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엘리베이터에서 누리호를 생각하다
점심 약속이 있어 모처럼 서울로 외출했다. 언제든지 바깥으로 나와 흙을 만질 수 있는 곳에서 알록달록 빌딩숲으로 들어서니 어리둥절하다.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광고들 사이로 이상한 나라에라도 온 기분이다. 회전문이 빙글빙글 돌면서 무슨 상품처럼 회사원들을 토해낸다. 점심시간, 허기가 몰려올 땐 사람들도 한꺼번에 몰리며 공중에서 땅으로 나가는데 벼슬하는 것처럼 힘이 든다. 모두들 인간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제작되는 느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금융기관과 대사관이 밀집한 빌딩. 출입하려면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증을 받아야 했다. 도시화를 추구한 인류는 스스로를 첨단에 올려놓고 위험에 처하기를 즐기는 고약한 고질이 있다. 어렵게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누리호의 뒷뉴스가 자막으로 흘러나왔다. 설렁탕집은 호황이었다. 대기하는 줄이 제법 길었다. 푸짐한 국물에 공깃밥을 마는데 문득 드는 생각 하나. 지금 식당에서 이 쌀밥이야말로 가장 오래된 고대가 아닐 수 없겠다. 취사도구나 그릇의 변화가 무쌍하다지만 벼농사의 기원을 생각하면 그렇다는 이야기.
커피는 친구 사무실에서 마시기로 했다. 다시 타는 엘리베이터.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동작을 취하다 보니 엘리베이터 안은 못자리처럼 빽빽하다. 불룩한 배를 내밀고 고개를 들고 저마다의 층수를 바라보는 승객들. 간격이 좁아지며 가깝게 지내야 한다. 실제로 어깨를 맞대기도 한다. 옆사람의 꼴딱 넘어가는 숨소리. 아마 나는 쉰 깍두기 냄새를 얼마간 풍겼으리라.
고흥의 바닷가에서 기립하였다가 우주의 기원을 쫓아 날아간 누리호는 지금 어디쯤 있을까. 순식간에 발사된 누리호가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는 뉴스 이후 벌써 까맣게 잊혀졌는가. 누리호는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나의 머리 위로 점점 수렴된다. 이젠 밤낮없이 항상 내 위에 있다. 지금 나를 태운 엘리베이터는 만만히 볼 첨단기기가 아니다. 이 우주만물의 관계를 똑부러지게 설명하는 상대성이론. 저 어려운 이론을 이해하는 데 아주 유용한 도구이기도 하다.
무중력의 공간인 듯 휴대폰의 신호도 끊기면서 문득 드는 생각 하나. 도시에서 약속에 쫓겨 바쁘게 안개처럼 흘러다니다가 엘리베이터를 타면 누구나 홀로 기립한 존재가 된다. 이 지붕을 뚫고 언젠가 솟구쳐야 할 작은 우주선처럼!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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