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직 등급’에 갇힌 보훈[보훈의달 기획 - 죽음의 무게를 달다]
입대 후 극단 선택한 군인 유족
5년 싸움 끝 순직 인정받았지만
유공자 불인정 “반쪽짜리 예우”
어머니는 늘 영정 뒷면이 앞을 향하게 들었다. 사진 속 얼굴이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아들이 현충원에 안장되던 날에도 그랬다. “누굴 안을 때 뒤가 아니라 앞에서 안잖아요.” 박윤자씨(56)가 양팔을 펼쳐보이며 말했다. 그는 “아들을 떠나보내지 않았다. 가슴에 묻었다”고 했다.
2010년 6월8일. 13년이 흘렀지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아들 윤영준씨(당시 20세)가 입대 후 첫 휴가를 사흘 앞둔 날 새벽이었다. 소리가 들려 눈을 뜨니 남편 윤출호씨(59)가 전화를 받고 있었다. 남편이 벽을 치며 주저앉는 모습을 보고 박씨는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군은 윤영준씨가 “목을 맸다”고 했다. 부부는 조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들의 죽음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힘으로 밝혀낼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군은 ‘부적응자의 자살’로 결론지었다. 돌아오지 못한 자식에게 유일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명예 회복’뿐이었다. 당시엔 자살을 한 군인은 순직 심사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 무너진 삶을, 군은 ‘전투력 손실’로 보던 시절이었다.
부부는 청와대·국민권익위원회·국가인권위원회 문을 두드려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윤씨의 죽음은 국가에 책임이 있다며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몇년의 시간이 숨 가쁘게 흘렀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5년, 부부는 아들의 순직을 인정받았다. 2015년 9월 자해사망자(자살)를 포함해 군인의 순직을 더욱 폭넓게 인정하는 군인사법이 국회를 통과할 즈음이었다. 아들의 유골은 광주 영락공원에서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옮겨졌다.
윤씨 부부는 “순직만 인정받으면 다 끝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순직’ 뒤에 붙은 ‘3형’이라는 글자는 눈여겨보지 못했다. ‘순직 이후’ 8년이 흐른 지금, 이들은 군의 결정을 “반쪽짜리 순직” “허울뿐인 순직”이라고 말한다.
군인의 죽음은 전사·순직·일반사망 세 가지로 나뉜다. ‘전투 중’ 사망하면 전사, ‘공무 중’ 사망하면 순직, 그 밖의 죽음은 일반사망으로 분류된다. 평시에 일어나는 군인의 죽음은 대부분 일반사망 또는 순직으로 처리된다. 일반사망으로 분류된 군인의 유족이 순직 인정을 위해 싸운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그런데 순직이 다시 세 개 등급으로 구분된다는 사실은 모르는 이가 많다. 위험을 무릅쓴 채 직무를 수행하다 사망하면 순직 1형,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 관련 있는’ 직무 중 사망하면 순직 2형,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 관련 없는’ 직무 중 사망하면 순직 3형을 받는다. 이 분류 때문에 유족은 두 번 상처를 받고 다시 싸움을 시작하기도 한다.
군인 순직, 세 개 등급 구분
요건도 지나치게 까다로워
군대서 아들 떠나보낸 부부
순직 인정받아도 예우 낮아
윤씨 부부도 순직에 등급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영준씨와 여섯 살 터울의 막내아들이 입대해야 할 즈음 박씨는 보훈체계를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큰아들을 군에서 잃은 부부는 막내를 군에 보낼 자신이 없었다. “형제 병역 면제는 국가유공자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에서 받은 보훈등록증도 허울뿐이라고 느꼈다. 윤씨는 “유족 중에서는 지속적인 트라우마에 시달려 심리치료가 필요한 이도 많은데 유공자가 아니면 보훈증이 있어도 보훈병원 지원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3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군 복무 관련 순직·국가유공자 제도개선 연구>에 인용된 군사망자 보훈심사 현황을 보면, 군에서 정한 순직 1형의 100%와 순직 2형의 63%는 국가유공자로 결정되지만 순직 3형은 단 한 건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지 않았다. 순직 3형의 75%는 유공자보다 예우가 낮은 보훈보상대상자가 됐는데, 나머지 25%는 그마저도 해당되지 않았다.
가족들이 가장 상처받는 건 ‘덜 중요한 죽음’이라는 구분짓기다. 박씨는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국가의 부름을 받아 입대했다가 죽었으면 예우라도 잘해줘야 하지 않나”라며 “정확히 왜 죽었는지도 모른 채 아들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죽음에까지 차별을 둔다는 게 허망하다”고 말했다.
현재의 순직 분류는 2015년 9월 군인사법 개정으로 만들어졌다. 법을 개정한 취지는 군 내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자살로 내몰린 군인들에게도 순직의 문호를 넓히고 더 많은 유족을 제대로 위로한다는 것이다. 윤씨 부부를 비롯한 유족들이 수없이 국회 문을 두드리며 입법 운동을 했는데, 2014년 이른바 ‘윤일병 사건’이 터지며 법 개정이 급물살을 탔다. 문제는 법안이 순직의 문턱을 낮추는 대신 그 안에 새로운 칸막이를 두었다는 점이다. 당초 입법 취지와는 거리가 먼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살 순직’ 군 내 반발 심해
순직 범위에 되레 ‘칸막이’
보훈체계와 엇박자 나타나
국가 ‘보훈’서 유족들 소외
김광식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8일 “순직 분류가 생긴 데는 자살한 군인도 순직으로 인정할 것인지를 두고 논쟁했던 배경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0년대 초반에는 자살한 군인도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반성이 있었으나 군에서는 굉장히 반발이 심했다”면서 “자살한 군인들까지 예우해주면 오히려 자살 결심을 더 쉽게 만들어주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올 정도였다”고 했다.
김 전 연구위원은 “자살 군인에 대해서 전보다 적극적으로 예우를 하는 모양새를 갖추긴 했으나 분류 기준을 지나치게 세부적으로 두면서 자꾸 조문에 얽매이는 문제가 생겼다”며 “순직은 인정되더라도 유공자가 안 되거나, 심지어 보훈대상자도 안 되는 등 보훈체계와도 엇박자가 나면서 유족이 서운해할 수밖에 없는 결과가 반복됐다”고 말했다.
2012년 아들을 잃은 김은애씨(59)도 지금의 보훈체계가 국가 책임을 부인하고 유족들에겐 죄책감을 주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의 아들 임호씨(당시 20세)는 입대 전 부정맥을 앓아 수술까지 했으나 병역 면제를 받지 못했다. 신체검사에서 입대에 지장이 없다고 나와 할 수 없이 군에 들어갔다. 그 후 6개월, 임씨는 돌연 쓰러져 사망했다. 김씨는 “억만금을 줘도 안 바꿀 아들인데 차라리 감옥에 보낼 걸 그랬다”고 했다.
김씨도 “순직만 인정되면 유공자가 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순직 처리해주겠다는 각서까지 받아뒀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가서 보니 순직이라도 유공자는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몸이 안 좋은데도 나라 지키겠다고 군에 갔으니 떳떳한 죽음인 건데, 저는 누구한테도 떳떳하게 말을 못해요.” 그는 “부모를 잘못 만나 아들이 죽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6일 기자와 만난 윤씨는 현충일이 되면 “소외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국가가 말하는 ‘보훈’에 이들의 자리는 없다고 느낀다. 8일은 아들의 기일이다. 국가에 6월은 ‘보훈의달’이지만, 그에게 6월은 “가장 아픈 달”이다.
강은·이홍근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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