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엔 호주머니 없어” 모교 고려대에 12년간 84억 기부

정해민 기자 2023. 6. 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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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건설 창립자 유휘성씨 “남은 재산 200억도 고려대 주고 떠날 것”
지난달 2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크림슨 아너스클럽' 기부자 명예의 전당 앞에서 대학에 84억원을 기부한 유휘성(85)씨가 웃고 있다. /김지호 기자

“자식들한텐 ‘내가 쓰고 싶은 데 쓰고 죽을 테니 몇 푼 남아 있는 돈 상관하지 말라’고 얘기했지. 수의에 호주머니가 있나? 없잖아.”

지난달 2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전날 모교를 위해 10억원을 기부한 유휘성(85)씨는 줄곧 얼굴에 띠고 있던 미소를 거두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씨는 이번을 포함해 지난 12년 동안 총 84억원을 고려대에 기부했다. 2011년 고려대가 신경영관 건물을 세우는 데 10억원을 기부한 것이 시작이었다. 2017년엔 오랫동안 살아왔던 서울 서초구 아파트를 판 돈 24억원을 고려대 기초과학연구기금에 기부하기도 했다.

유씨가 재산을 모교에 기부하기로 결심한 건 “후배들은 돈 걱정 없이 학업의 뜻을 펼쳐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유씨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충북 진천에서 상경한 뒤 어렵게 공부했다. 유씨는 ‘후손들만은 가난 걱정 없이 학업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기부를 이어왔다. 그는 고려대뿐만 아니라 모교인 충북 진천중과 서울 성북구 경동고에도 각각 교문과 천체망원경을 기증했다.

고려대 상학과 58학번인 유씨는 “모두 가난하던 시기에 대학에 입학해서 공부하려다 보니 이 집 저 집 다니며 과외하면서 겨우 학비를 마련했다”고 회고했다. 그가 고려대에 입학한 1958년은 6·25전쟁 직후로 바로 직전까지 미군이 학교에 주둔했었다고 한다. 유씨는 1965년 대학을 졸업하고 원양어선을 보내 참치를 잡는 수산 회사에서 일하면서 부를 쌓았다. 그는 “남태평양 사모아섬이 근무지다 보니 한국에서 오가려면 왕복 두 달을 배에 있어야 해서 고생했다”고 했다. 수산 회사에서 번 돈으로 1970년 건설 회사 ‘조흥건설’을 세웠다. 유씨는 “행복하거나 후회된다고 생각이 드는 때가 별로 없다”며 “돈을 좀 번다고 해서 행복했던 것도 아니고, 후회할 일 만들지 않도록 평생을 잔잔하고 꾸준히 장사해 지금까지 온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생각 때문에 기부 역시 그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려대 기부 담당자들은 “유씨가 기부하는 모습은 매번 특별했다”며 “거액을 기부하면서도 마치 취미인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고 했다. 2015년 유씨는 월곡동 자택에서 40분 떨어진 고려대까지 점퍼 차림으로 걸어와 10억원어치 수표를 건네 교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2019년에도 기부 담당자와의 점심 자리에서 갑자기 10억원 수표를 내밀었다.

유씨는 기부 담당자인 고려대 대외협력처 직원 김은경(60)씨와도 2015년부터 8년째 좋은 인연을 맺고 있다. 2015년은 유씨의 두 번째 기부가 있었던 해다. 고려대 철학과 83학번으로 유씨의 대학 후배인 김씨는 “선배님은 자택에 세간살이가 기본밖에 없을 정도로 검소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 때는 후한 분”이라며 “기부자로서 만났지만 배울 점이 많아 존경하는 마음이 크다”고 했다. 김씨와 동료들은 아침마다 고려대를 산책하는 유씨에게 ‘고려대 수호신’이라는 별명도 붙여줬다고 한다.

유씨는 이날도 캠퍼스를 둘러보며 “도움을 받은 후배들이 나중에 또다시 기부를 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 재산을 모교인 고려대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 재산인 200억원 정도를 고려대에 기부하기 위한 유언 공증을 추진 중”이라며 “재산을 저승에 가져가지 못할 바에는 신세를 많이 진 고려대에 전부 줄 계획”이라고 했다. 유씨는 “미국의 워런 버핏은 세 자식에게 일부만 나눠주고 수십조원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며 “우리나라도 사회에 환원하는 기부 문화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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