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산불 연기 미 동부 뒤덮어…주민 1억명에 ‘건강 경보’
뉴욕 등 공기 질 등급 ‘위험’ 단계…사라졌던 마스크 재등장
캐나다 국토 소실, 남한 면적의 3분의 1 넘어…해외 지원 요청
캐나다에서 발생한 산불 연기가 미국 동부 지역에까지 퍼지면서 미국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억명 이상의 주민들 건강에 경고등이 켜졌다. 연기에 뒤덮인 뉴욕의 출근길과 등굣길에는 한동안 사라졌던 마스크가 다시 등장했다.
미 환경보호청(EPA)은 7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캐나다 산불로 인한 연기가 대서양 연안 중부부터 북동부, 오대호 상류 일부 등에 이르는 지역의 대기질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에어나우(AirNow) 화재·연기 지도에서 해당 지역 위치와 실시간 대기질 정보, 건강보호를 위해 취해야 할 행동을 확인해 달라”고 당부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EPA는 미국에 사는 1억명 이상 주민에게 대기질 경보를 발령했다. EPA는 대기질지수(AQI)가 151 이상인 것으로 나타나면, 이를 모든 사람의 건강에 안 좋은 수준(unhealthy)으로 보고 경보를 발령한다. EPA의 대기질 정보 사이트 에어나우에 따르면 뉴욕시의 AQI는 364, 펜실베이니아주 리하이 밸리는 464, 코네티컷주 스트랫퍼드는 325를 각각 기록했다. AQI에 따라 6단계로 분류하는 공기질 등급에서 300이 넘으면 최악인 ‘위험’(Hazardous) 단계에 해당한다. 건강한 성인은 이 정도 공기에 노출되더라도 곧 회복하지만, 천식이나 심혈관 질환 등이 있는 환자나 임산부, 노인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미 해양대기청의 연기 데이터에 따르면 연기는 캐나다 산불이 확산됨에 따라 동남쪽으로 번져나가 미 동부까지 뒤덮고 있다. 이미 지난달 중순에 서부 오리건주에서 뉴욕 동부에 이르기까지 미국 북부 거의 전역이 연기로 뒤덮인 상태였다.
이날 뉴욕의 출근길과 등굣길에는 코로나19의 위력이 약화된 이후 한동안 사라졌던 마스크가 다시 등장했다. 차량들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대낮에도 전조등을 켰다. 뿌연 대기 속에서 가로등도 자동으로 켜졌다. 뉴욕의 스카이라인과 자유의 여신상도 짙은 연무에 가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메케한 모닥불 냄새가 공중에 가득했다”면서 “안개도 아니고 박무도 아닌, 이곳에서 오래 산 뉴요커들에게도 생소한 날씨였다”고 전했다. 전날 밤 뉴욕시 맨해튼의 AQI는 218까지 치솟았으며, 해당 시점에서 뉴욕보다 공기질이 나빴던 곳은 인도 뉴델리밖에 없었다고 CNN방송은 전했다.
동부 다른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캐나다에서 몰려온 연기로 인해 필라델피아 지역 전체에 화재 현장 같은 냄새가 난다면서 최근 15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수준으로 공기질이 저하됐다고 전했다. 수도 워싱턴 지역 매체들은 워싱턴 모뉴먼트 뒤편 빌딩들이 연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야외 활동을 취소했다.
미국을 연기로 뒤덮게 만든 캐나다 산불은 건조한 날씨와 강풍의 영향으로 좀처럼 진화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앨버타주에서 발생한 산불은 이달 초부터 건조한 날씨와 강풍의 영향으로 번지기 시작해 최근에는 동부 퀘벡주 일대까지 불길과 연기에 휩싸였다. 이날 현재 산불로 소실된 캐나다 국토는 380만㏊(3만8000㎢)에 달한다. 남한 면적(약 10만㎢)의 3분의 1을 넘는 규모다. 빌 블레어 캐나다 비상계획부 장관은 이날 현재 414곳에서 여전히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수아 르고 퀘벡주 총리는 “지금 당장 우리 인력으로는 동시에 40여곳만 진압할 수 있다”며 “더 시급한 곳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불이 확산하면서 캐나다는 해외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 퀘벡주는 앞으로 며칠 안에 프랑스, 미국, 포르투갈 등으로부터 소방대원 500명이 더 도착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캐나다 정부와 소통해 600여명의 소방관과 인력, 장비를 보내 화재 진압을 돕고 있다”면서 “기후위기가 우리 삶과 지역사회를 흔드는 방식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심상치 않은 사례”라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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