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죽음 껴안기
2008년 신학생 생활을 마치고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신부가 됐다. 보통 서품을 받은 새내기 신부들은 경험이 풍부한 주임신부님과 함께 살며 사목적 소양을 배우고 그의 사목활동을 돕는 보좌신부 역할을 한다. 나 역시 새로 부임한 주임신부님과 함께 1년을 지냈다. 당연히 그분과 지내며 미운 정 고운 정이 많이 쌓였다. 사실 신부님은 정말 무섭고 엄한 분이셨다. 나는 당신 차를 잘못 세차했다는 이유로, 연수 때 집을 안 지켰다는 이유 등으로 나이 서른 살에 야단을 맞곤 했다. 물론 신부님은 정도 많은 분이셨다. 항상 보좌신부를 먼저 생각해 주시는 마음, 자전거를 함께 타며 느낀 진한 형제애, 신자들과 하나 되는 친교의 가족 캠프 등 좋은 추억도 많이 쌓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3년 전부터 신부님이 담낭암에 시달리셨고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호전되기보다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된 상황이었다. 큰 병마와 싸우신 신부님은 결국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셨고 며칠 뒤 편안히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한창 사목해야 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삶과 죽음을 관장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어떤 인간의 힘으로도 거부할 수 없었다.
신부님은 투병 중에 이런 고백을 하신다. “그분만이 하실 수 있는 일, 재촉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다만 두 손 벌려 기다리고 받아들이기만 할 뿐입니다.” 3년간의 고통, 그리고 예고된 죽음,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고통을 우리는 헤아릴 수 있을까? 무덤덤하게 그 죽음을 껴안는 모습, 그저 주님께 자신을 의탁하는 모습, 놀랍기만 했다.
죽음은 마치 이 세상에서 내가 제외되는 느낌, 씁쓸한 퇴장, 무기력한 존재가 돼 버리는 순간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어쩌면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어 제자들에게 당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 주신 것처럼 죽음은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나의 자리를 내어 주는 일일 수 있다.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누군가에게 그늘이, 누군가에게는 먹음직스러운 열매로, 누군가에게는 잠깐 쉬어 갈 수 있는 의자처럼 말이다.
분명 신부님도 기꺼이 당신의 자리를 내어 주셨다고 느껴진다. 특별히 당신께서 심어 놓은 작은 씨앗들, 즉 사제로서 진정 나를 위한 삶이 아닌 하느님과 신자들을 위해 헌신한 삶이 마치 나무 줄기가 돼 누군가의 그늘이 돼 주셨고, 누군가에게는 열매가 돼 필요한 양분이, 누군가에게는 의자가 돼 하나의 쉼터가 돼 주셨다.
우리는 죽음을 기꺼이 껴안을 수 있는가? 어른들 대부분은 어린 자녀들이 임종을 앞둔 사람 곁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방어막을 치곤 한다. 죽음이라는 불확실한 세계를 두려워하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탄생과 성장’, ‘생명의 변화와 죽음’이라는 자연의 순리를 어찌 간과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뿐인 삶이고, 그 삶의 마침이 있다면 순간순간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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