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투더 MB’ 언론장악 설계자의 ‘귀환’
군부독재가 끝난 이후, 권력과 언론의 관계에서 최악은 이명박 정부 때 벌어졌다.
정연주 KBS 사장의 강제 해임,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기소, 엄기영 MBC 사장의 사퇴와 김재철 사장 임명, YTN을 포함한 숱한 언론인 해직과 징계 등 이명박 정부는 언론을 통제했고 장악했다.
권력의 비뚤어진 언론 장악 중심에 ‘이동관’이 있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초대 청와대 대변인과 홍보수석, 언론특별보좌관을 꿰차며 MB 집권 5년 중 3년 5개월 동안 언론을 쥐락펴락했다.
2013년 이명박 정부가 끝나며 그의 공직 이력도 멈췄다. 외교통상부 언론문화협력 특임대사를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그에게 공직의 길이 다시 펼쳐졌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특별고문에 이어, 장관급인 대통령실 특별보좌관에 그를 임명했다. 최근에는 언론정책을 총괄하는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하마평’이 무성하다.
언론계는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행위”라고 비판하지만,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그분이 들어오는 게 두렵냐”고 맞선다. 언론이 권력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진짜 두려운 것은 이동관 특보의 ‘언론관’과 ‘반성 없는 거짓말’이다.
뉴스타파, 1년 전 ‘이동관 언론 장악’ 대통령기록물 공개
지난해 4월, 뉴스타파는 비밀해제된 대통령기록물과 국가정보원 내부 문건을 찾아내 이명박 정부에서 자행된 언론 장악의 지휘자가 이동관이었음을 폭로한 바 있다.
당시 뉴스타파가 확인한 기록물은 20여 건. 이동관 특보가 수장으로 있던 청와대 대변인실과 홍보수석실이 생산하거나 국가정보원에 요청해서 만든 문건이었다.
이 기록물을 통해 이동관 특보가 2008~2010년 청와대 대변인과 홍보수석으로 재직하면서 ① 대변인실은 물론 수석비서관실까지 동원해 언론 모니터를 강화했고 ②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문제 보도’로 낙인찍었으며 ③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공영방송 내부 동향과 언론인 축출 방안을 보고 받고 ④ 국정원에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실행 계획을 세우도록 지시한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이동관, 증거 앞에서도 반성 없이 “언론 장악 없었다” 고수
그동안 “언론 장악에 나선 적이 없다”는 이동관 특보의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나왔는데도, 그는 단 한마디도 사과하지 않았다. 여전히 “언론 장악과 자신은 무관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이동관 특보의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설이 돌고 있는 지금, 뉴스타파는 그가 청와대 재직 시절에 작성된 문건을 다시 살펴봤다. 이 특보의 언론관을 파악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록물이다.
① 통제: 권력으로 언론 등에 제한을 가함
통제는 모니터에서 시작된다. 이명박 정부 초대 대변인 이동관이 먼저 한 일은 ‘언론 모니터 강화’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3월 18일, 이동관의 청와대 대변인실은 <언론보도 점검 협조 요청>이라는 문건을 작성했다. 대변인실은 물론 수석비서관실에까지 언론 모니터를 지시했다. 신문의 경우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루 세 번씩, 인터넷과 방송은 수시로 보도 내용을 점검하도록 했다. 강화된 모니터 효과는 곧 나타났다.
2010년 5월, 제주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천안함 사건’이 논의됐다. 이명박 정부는 “한중일 정상이 적절하게 대처하기로 합의했다”며 성과를 강조했다. 국내 언론은 이를 그대로 보도했다.
그런데 AP통신, 로이터, BBC 등 외신은 달랐다. “한국 정부가 중국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으며 구체적 성과가 없었다”고 보도했다. YTN과 MBN 등 국내 언론도 2010년 5월 31일 새벽부터 외신 보도를 인용해 전했다. (관련 기사: 외신들, "중국, 지지 신호 안 보여")
AFP 통신은 한국과 일본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 중국이 북한을 비난하도록 압박했지만 이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했다고 보도했습니다.
- 외신들, "중국, 지지 신호 안 보여" (YTN, 2010.5.31.)
그런데 이날 오전 10시부터 YTN과 MBN에서 해당 보도가 사라졌다. 뉴스타파는 이날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작성한 기록물 <YTN 보도 리스트 (5.31/오후)>을 찾아냈고, 보도가 사라진 이유를 밝혀냈다.
문건의 아래를 보면, ‘3국 정상회담 관련 AFP, AP, BBC, NHK의 부정적 반응’을 전달한 YTN과 MBN의 보도를 ‘문제 내용’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10시 뉴스 이후부터 해당 기사가 비보도(보도되지 않게 했다)’라는 ‘조치 결과’를 기록했다.
