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고향, 깊고 깊은 바닷속엔365일 ‘눈꽃’이 내린다[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

기자 2023. 6. 8.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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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바다 눈

‘10월의 마지막 밤’ 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어떤 대중가요 하나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줄 안다. 그렇다면 혹시 5월의 마지막 날과도 자연스레 연관 짓게 되는 게 있는지 묻고 싶다. 모르면 몰라도 대부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것 같다. 1994년 11월, 유엔해양법협약 발효로 해양 자유 이용 시대에서 해양 분할 경쟁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해양을 둘러싼 국제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나아가 21세기 해양 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5월31일을 법정기념일인 ‘바다의날’로 제정했다. 택일은 통일신라 시대에 해상왕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한 시점과 일치하고, 국민 축제를 열기에도 좋은 때라는 판단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간추린 해저 탐사의 역사

인류 최초의 잠수정 여행은 1930년
비브·바턴, 4년 뒤 ‘바다 눈’ 첫 목격

검푸른 바닷속엔 무엇이 살고 있을까?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인류는 심해에 관한 상상을 확인하고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섰다. 1840년대 초반, 영국의 박물학자 에드워드 포브스(Edward Forbes)는 대략 수심 500m 해저를 훑어서 생물 시료를 채취했다. 그런데 어렵사리 건져 올린 시료에는 특별한 생물은 고사하고, 생명체 자체도 별로 안 보였다. 그는 이 실망스러운 결과를 깊은 바다 밑바닥은 생물이 살기 어려운 환경임을 나타내는 증거로 해석했다. 햇빛이 없으니 광합성이 불가능해 기본적으로 먹거리가 부족하고, 높은 수압과 낮은 수온도 생물에게 호의적이지 않다고 여겼다. 30여년 뒤에 찾아올 반전을 전혀 모른 채로 말이다.

1876년 5월24일 영국 남부 지방의 한 항구에 특별한 배 한 척이 들어왔다. 1873년 성탄절 직전 출항했던 챌린저호(HMS Challenger)가 그 주인공이다. 이 해양 조사선은 3년 반 동안 지구 둘레(약 4만㎞)의 세 배가 넘는 12만5000여㎞ 바닷길을 누비며 말 그대로 글로벌 해양 탐사 활동을 벌였다. 130여곳의 해역에서 퇴적물과 암석을 채취하면서 새로 발견한 생물이 4700여종에 달했고, 그 당시 최첨단 기술이었던 음파탐지법으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해구의 존재도 처음으로 확인했다. 챌린저호 탐사의 기념비적 성과는 장장 16년(1880~1895)에 걸쳐 정리되어 50권짜리 대작 <챌린저호 항해의 과학 탐험 결과 보고서(Report on the Scientific Results of the Voyage of H.M.S Challenger)>로 전해오고 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고 강산이 세 번 바뀌어 갈 즈음 바닷속 탐사를 위해 깊은 바다에 뛰어든 용감한 과학자가 나타났다. 미국 생물학자 윌리엄 비브(William Beebe)는 잠수 기구를 공 모양으로 만들면 수압을 분산해서 바다 깊이 들어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그 아이디어를 동료인 엔지니어 오티스 바턴(Otis Barton)에게 전했다. 바턴은 두께 3.8㎝ 강철판으로 지름 144.8㎝짜리 쇠공, 즉 잠수구를 제작한 다음, 그 안에 이산화탄소 흡입 장치와 산소통, 서치라이트, 전화기 등을 갖추었다. 무게가 거의 2.5t이나 나가는 잠수구는 굵고 튼튼한 쇠사슬로 배 위에 있는 권양기에 연결하여 물속을 드나들게 했다.

1930년 6월6일 마침내 비브와 바턴은 잠수구에 들어가 전화로 선상에 있는 연구원들과 소통하면서 버뮤다 해역 수심 240m까지 내려갔다. 인류 최초의 잠수정 여행길에서 이 두 사나이는 지름 20㎝, 두께 7.6㎝인 석영 유리 창밖으로 각양각색의 수많은 해양 생물을 마주하고, 난생처음 보는 희한한 광경에 매료되었다. 첫 모험에 성공한 이들은 4년 뒤, 개량한 잠수구를 타고 수심 923m 심해까지 내려갔다. 이번에는 서치라이트 불빛에 수많은 파편들이 흩날리며 멋진 배경을 연출했다. 비브는 이를 ‘바다 눈(marine snow)’이라고 불렀는데, 비브와 친분이 있던 유명한 저술가 레이철 카슨(Rachel Carson)은 1951년 출간한 <우리를 둘러싼 바다(The Sea Around Us)>에서 이를 더욱 감성적으로 표현했다. “저 깊은 바다 밑바닥을 생각할 때면, 나는 항상 위에서 아래로 끊임없이 하늘거리며 내려오는 작은 눈발이 떠오른다. 하나씩 하나씩, 층층이 쌓인 눈꽃들? 지구상 최고의 강설(降雪)이 아닐까….”

바다 눈의 정체

죽은 플랑크톤들이 가라앉는 현상
해수면 온난화에 폭증, 환경문제 돼
미세플라스틱 무임승차까지 ‘골치’

1960년대에 혁신적인 해양 레저용품 하나가 첫선을 보였다. 바로 ‘자급 수중 호흡기’를 뜻하는 ‘Self Contained Underwater Breathing Apparatus’의 머리글자를 딴 ‘스쿠버(SCUBA)’이다. 해양 과학자들은 스쿠버의 또 다른 쓸모를 발견하고 1970년대부터 스쿠버다이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해양생물의 다양한 행동 양식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고, 바다 눈처럼 부서지기 쉬운 시료도 온전히 채취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바다 눈이 유기화합물의 응집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실을 말하자면, 바다 눈은 바다 표층에서 죽은 ‘플랑크톤(plankton)’이 가라앉는 현상이다. 플랑크톤은 분류학적 명칭이 아니라 물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떠다니는 작은 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부유생물이라고도 부르는 플랑크톤은 크게 두 부류, 광합성을 하는 ‘식물플랑크톤(phytoplankton)’과 먹이를 섭취하는 ‘동물플랑크톤(zooplankton)’으로 나눈다. 광합성 세균과 미세조류가 전자에, 원생동물과 소형 갑각류가 후자에 각각 속한다.

