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KBS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 논란...정쟁 대신 사회적 합의 필요해
찬성 여론 높지만 방송 길들이기 논란도
"위기의 공영방송 체제…KBS도 자성해야" 지적도
대통령실의 KBS TV 수신료와 전기료 분리 징수 추진 방안에 대해 김의철 KBS 사장이 직접 반발하고 나서면서 수신료 분리 징수를 둘러싼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수신료 분리 징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러 차례 반복돼 왔지만 정권에 따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각 정치 세력들의 입장이 달라졌고 본질적 문제에 대한 논의 없이 사그라들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단순히 여론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정책 추진 대신, 공영방송의 필요성과 지배구조, 재원마련 방안 등을 꼼꼼히 따져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권 따라 오락가락 ‘정치권의 공영방송 압박 수단’으로
월 2,500원인 TV 수신료는 방송법에 따라 텔레비전 수상기를 소지한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부과·징수된다. 지난 1994년부터 한국전력이 전기요금과 함께 징수해 왔다. 김 사장은 8일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6,200억 원 정도인 수신료 수입은 분리 징수 시 1,000억 원대로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렇게 되면 국민이 부여한 공적 책임을 이행할 수 없는 상황으로 직결된다"고 주장했다.
수신료는 공영방송의 근간을 이루는 재원이지만, 수신료의 징수 방법이나 액수 등에 대한 입장은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돼 왔다.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의 경우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분리징수 법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집권 후 이명박 정부 때는 이 계획을 접었고 오히려 수신료 인상을 추진했다. 현재 윤석열 정부의 분리 징수안에 반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도 야당(새정치민주연합)이던 박근혜 정부 때는 수신료 분리징수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정권에 따라 언론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만 했다"며 "(공영방송이) 싸움의 도구나 전리품으로만 여겨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윤 정부는 집권 여당이 수신료 분리 징수를 추진한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일각에선 '공영방송 길들이기' 아니냐는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기도 한다. 전국언론노조는 지난 7일 성명을 통해 "어용방송 만들기를 위한 협박극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인질극"이라고 비판했다.
"절차적 문제 존재" 장기적 로드맵 필요해
시청료 분리 징수를 찬성하는 여론이 높은 것은 분명하지만 대통령실이 96.5%가 찬성했다며 그 근거로 삼은 국민참여토론 절차를 놓고도 논란이다. 이 토론은 지난 3월 9일부터 한 달간 진행한 국민 제안 사이트를 통해 추천·비추천 버튼을 누르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중복 투표 참여도 막지 않았고 일부 보수 유튜버 등이 참여를 독려해 여론전을 벌이기도 했다.
KBS는 해당 토론을 부치며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법원 판례를 누락한 점도 문제 삼고 있다. 지난 1999년과 2008년 헌법재판소는 수신료를 특별부담금으로 규정했다. 분리 징수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인정한 결정이다. 2016년 대법원 역시 현행 수신료 징수가 적법하다고 결론 내렸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는 "수신료는 단순히 TV를 보느냐 안 보느냐가 아니라 그 사회에 공영방송이 필요하느냐 아니냐와 연결되는 것"이라면서 "자본으로부터 독립돼 활동하는 공영방송에 필요한 재원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체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공영방송 수신료를 둘러싼 논의는 전 세계적으로도 진행 중이다. 영국 공영방송 BBC도 2028년 수신료 폐지를 추진 중이다. 다만 영국의 경우 폐지 이후 재원 마련을 어떻게 할 것인지 대안을 고민할 기간을 뒀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단기간 찬성·반대 논리로는 답이 없다"면서 "공영방송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전 세계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영방송의 정의부터 재원 마련 방안까지 체계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의 책무 다했나' KBS도 자성해야
시청료 분리 징수에 대한 높은 찬성 여론을 직시하고 KBS도 이를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KBS 보도는 공정성 논란에 휩싸인 데다 콘텐츠 경쟁력도 떨어진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KBS는 "한민족방송, 국제방송, 장애인 방송 등 여러 공영 채널을 운영하고 재난방송 주관방송사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시청자들에게 수신료의 가치가 와닿지 않는 게 현실이다. 심석태 교수는 "단순히 권력과 맞서 싸우는 독립성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사회 통합적 관점에서 정파적인 것으로부터 독립된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며 "특정 정파로 쏠린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은 대한민국 공영방송 체제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근아 기자 ga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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