보도전문채널에 대한 방송 개입과 언론 통제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이 문건을 만든 청와대 홍보수석실의 책임자가 바로 이동관이다.
② 눈엣가시: 몹시 미워 눈에 거슬림
이명박 정부는 특히 MBC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통제를 시도했다. 이동관 대변인실이 2008년 12월 12일 작성한 <MBC 뉴스데스크 보도 분석 (11.26~12.10)> 문건이 이를 보여준다.
이 문건에는 2쪽짜리 <문제보도 사례>가 첨부되어 있는데, 2주 동안 모니터링한 MBC 보도 중 문제보도를 콕 찍어서 정리했다. 왜 문제보도로 분류했는지 사유도 적었다.
사유를 하나하나 읽다보면, 당시 권력이 기대하는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지, 권력자가 공영방송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동관 특보의 비뚫어진 언론관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시간으로 2008년 11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LA에서 동포 간담회를 열고, 국제 금융위기 상황에도 “지금 주식을 사면 최소 1년 이내에 부자가 될 거다”라고 말했다. 시장에 큰 혼란을 가져오는 경솔한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대변인 이동관이 "지도자가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우는 소리'를 하면 되겠느냐. 희망을 얘기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거들었지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까지 대통령의 말을 비판한다.
대통령이 나서서 주식을 사라 말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중략) 대통령은 주가나 금리, 환율 같은 민감한 문제에는 발언을 자제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 조선일보 사설 ‘대통령의 주식 이야기 듣기 거북하다’ (2008.11.26.)
지금 주식을 사면 최소한 1년 내 부자가 된다'는 말은 제대로 된 국가원수의 입에서 나올 만한 내용도 표현도 아니다. (중략) 국가원수의 자리를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일류 국가의 국격은 대통령 입에서부터 나온다.
- 중앙일보 사설 ‘대통령의 말, 보다 진중해야’ (2008.11.26.)
MBC도 비슷한 논조로 보도하는데, 뉴스데스크 앵커 클로징에서는 “대통령의 발언 소동이 한 차례 더 추가됐다”며 “조선과 중앙일보가 즉각 오늘 아침 사설에서 매섭게 비판한 점은 특히 눈에 띈다”고 언급했다. (관련 기사: 2008.11.26. MBC 뉴스데스크 클로징 멘트)
이동관 대변인실은 이 클로징 멘트를 두고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는 이유로 문제보도로 분류했다.
2008년 12월 4일, 이명박 대통령이 새벽 시장을 방문했다. 방송사들은 대통령의 동정을 기사로 다뤘다. MBC도 뉴스데스크로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오늘 새벽시장을 찾아 상인들을 만났습니다. 경제난으로 힘든 상인들은 눈물로 하소연했습니다. (중략) 상인들 사이에는 대통령이 그래도 새벽에 삶의 현장을 직접 찾아준 만큼, 앞으로 좋아질 거라는 기대감과 그저 행사 한번 하는 걸로 끝날 거라는 냉소가 교차합니다.
- 이 대통령, 새벽 시장 방문... 상인들 “살기 힘들다” (MBC, 2008.12.4)
그런데 이동관 대변인실은 이를 문제보도로 찍었고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KBS, SBS는 대통령이 체감경기 어려움을 절감하는 표정이었다고 평가한 반면, MBC는 상인들의 기대감과 냉소가 교차했다고 보도’
정부가 재건축 재개발 활성화를 통해 백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대부분 건설현장의 비정규직입니다.
- 일자리 질이 떨어진다 (MBC, 2008.11.28.)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백만 개 일자리 창출 정책’이 알고 보니, 대부분 비정규직이었다는 2008년 11월 28일 자 MBC 보도는 ‘정부 정책의 부족한 점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문제보도로 찍혔다.
대통령 측근에 대한 감시는 언론이 수행해야 하는 기본 역할이다. 당시 MBC의 보도 내용이다.
뇌물사건으로 징역형을 받았던 양윤재 전 서울시 부시장이 대통령 직속 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중략) 양 전 부시장은 거액의 뇌물수수에도 불구하고 올해 광복절 특사 때 이례적으로 복권돼 대통령 측근 봐주기 논란이 제기됐습니다.
- 청와대, '측근 봐주기' 논란 (MBC, 2008.12.10.)
그러나 이동관 대변인실은 “KBS는 논란 자체와 청와대 해명만 단순 보도한 반면, MBC는 부적절하다고 논평하고 ‘측근 봐주기’ 의혹을 제기했다”며 지적하고 문제보도로 분류했다.