바다 눈은 전 세계 바닷속에서 내린다. 그 시작에는 식물플랑크톤이 내놓는 끈끈한 점액이 있다. 이 작은 떠돌이 생명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예컨대 광합성과 성장에 필요한 무기염류(인·질소 등)가 고갈되면 점액을 다량 배출하며 죽어간다. 같은 처지에 처한 주변 플랑크톤이 뭉쳐지면서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수중으로 내려간다. 이렇게 해서 심해 생물에 양식을 제공하고, 일부는 일찌감치 세균의 먹잇감이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바다 눈은 다시 무기염류가 되어 식물플랑크톤의 영양분이 된다.

콧물인가 눈물인가?

이스탄불 마르마라해 ‘바다 콧물’
2021년 물고기 떼죽음 사태 초래
병원성 미생물 서식지 될 위험 커

바다 눈송이의 크기는 뭉쳐지는 플랑크톤 양에 따라 밀리미터(㎜)에서 미터(m) 단위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심지어 해안가를 뒤덮을 정도로 커질 수도 있다. 실제로 2021년 4월 튀르키예 이스탄불 앞바다 마르마라해(Sea of Marmara)에 속칭 ‘바다 콧물(sea snot)’, 공식 용어로 ‘해양 점액(marine mucilage)’이 퍼졌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식물플랑크톤에서 분비된 엄청난 양의 점액이 원인이었다.

식물플랑크톤의 폭증 원인도 명확하게 알려졌다. 바로 다름 아닌 ‘부(富)영양화(eutrophication)’이다. 광합성을 하려면 빛, 이산화탄소, 물 그리고 질소 및 인과 같은 영양분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연 상태의 바다와 강, 호수는 보통 영양분이 많지 않은 ‘빈(貧)영양’ 상태이다. 이로 인해 부족한 영양분이 물속 광합성 생물의 성장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이런 환경에 부족한 영양분이 유입되어 그 제한이 풀어지는 현상이 부영양화이다. 자연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부영양화 대부분은 인간 활동으로 일어난다. 폐수 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생활하수와 공장 폐수, 축산 폐수 등에 들어 있는 각종 영양분이 자연수로 들어가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에 일사량 증가로 수온이 올라가면 식물플랑크톤의 광합성이 활발해져 그 수가 급증하게 된다.

바다 콧물의 주성분은 식물플랑크톤에서 유래한 끈적한 당류이다. 성분 자체만 놓고 보면 그다지 해로울 게 없다. 문제는 이 끈끈이가 바다 표면을 뒤덮으면 햇빛과 함께 산소 공급을 심각하게 차단한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광합성 감소와 산소 부족으로 해당 바닷속 생물은 대량 폐사 위기로 내몰리고 만다. 2021년 마르마라 해안에서 발견된 죽은 물고기 수만 1만마리가 넘었고, 피해 어종이 무려 18과(family)에 달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사실은 바다 콧물이 독성 또는 병원성 미생물 서식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대규모 바다 콧물은 두껍고 견고해서 선박 운항과 어로 활동에도 심각한 지장을 초래한다.

자연 상태에서 바다 눈은 식물플랑크톤에서 출발해 동물플랑크톤과 다양한 해양동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의 출발점으로서 바다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때로는 뭉쳐서 눈 덩어리가 되기도 하지만 그 정도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 자연 현상이다. 일례로 문헌에 기록된 마르마라해의 최초 바다 콧물 발생 시기는 1729년이다. 어망에 달라붙은 점액을 보고 그 당시 기록자는 ‘더러운 바다’라고 묘사했다. 이후로도 어쩌다 한 번씩 비슷한 현상이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그러다 지난 30년에 걸쳐 그 발생 빈도와 규모가 점차 커지더니 급기야 2021년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대규모 해양 점액 발생 배경에는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온난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큰 환경 문제로 꼽히는 미세플라스틱이 바다 눈에 무임승차를 일삼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상황이 더욱 복잡하고 심각해지고 있다.

바다는 기후 균형 잡아주는 ‘중추’
속앓이 계속되면 ‘중병’ 낳을 수도

바다는 모든 지구 생명의 고향이자 보고이다. 다양한 수산자원과 쉼터를 제공함은 말할 나위도 없고, 바다는 지구의 기후 균형을 잡아주는 중추이다. 그러므로 인간 활동으로 야기된 해양 생태계 변화는 전 지구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비유로 말해서 바다의 속앓이가 지속된다면, 인류는 결국 중병에 걸릴 수밖에 없다. 콧물처럼 보이는 해양 점액은 어쩌면 아픈 바다가 흘리는 응어리진 눈물인지도 모르겠다.

김응빈 교수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지은 책으로 <미생물과의 마이크로 인터뷰> <술,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 <온통 미생물 세상입니다>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나는 미생물과 산다> 등이 있다. 또한 유튜브 채널 ‘김응빈의 응생물학’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파트너 채널 ‘김응빈의 생물 수다’를 운영 중이다. 유튜브 채널 링크: https://www.youtube.com/@kimyesbio/featured. 네이버 채널 링크: https://contents.premium.naver.com/biotalkkim/knowledge

김응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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