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오무사’를 찾아서
“오무사는 전구를 판매하는 가게였다. 얼핏 지나가면서 우연히 볼 수 있는 곳이 아니고 그런 가게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갈 수 있는 가게였다. 오무사에 가보자.”(‘백의 그림자’ 중)
황정은의 소설 ‘백의 그림자’에 등장하는 ‘오무사’는 천구백칠십년대 이후로 손을 본 적 없는 낡고 어두컴컴한 전구 가게로 소설 속 배경인 전자상가의 철거와 함께 사라진다. 나는 십년 전에 읽은 소설 속 ‘오무사’를 요즘도 종종 떠올린다. 내가 사는 곳이 구도심이기 때문일까. 낡고 어두컴컴한 상점들 앞을 지나갈 때마다 오무사를 향해 걷는 기분을 느낀다.
오무사를 찾아가는 길은 조금 복잡하다. 나처럼 공간 감각, 방향 감각 없는 사람은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정성껏 읽어야 한다. 넷플릭스 영화였다면 5초 안에 쓱 훑고 지나갔을 그 풍경을 작가는 얼마나 공들여 설명하는지…. 드럼통을 놓고 순대를 찌는 아주머니나 회중시계와 낡은 손목시계를 진열해 두고 졸고 있는 남자, 간판도 테이블도 없이 오직 배달만 가능한 백반집도 지나는데, 그런 곳을 찾아가려면 무슨 앱을 써야 하나? 그렇게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오무사가 보인다. 노인이 전구를 파는 곳, 노인이 사라지면 수십년 동안 쌓아둔 전구도 함께 사라지는 곳. 얼핏 지나가면서는 볼 수 없고, 그런 곳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갈 수 있는 곳. 철거로 사라질 운명이지만, 오무사는 거기에 있다.
저녁을 먹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나의 오무사를 찾는다. 늘 걷던 길이 아니라 어두침침한 골목을 누비며, 5초 안에 쓱 훑고 지나가는 배경이 아닌, 오롯이 존재하는 것들을 공들여 바라본다. 오래전에 엄마 심부름을 다녔던 골목에 드문드문 등불을 밝힌 곳이 보인다. 모든 것이 너무 쉽게 사라지는 시대에 여전히 거기 ‘있음’으로 존재를 증명하는 것들, 나의 오무사들.
소설 속 오무사는 끝내 사라지지만, 현실의 ‘오무사’들을 발견하게 한다. 오무사가 있는 곳들을 자꾸 돌아보게 한다. 그렇게 상실 속에서 사는 존재들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것의 온기를 건넨다.
신유진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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