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상하이 엑스포…이번엔 부산 차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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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오사카 세계박람회 이후 오늘날까지 엑스포는 동아시아가 접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30세계박람회가 부산에서 열리는 것은 역사의 흐름상 굉장히 타당한 일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세계 박람회는 베이징이 아닌 상하이, 도쿄가 아닌 오사카에서 열렸다"며 "엑스포는 경제 산업의 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제 2의 도시에서 열리는 것이 적합한 만큼, 부산의 엑스포 유치 타당성을 강조하고 싶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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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속 엑스포 의미 들려줘
- 제2의 도시 유치 타당성 강조
“1970년 오사카 세계박람회 이후 오늘날까지 엑스포는 동아시아가 접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30세계박람회가 부산에서 열리는 것은 역사의 흐름상 굉장히 타당한 일입니다.”
지난 7일 오후 부산롯데호텔 3층 펄룸에서 열린 국제아카데미 20기 12주차 강연 무대에 오른 오룡 ‘상상력의 전시장 엑스포’의 저자는 이렇게 강조했다. 자칭 ‘엑스포 1타 강사’인 그는 연합뉴스 밴쿠버 통신원이며 ㈔아시아기자협회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엑스포의 현재 과거 미래를 담은 ‘엑스포, 부산 오다’의 공동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 강연에서 ‘엑스포가 바꿔주는 부산의 미래’라는 주제로 부산 세계 박람회 유치의 필요성과 엑스포의 의미를 설명했다.
오 저자는 엑스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적 시기를 다섯 꼭지로 나눴다. 어떤 주제든 역사를 살피라고 말한 그는 “엑스포의 역사를 되짚어가며 역사적 유산 속에서 현재 부산의 위치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오 저자는 먼저 19세기 엑스포를 “기계문명·산업화의 전시장”이라고 설명했다. “현대 문명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발명품이 엑스포를 통해서 처음 도입되고 대중에게 보급됐다”며 이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엑스포였던 1851년 런던세계박람회를 첫 번째 포인트로 짚었다.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세계박람회가 현재 엑스포의 효시가 됐다. 이 일대에 모인 사람이 65만 명으로, 전쟁이 아닌 평시에 모인 최대 인파”였다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으로는 1889년 파리세계박람회를 꼽았다. 프랑스의 네 번째 세계박람회에서 ‘불멸의 아이콘’인 에펠탑이 탄생했다는 점에서다. 그는 “엑스포 기간 벌어들인 에펠탑 입장료 만으로 전체 건설비를 충당했을 정도로 성공적인 기념물로 자리매김했다”며 의의를 강조했다.
세 번째 포인트는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다. 당시 신흥산업국이었던 미국의 국력이 결집된 행사로, 한국이 최초로 참가했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그는 “일명 ‘시카고 엑스포 참가 단장’이었던 정경원은 시카고에 8칸 기와집의 조선 전시관을 운영했다”며 “당시 전시됐던 조선 관복, 도자기, 짚신 등은 100년이 지난 1993년 대전엑스포에서 특별 전시되기도 했다”며 한국과 엑스포의 연관성을 역설했다. 또 “‘엑스포 슈퍼스타’로 불리는 토머스 에디슨이 전기타워를 발명해 전시하면서 축제의 분위기를 살렸다”고 소개했다.
이어 이름을 올린 것은 ‘아시아 시대’ 개막을 알린 1970년 오사카 세계박람회다. “서방 선진국들의 잔치였던 세계박람회가 처음으로 동양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2010년 상하이박람회는 한글 문양의 3만8000개의 픽셀아트로 장식된 한국관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세계 박람회는 베이징이 아닌 상하이, 도쿄가 아닌 오사카에서 열렸다”며 “엑스포는 경제 산업의 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제 2의 도시에서 열리는 것이 적합한 만큼, 부산의 엑스포 유치 타당성을 강조하고 싶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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