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모씨가 선택하는 생물다양성
이웃 동네에는 철거 예정지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리고, 건물마다 노란색 출입 금지 테이프가 덕지덕지 둘러졌다. 그린벨트를 해제해서 들어선다던 그 아파트 단지 공사가 본격화되나 보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고 했을 때 그린벨트가 또 사라지는구나 생각하면서 씁쓸했다. 그린벨트 해제 계획을 보며 도시 팽창이나 녹지축 훼손을 걱정하는 사람이 흔치 않을 테니 아마 우리 동네에서는 혼자서만 씁쓸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웃 동네에 사는 엄마 친구 아무개는 보상금을 수십억 받게 될 거라고 했다. 수십억이라. 나는 과연 누군가 나의 낡은 집을 수십억에 사준다고 한다면 기후위기 시대에 그린벨트가 제공하는 생태계서비스를 지키겠다며 뿌리칠 수 있을까. 내 직업이 주로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 일이라지만, 예상컨대 채 하루를 고민하지 못하고 수십억을 택했을 것 같다.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선택이 쌓여 수도권 그린벨트는 하나둘 아파트 단지가 되어간다. 어찌된 일인지 국가 균형발전에 쓰여야 할 균형발전 특별회계마저도 수도권의 주요 지점을 연결하는 광역급행철도(GTX) 건설에 쓰이고 있다. 비수도권 국회의원들은 자원과 사람을 빨아들이는 수도권 위주의 예산 집행계획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비수도권 국회의원들은 다른 전략을 택했다. 전국 지자체를 특별자치도로 만드는 방법이다. 특별자치도는 각종 개발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조항으로 채워졌다.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이 환경규제를 벗어나 아파트, 도로, 산업단지, 케이블카 등 더 많은 회색 인프라를 만들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일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위기감과 보통의 욕망이 만들어낸 전략이다. 물론 수많은 저 개발계획이 전국의 모든 아무개에게 수십억의 돈을 안겨주지는 않겠지만 그중 누군가에게는 이익을 남길 것이다.
개발의 사유화된 이익 뒤편에서 자연 자산의 손실은 사회화된다. 급속한 성장의 끝자락에서 만난 저성장 국면에서 아직 가라앉지 않은 개발 욕망이 폭발했다. 규제와 명분만으로는 환경을 보전하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다.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손실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숲과 강이 제공하는 생태계서비스를 가능한 수준에서 조목조목 따져 손실에 따른 책임을 개발자에게 부담하도록 하고, 보전 노력을 하는 지자체와 민간에 적절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만 필요 이상의 개발이 제어될 수 있다.
최근 에콰도르는 갈라파고스 제도의 해양보호를 조건으로 약 1조5000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탕감받은 사례가 있다. 코스타리카는 숲을 보전하는 토지 소유주에게 금전적 보상을 하는 생태계서비스 지불제도를 운영 중이다. 자연보전이 국가와 국민에게 구체적인 이득이 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지구적 생물다양성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아이디어도, 자원도 지구적인 수준의 전환과 확대가 필요하지만, 한국에서 자연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생태계서비스 지불제도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우리 사회의 보통의 아무개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해야 한다.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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