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한의말글못자리] 명문선집과 문학관

2023. 6. 8.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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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서당에서 글을 가르치는 방법은 베끼기와 외우기였다.

그것은 지금도 언어능력을 기르는 데 효과가 있다.

어디까지 문학이라고 보든, 하여간 한국에서 언어능력을 기르기 위해 외우고 베낄 '명(산)문'을 모은 책, 곧 '명문선집'은 추천할 만한 것을 찾기 어렵다.

그때 문학관에서 기리는 '언어예술가'의 글을 전시하고, 지역 주민들이 그것을 외우고 베끼는 행사를 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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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서당에서 글을 가르치는 방법은 베끼기와 외우기였다. 그것은 지금도 언어능력을 기르는 데 효과가 있다. 좋은 표현을 앎은 물론, 단어를 바꿔 넣으며 새 말을 만들어내는 기본형식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명문을 외우고 거듭 베끼다 보면 말하고 쓰는 능력이 늘게 마련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요, 능력을 기르려면 되풀이 연습해야 한다.

이때 모범 삼을 훌륭한 글을 뽑아 모은 책이 필요하다. 그런 책이라면 대개 ‘명작선집’을 떠올리는데, 그것은 시, 소설 등의 문학 작품집이다. 그들도 대상이 되지만, 충분하지 않다. 일반 언어능력 기르기에 더 적합한 글은 ‘산문’ 갈래지만, 그 책에는 산문의 하나인 수필, 그중에도 경수필만 조금 실려 있을 뿐이다. 문학의 범위를 좁게 잡은 셈이다.

어디까지 문학이라고 보든, 하여간 한국에서 언어능력을 기르기 위해 외우고 베낄 ‘명(산)문’을 모은 책, 곧 ‘명문선집’은 추천할 만한 것을 찾기 어렵다. 이 점 하나만 보아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말글의 가치와 그 사용 능력 향상에 등한한지 알 수 있다. 걸작을 모은 교과서가 없으며 ‘명문장가’, ‘명논설가’가 존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15세기 조선 시대에 서거정을 비롯한 여럿은 왕명에 따라 삼국 이래의 시문(詩文)을 뽑아 ‘동문선’을 펴냈다. 이 책은 18세기까지 두 번 더 편찬되었는데 모두 국가적 사업이었다. 출판 형편이 훨씬 나아진 지금, 언어문화의 정수인 명문선집이 없는 현실은 정말 답답하다.

전국에 ‘문학’관이 많이 있다. 협회에 가입한 숫자만도 백 곳 가깝다니 ‘문(文)을 숭상했던’ 나라다워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평론가 몇을 빼고는 주로 이른바 순수문학 작가들을 기념하며, 그것도 기능이 한정되어 있다. 이 또한 문학의 범위를 좁게 잡고 언어문화 전반의 맥락에서 보지 않는 소치이다.

지자체마다 온갖 축제를 벌이지만 문화행사는 적다. 그때 문학관에서 기리는 ‘언어예술가’의 글을 전시하고, 지역 주민들이 그것을 외우고 베끼는 행사를 열면 어떨까. 명문선집을 내려면 국립국어원이나 내년에 개관한다는 국립한국문학관 같은 데가 나서서 오래 작업해야 한다. 그것을 기다리기 막막하니, 문학관들이 우선 그런 일이라도 벌였으면 한다.

최시한 작가·숙명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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