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분진 능가한 최악 대기오염... 뉴욕, 항공기 멈추고 야구경기도 취소
“최대한 실내에 머물러라. 모든 것을 미루고 어린이와 노약자를 각별히 돌보라. 이것은 건강 비상사태다.” 캐시 호컬 미국 뉴욕 주지사는 7일(현지 시각) 긴박한 목소리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 최대 도시 뉴욕과 수도 워싱턴DC가 캐나다에서 발생한 산불이 유발한 최악의 대기오염에 강타당했다. 캐나다 오타와 등 남동부 400여 곳에서 자연 산불이 발생한 데 이어 이로 인한 연기가 북서풍을 타고 남하하면서 미 북동부가 매캐한 연기로 뒤덮였다. 뉴욕에선 항공편이 연기되고 학교가 휴교하는 등 큰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숨 쉬기 어려울 정도로 공기가 탁해져 이동이 어려워지자 뉴욕 양키스 구장의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와 브로드웨이 뮤지컬 공연 등이 취소됐다.
지난 6일(현지 시각)부터 캐나다발 연기에 뒤덮인 뉴욕시 하늘은 7일 공기질지수(AQI)가 8배 더 치솟아 사상 최고인 392를 기록했다. AQI는 숫자가 높을수록 나쁘다는 뜻으로, 300을 넘으면 ‘건강에 큰 위협이 되는(hazardous)’ 수준으로 분류된다. 뉴욕 기상 관측 사상 최악의 대기 질로, 2001년 9·11 테러로 분진에 뒤덮였을 때도 AQI가 이렇게까지 치솟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날 기준 뉴욕 공기는 매연으로 악명 높은 인도 뉴델리 등보다 나빠져 세계 대도시 중 최악을 기록했다.
7일 뉴욕 거리는 인류 종말을 연상케 하는 붉은 하늘 아래 흡연실이 떠오르는 매캐한 연기로 뒤덮였다. 사무실과 학교, 상점 등 실내에도 매캐한 연기가 파고들었다. 코로나 팬데믹 종식과 함께 사라졌던 마스크도 다시 등장했다. 유치원·초등학교 등에선 야외 활동이 정지됐고 교내에 머무르는 학생들에게도 보건용 마스크가 배포됐다.
산불 연기가 몰려다니는 뉴욕의 하늘은 한때는 주황빛이었다가 붉어졌고, 때로는 재 가루가 섞인 듯 검붉게 어두워졌다. 뉴욕 거리 사람들은 “지구 종말이 온 것 같다” “화성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날 실제 최고기온은 섭씨 25도였지만, 연기가 햇빛을 가려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체감온도가 15~17도로 내려갔다.
이날 출근 등 외출할 일이 있는 이들이 모두 자가용을 끌고 나온 데다, 가시거리가 수백m로 짧아져 교통사고가 속출하면서 뉴욕 일대 곳곳에서 종일 극심한 교통 체증이 빚어졌다. 뉴욕 시내 라과디아 공항과 뉴저지 뉴어크 공항의 항공편 운항도 일시 중단되고, 뉴욕과 뉴저지 일대에서 항공편 지연이 속출했다. 호컬 주지사는 “이런 상황이 며칠간 지속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뉴욕시 보건 당국이 외출 자제령을 내리자 맨해튼 센트럴파크나 허드슨강 변은 텅 비다시피 했다. 뉴욕을 상징하는 풍경인 활기찬 조깅족들도 자취를 감췄다. 뉴욕시 도서관 등 관공서들도 이날 오후 3시쯤 서둘러 문 닫았고, 동물원도 동물들을 실내로 피신시키고 폐쇄했다.
이 같은 대기오염은 뉴욕뿐 아니라 워싱턴DC, 필라델피아 등 동부 주요 도시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필라델피아의 AQI는 한때 429까지 치솟았다. 워싱턴DC도 150을 넘어서며 ‘코드 레드(건강 주의보)’를 발동했다. 북동부의 다른 도시들도 대부분 소풍과 체육 등 학교 야외 활동을 제한한다고 공지했다.
전문가들은 ‘검붉은 뉴욕 하늘’을 유발한 캐나다 산불의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하고 있다. 에릭 애덤스 뉴욕 시장은 “우리는 이런 경험을 처음 하는데, 이것이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며 “기후변화가 이런 환경을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이날 뉴욕 유엔본부 집무실에서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이 누런 연기로 가려진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고 “지구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산불 위험을 시급히 줄여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우리는 자연과 화해해야 한다. 포기해선 안 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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