아닌지 천박한 시각이 개탄스럽다. 표 계산과 눈치 보기로 살아온 정치꾼들의 ‘갑질’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후쿠시마 오염수가 “핵폐기물”이라며 “우물에 독극물을 퍼붓는 것과 다름없다”는 독설을 쏟아냈다. 하지만 과학을 상대로 한 이 대표와 야당의 싸움은 이제 승패가 가려질 것이다. 민주당이 여당 시절인 문재인 정부 때도 후쿠시마 오염수의 안전성을 크게 우려할 것 없다는 조사 결과는 여러 차례 밝혀진 바 있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이 대표와 민주당의 극언이 잠시 재미를 본다 해도 ‘진실’이 무기인 과학 모욕주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애국자 코스프레는 정치인들의 특기다. 그러나 애국심은 이들만의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자들의 가슴속 애국심이 더 뜨겁고 진실될 수 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어민들 다 죽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어민 단체인 한국연안어업인중앙연합회는 최근 “우리 바다와 수산물을 진짜 오염시키는 장본인은 왜곡된 정보로 국민을 선동하는 정치인, 언론, 가짜 전문가들”이라고 직격했다. 과학을 우롱하고 불안 장사에 앞장섰던 정치인들은 반성하고 사죄해야 할 일이다.
양승득 (tanuki26@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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