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종철·이한열이 민주유공자가 아닌 나라
6·10 민주화운동이 올해로 36주년을 맞는다. 전국 각지에선 학생·넥타이부대·노동자로 분한 시민들이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36년 전 그날을 기리고 있다. 부산 민주공원엔 8일부터 박종철 열사가 생전 착용했던 시계,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쓰러질 때 입고 있던 티셔츠(복제본) 등이 놓였다. 전남 목포에선 9일 청소년들이 부·마 항쟁지를 탐방하고, 경기 성남에선 오월 걸상 제막식과 주먹밥 체험 행사가 벌어진다.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를 이만큼이라도 향유하게 된 데는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의 희생과 공이 크다. 그런데도 유공자 입법이 이뤄진 4·19와 5·18을 제외하면 다른 민주화운동 공헌자들은 명예회복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박종철·이한열이 민주화운동 ‘유공자’가 아닌 ‘관련자’로 남아 있는 게 단적이다. 참담한 현실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재추진하고 있다. 법에는 민주화운동 공헌자의 명예회복과 유족들에 대한 합당한 예우를 하자는 취지가 담겼다. 그러나 법안은 20여년간 10여차례나 발의·폐기·재발의를 반복했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유공자 자녀의 대학 입학금 면제와 공공기관 취업 시 5~10% 가산점 부여 등을 문제 삼아 ‘운동권 신분 세습법’이라고 반발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사실 왜곡이다. 법안을 보면, 예우 대상자는 관련 법에 따라 민주화운동 관련 사망자와 행방불명된 사람으로 한정했다. 예우 대상은 800~900여명에 불과하고, 수혜 대상은 더 적다. 민주당은 보수진영이 문제 삼은 공정성 시비까지 없앤 법안을 마련해 이달 내 추진을 서두르고 있다. 국회 정무위 민주당 간사인 김종민 의원은 “남민전과 미 문화원 방화 등 사회 통념상 논란 있는 사건을 뺐고 지원 대상도 형법과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면 제외했다”고 밝혔다. 그래도 문제 소지가 있으면 심의위원회를 둬서 개별 사안별로 심의하게 했다. 이 정도면 국민의힘도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여당은 법 제정에 소극적이고,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6월 항쟁을 계승하겠다던 다짐과 배치되는 이율배반적 태도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35주기 기념사에서 ‘6월 항쟁은 국민이 이뤄낸 민주화의 성과’라며 “민주화 희생자들을 기념하고 예우하겠다”고 했다. 민주유공자법 제정은 지금도 늦었고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 여당은 현 정부 출범 후 민주주의 후퇴를 걱정하는 각계각층 목소리를 새겨듣길 바란다. 어느 때보다 6월 항쟁 정신이 필요한 상황임을 명심하고, 서둘러 민주유공자법 제정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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