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사망 ‘순직 2형’ 받은 건 이예람 중사뿐
육·해·공 전군서 단 1건
공군 은폐·가해 드러나
‘군에 의한 타살’ 판단
0.02%. 2015년 군인사법 개정 이후 공군에서 발생한 극단적 선택 45건 중 ‘순직 2형’ 결정이 난 사례는 단 한 건에 불과하다. 육·해·공 전군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이 비율은 더 떨어진다. 2016년부터 2022년까지 군에선 총 361건의 자해사망이 발생했다. 이 가운데 한 건만이 3형이 아닌 2형을 받았다. 2021년 5월, 공군 20비행단에서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목숨을 끊은 이예람 중사 사건이다.
군인사법 시행령 제60조 23은 순직 2형을 국가의 수호와 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경우에만 인정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해사망’은 직무수행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으로 군은 판단한다. 자해사망자 대부분이 별다른 예우가 없는 3형 처분을 받는 이유다.
그런데도 이 중사가 유일하게 2형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군이 이 중사가 사실상 군 조직에 의해 ‘타살’당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중사는 2021년 3월2일 상관 장모 중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피해 직후 이 중사는 부서 선임, 소속 반장 등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으나 이들은 오히려 가해자를 감싸고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군 경찰과 검찰은 부실수사를 했고, 피해자를 도와야 할 변호사는 직무를 유기했다.
이 중사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군인으로 남고자 부대 전출을 신청했다. 그러나 옮긴 15비행단에도 이 중사가 성폭력 피해자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15비행단 중대장은 20비행단 중대장으로부터 “애가 좀 이상하다. 아무나 고소하려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피해자가 오히려 일종의 관심간부 취급을 받은 것이다. 1차, 2차, 3차, 4차의 반복된 가해를 당하며 시스템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한 이 중사는 혼인신고를 마친 당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군은 이 중사가 여러 차례 죽음의 문턱으로 떠밀린 점을 인정해 예외적으로 순직 2형 판단을 내렸다. 이 중사가 받은 순직 코드는 ‘2-2-6’으로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이 직접적인 원인이 돼 질병이 발생하거나 악화하여 사망한 사람”에게 부여된다. ‘자해행위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군 생활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질병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 중사 측 변호인이었던 강석민 변호사는 8일 “(2형이 나올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군 법무관 출신으로 강 변호사에게도 자해사망자에게 2형이 부여되는 일은 처음이었다. 강 변호사는 “(이 중사) 아버지께 기대하지 말라고 말씀드렸던 기억이 있다”면서 “군이 조직적인 ‘사회적 타살’을 당했다고 봐 해당 조항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 이주완씨는 이 중사를 질병사로 돌려 2형 처분을 내린 것은 군이 자해사망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고 비판했다. 이씨는 “예람이처럼 조직적으로 군이 은폐하고 가해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드러난 경우에만 (군이) 시혜적으로 선심을 쓰듯 2형을 준다”면서 “그냥 뒀으면 예람이도 3형을 줬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해사망은 예우를 덜 하겠다는 생각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이씨는 이 중사 사망과 모든 군내 자해사망이 본질적으로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군에서 발생한 극단적 선택 사건 중 군의 책임이 없는 사례가 어디 있겠느냐”면서 “고무신을 거꾸로 신어서 그랬든, 집안의 불화가 있어서 그랬든 군에 갇혀 있다는 특수성이 죽음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해사망 유족은 2형을 받기 위해 너무나 큰 노력과 고통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면서 “죽음에 무게를 다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했다.
이홍근·강은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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