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반복되는 ‘부조리극’ 언제쯤 막 내릴까
가끔씩 만나 속마음을 터놓곤 하던 동창으로부터 며칠 전 전화가 왔다. 대충 안부를 묻고 나더니 그가 한마디 툭 던졌다. “요새 나라 돌아가는 꼴이 우리 대학 다닐 때 같아….”
장황한 설명이 뒤따랐지만 그 친구의 얘기는 시위를 통제하고 노조를 탄압하는 행태가 1980년대와 비슷하다는 내용으로 요약됐다. 군 출신과 안기부가 장악했던 요직이 검찰로 대체됐을 뿐, 언론 길들이기나 정부에 반대하는 의견에 ‘색깔론’을 씌우는 걸 보면 ‘전두환 시대’로 퇴행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고도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이 지난 요즘 우리 사회 전반은 그 친구의 말처럼 과거 보수정권 때와 매우 흡사한 양상으로 흐르는 모습이다. 최근 이슈로 떠오른 ‘집회의 자유 제한’ 문제부터 살펴보자.
지난달 23일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의 1박2일 대규모 집회를 강한 어조로 비난하자 시위를 대하는 경찰의 대응이 거칠어졌다. 수년째 이어오던 야간 문화제는 ‘불법 집회’로 매도됐고, 한동안 자취를 감춘 캡사이신 분사기가 시위 현장에 다시 등장했다. “어떤 불법 행위도 방치·외면하거나 용납하지 않겠다” “경찰과 관계 공무원들은 엄정한 법 집행을 해줄 것을 당부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에 여당과 경찰은 앞다퉈 대책을 내놓았다. 야간 시위 금지 추진, 집회 관리에 공적을 세운 경찰 포상과 특진 얘기가 나왔다. 집회 해산 훈련을 실시하고 불법 시위 전력이 있는 단체에는 집회·시위를 제한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급기야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고공농성하던 한국노총 간부가 경찰에게 곤봉으로 무차별 구타를 당하는 장면까지 목격됐다. 이렇게 가다간 조만간 광화문광장에 ‘석열산성’이 세워지고 물대포가 슬그머니 출현할지도 모를 일이다.
노동계 탄압은 이미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120시간 노동시간”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더니, 정부 출범 후에는 ‘노조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화물연대가 집단 운송거부에 들어가자 업무개시명령으로 노조를 압박했고, ‘건폭몰이’ ‘노조 회계장부 투명화’를 통해 고삐를 더욱 죄었다. 파업에 강경 대응한 뒤로 지지율이 올라가자 툭하면 노조를 두들겨팬다. 노동자를 ‘조폭집단’ ‘공갈협박범’ 취급하는 데 분노한 건설노동자 양회동씨는 자신을 불살라 항거했다. 노조의 파업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한 사측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이 예고돼 있다. 정부의 노조 탄압에 반발한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를 탈퇴했다. 정책은 실종됐다. ‘주 69시간제’를 서둘러 내놨다가 반발에 부딪히자 금세 꼬리를 내렸다.
임기를 두 달 앞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을 면직처리하고 MBC 뉴스룸을 압수수색한 것은 이명박 정권의 언론 장악과 닮았다. 지난해 9월 윤 대통령의 미국 순방 중 발생한 비속어 논란 장면을 내보냈다는 이유로 동남아 순방 때 MBC 취재진에 ‘전용기 탑승 불가’를 통보하는 치졸함까지 연출했다. KBS에 대해서는 ‘수신료 분리 징수’를 무기로 압박하고 있다. 경영진과 보도 프로그램이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식이라면 친정권 인사들로 언론계 요직을 채워나가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무엇보다 소통의 단절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토론과 의견 수렴은 배제한 채 특정인의 의견이 ‘지고선’인 양 통용되는 현상은 독재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어떤 정책이나 사고, 인식의 옳고 그름은 한 사람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와 다른 견해, 정부에 반대하는 의견은 용인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읽고 심취했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고 반증할 자유를 완전히 인정해주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의견이 자신의 행동 지침으로서 옳다고 내세울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이다.”
‘자유’를 입에 달고 사는 윤 대통령이 ‘반론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긴 하는 걸까.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은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는데 이를 체감하는 시민이 얼마나 될까. 최루탄 연기 자욱했던 30여년 전 대학 캠퍼스를 눈물 콧물 쏟으며 다닐 때의 기억이 마치 요즘 일같이 느껴진다. 2023년 한국 사회는 그 시절처럼 부조리와 비효율이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조홍민 사회에디터 dury12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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