이동관 대변인실이 이처럼 ‘문제’로 규정한 MBC 보도는 2008년 11월 26일부터 12월 10일까지 2주 동안만 20건이다.
이명박 정부는 권력에 대한 비판을 ‘문제보도’로 ‘분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축출’까지 벌였다. 문제보도 목록에는 MBC 신경민 앵커가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문건 작성 넉 달 뒤인 2009년 4월 13일, 신 기자는 앵커 자리에서 물러났다.
③ 보복: 남이 준 해를 그대로 갚아줌
2008년 8월 5일,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언론계 쇄신 진행동향 및 고려사항> 문건이다. 이명박 정부가 언론장악을 위해 검찰과 국가정보원까지 동원했음을 증빙하는 기록물이다.
‘검찰의 MBC PD수첩 기소가 임박하는 등 언론계 쇄신이 가시권에 접어들고 있으나, 막판 저항으로 진통을 겪고 있는 상황’, ‘MBC 저항태세 여전’, ‘경영진은 명확한 입장 정리를 주저하고 있는 실정’ 등 국가정보원의 그릇된 시선에서 MBC 내부 상황을 정리하고 있다.
사실상 사찰 수준으로 MBC 내부 사정을 파악한 국가정보원은 나아가 방송 장악의 방안과 수순을 제시한다.
‘국민 피로감, 북경올림픽 등으로 지속 쟁점화시키기에 한계가 있으므로, 8월 중 마무리한다는 원칙 아래 총력 대응 필요’, ‘MBC 제작진 사법처리 확행’ 등을 적시했다.
국가정보원이 ‘사법처리 확행’(일을 확실하게 함)이라고 문건을 작성한 8개월 뒤인 2008년 4월 8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MBC 압수수색에 나섰다. 국가정보원 문건의 마지막 부분에 문서를 보고받은 수신처가 나온다. 수신처로 청와대 ‘대변인’, 즉, 이동관이 적혀 있다.
④ 장악: 손 안에 잡아 쥠
2009년 12월 24일, 국가정보원은 또 다른 방송 장악 문건을 만든다. 제목은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및 고려사항>이다.
이명박 정부가 MBC의 진행자와 기자들을 어떤 식으로 분류했는지 보여준다. 정권에 비판적인 라디오 진행자들을 ‘악의적’, ‘민심 호도’, ‘좌편향’, ‘반정부’, ‘좌파’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이들을 방송에서 몰아내기 위해 조치해야 할 실행 방안을 제시한다.
‘경영진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자발적 시정 촉구’, ‘좌편향 진행자 퇴출 및 고정 출연자 교체 권고’, ‘개편을 계기로 문제 프로그램 폐지, 포맷 변경’, ‘건전단체, 보수언론 주도로 문제 프로그램의 편파보도 문제제기’ 등이다.
정권의 언론 장악 의도와 실행 계획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이 국가정보원의 문건은 국정원 스스로 작성한 게 아니었다. ‘청와대 홍보수석 요청’으로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바로 이동관이다.
⑤ 선거: 공직에 임할 사람을 투표로 뽑는 일
언론 장악의 최종 목표는 선거 승리, 정권 재창출이다. 2010년 지방선거를 5개월 앞둔 1월 13일, 국가정보원이 생산한 <방송사 지방선거기획단 구성 실태 및 고려사항> 문건이다.
국가정보원은 이 문건의 작성을 위해 경찰을 동원해 미리 MBC 선거기획단 인적구성을 조사했다.그리고 ‘방송사 선거기획단에 좌편향 기자들이 침투, 과열, 혼탁선거가 우려’된다고 MBC 내부 상황을 평가했다.
이어 국가정보원은 해당 기자들을 쫓아내는 데 필요한 조치를 열거한다.
‘방송사 경영진과 협조, 좌편향 제작진 배제’, ‘극렬노조원 등 정치적 편향성이 의심되거나, 선거보도 관련 심의위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는 제작진 배제를 설득’.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가정보원에 이 문건을 만들도록 요청한 곳은 이동관의 홍보수석실이었다. 이동관의 홍보수석실은 국정원을 동원해 ‘사찰하듯’ MBC 내부 상황을 파악하고, 방송 장악을 시도한 것이다.
뉴스타파는 이동관 특보가 이명박 정부에서 실행한 방송 장악의 실체를 입증하는 대통령기록물과 국정원 내부 문건을 데이터포털에 공개한다.
● <이동관 언론장악 개입 입증 공공기록물> 열람
뉴스타파 임선응 ise@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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