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가위는 GMO와 다를까, 최초의 유전자 편집 샐러드 등장 [홀리테크]

박건형 테크부장 2023. 6. 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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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유전자 편집 생명체를 사람이 섭취할 때 어떨지 관심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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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의균·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스타트업 페어와이즈가 겨자잎을 출시했습니다. 집 앞 수퍼마켓만 가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겨자잎이 화제를 모은 것은 이 겨자잎이 밭이 아닌 실험실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페어와이즈는 이른바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 유전자 편집 기술 크리스퍼(Crispr)를 이용해 겨자잎의 맛을 바꿨습니다.

겨자잎은 생으로 먹으면 강한 후추향이 납니다. 이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죠. 페어와이즈의 겨자잎에는 특유의 후추향이 없습니다. 이 향을 내는 유전자를 잘라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퍼는 2011년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와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교수의 공동 연구를 통해 개발됐습니다. 2012년 6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온라인으로 발표되면서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고, 두 사람은 2020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크리스퍼는 유전정보를 담은 디옥시리보핵산(DNA)에서 특정 유전자만 골라 잘라내는 효소 단백질 복합체입니다. 원하는 유전자를 쏙쏙 잘라내고 이어 붙일 수 있기 때문에 ‘유전자 가위’라고 불립니다. 동물과 식물 모두의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고, 기술적 난도도 높지 않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실험과 연구 성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페어와이즈처럼 상용화에 성공한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사람의 의도대로 유전자를 편집한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진화라는 자연의 섭리를 뛰어넘습니다. 유전자 가위로 편집한 동식물을 사람이 섭취하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또 이들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까요. 수십년간 환경과 사람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란 속에 천덕꾸러기가 된 유전자재조합작물(GMO)과는 어떻게 다른 걸까요.

일본에선 크리스퍼 토마토 판매

크리스퍼가 처음 등장한 이후 과학자들은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어떤 유전자가 동식물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만 알고 있다면 얼마든지 특성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성장을 제한하는 유전자를 잘라내면 더 많은 수확량이 보장되고, 해충이 좋아하는 냄새를 뿜는 유전자를 편집하면 굳이 살충제를 뿌리지 않아도 됩니다.

페어와이즈가 유전자 편집 작물을 처음 상용화한 것은 아닙니다. 2021년 도쿄의 스타트업 사나텍시드는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BA)을 다량 함유하도록 유전자 편집한 시칠리안 루즈 토마토인 ‘고가바(Go GABA)’를 출시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뇌에서 작용하는 GABA는 신경 세포 사이의 자극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데, 사나텍시드는 자사의 토마토가 스트레스 해소와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픽=김의균

뉴욕 콜드스프링 하버 연구소와 매사추세츠대 연구팀은 줄기세포 성장을 멈추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유전자 ‘ZmCLE7′을 옥수수에서 편집하면서 더 많은 이삭을 갖게 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연구팀은 앰엔드앰즈·스리머스킷티어스·스니커즈 등을 만드는 마스사와 협업해 특정 곰팡이와 바이러스에 내성을 가진 카카오나무를 만들었습니다.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기존 카카오나무는 자라서 열매를 맺기까지 5~7년이 걸리는데, 다 자란 후에야 질병에 걸렸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면서 “처음부터 질병에 저항하도록 유전자를 편집했기 때문에 수확량 증대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전자 가위가 식물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것이 말라리아모기입니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암컷 모기의 번식력을 감소시키는 유전자를 찾아 크리스퍼로 이를 편집했습니다. 이 모기를 자연에 풀어놓으면 점차 많은 모기가 편집된 유전자를 갖게 되면서 전체 말라리아모기 감소로 이어지게 됩니다.

소·닭·연어·토끼도 허가

가축에도 유전자 가위를 적용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미네소타 스타트업 액셀리젠의 유전자 편집 소 생산을 승인했습니다. 이 회사는 소의 유전자를 편집해 짧고 매끄러운 털이 나도록 했습니다. 털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소가 고온을 버티게 하는 유전자와 관련이 있습니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덜 받는 소를 만들어낸 것이죠. 지금까지 FDA는 닭, 연어, 토끼, 돼지 등에 대해서도 유전자 편집 기술 적용을 허가했습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의 확산은 새로운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과연 안전하냐는 것이죠. 1990년대 유전공학이 유전자 재조합 기술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를 처음 만들어낸 이후 GMO는 많은 사람에게 공포의 대상이 됐습니다. 밀과 옥수수, 대두를 비롯한 수많은 GMO 작물이 생산되고 유통되지만, GMO가 위험하다는 인식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수많은 식품 회사들이 GMO프리(GMO를 사용하지 않았음)라는 라벨을 마케팅에 활용할 정도입니다.

글로벌 농업생명과학기업 신젠타가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만든 가뭄에 강한 옥수수. /신젠타

GMO가 안전하지 않다는 과학적 증거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퓨리서치의 201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1%는 GMO가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크리스퍼는 GMO와 다를까요. GMO와 크리스퍼의 가장 큰 차이는 ‘외부 유전자 도입’ 여부입니다. GMO가 원래 동식물에 없었던 유전자를 집어넣어 재조합하는 방식이라면, 크리스퍼는 원래 가진 유전자를 편집하는 기술입니다. 동식물의 유전자를 편집하면서 생길 변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다만 크리스퍼 역시 GMO와 같은 비호감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편견과 오해를 뛰어넘을 증거와 명백한 혜택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보다 적극적인 연구로 유전자 편집의 안전성을 알리는 것은 물론, 밀과 쌀의 수확량 증대 같은 확실한 이득을 보여주면서 당위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죠. 대중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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