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병훈 칼럼] 역전세난 대책으로 DSR 규제완화는 잘못

2023. 6. 8. 18:4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전세 시세가 기존 전세보증금보다 낮은 역전세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잔존 전세계약 중 역전세 위험 가구 비중은 52.4%인 102.6만 호로 작년 1월 51.7만 호에서 약 두 배 증가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DSR 규제는 차주의 상환능력을 바탕으로 한 선진적인 대출규제로 현재 총대출액이 1억 원 초과 시 연간 원금과 이자 상환액이 연 소득의 40%를 넘지 않도록 개인의 대출한도를 제한한다.

기존 전세보증금과 전세 시세의 차액을 현금자산이 부족한 임대인이 반환할 방법이 없다고 버티면 피해는 결국 기존 세입자가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존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에 한해 DSR 규제를 완화해줘야 한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내세우는 명분이다. 그러나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는 잘못된 처방이다.

첫째, 이런저런 이유로 DSR 규제에 예외를 적용해주기 시작하면 결국 DSR 규제는 무력화되고 가계부채 증가를 막을 수 없다. 한국은행 최신 연구에 따르면 가계대출과 외상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한 대금을 합친 가계신용이 GDP의 80%를 초과하면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고 경기침체가 발생할 확률이 증가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계신용은 작년말 기준으로 GDP의 105.1%에 달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5%로 3회 연속 동결하면서 기준금리가 최종금리 수준에 근접했고 향후 하락할 일만 남았다는 기대가 시장에 확산됐다. 이를 반영해 올해 1월 5%대였던 5대 은행 분할상환방식 주택담보대출 평균금리는 5월 4%대로 하락했다.

향후 주택가격에 대한 전망을 나타내는 주택가격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작년 11월을 저점으로 올해 5월까지 6개월 연속 상승했다. 필자의 분석에 따르면 주택가격전망 CSI는 전국 주택매매가격지수를 3개월 선행한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우리나라 주택가격은 상승 추세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주택가격 상승기에는 담보인정(LTV) 비율 규제만으로 가계대출 증가를 막을 수 없다. 예를 들어 LTV 비율 상한을 50%로 규제한다고 가정하면, 집값의 절반까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 집값이 5억원이면 2억50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으나 집값이 두 배로 상승해 10억원이 되면 5억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어 대출도 두 배로 늘어난다. 이럴 때 DSR 규제는 가계대출 증가를 억제하는 유용한 수단이다. 집값이 상승해도 개인의 연간소득이 증가하지 않으면 대출을 추가로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무리한 갭투자를 통해 다주택자가 된 임대인들에게 전세가격이 재상승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줘 결국 '부동산 불패'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게 된다. 전세계약은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사적 계약으로 역전세 문제가 발생하면 임대인은 보유한 주택 등 자산을 처분해 전세보증금을 반환해야 한다. 금융당국이 나서서 임차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임대인이 자산을 처분하지 않고 추가로 대출을 받을 길을 터주면, 그동안 정부 정책에 따라 무리한 갭투자를 하지 않은 다른 국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게 된다.

마지막으로 전세자금 반환 대출에 DSR 규제를 완화해주면 새 임차인에게 임대인의 유동성 위험을 전가하게 된다. 임대인은 전세자금 반환 대출을 이용해 기존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반환할 수 있지만 새 임차인은 전세자금 반환 대출이 선순위 채권으로 저당권이 설정된 집에 전세 또는 월세로 임대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만약 임대인이 유동성 위기에 처해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게 되면 임대인의 집이 경매 처분된 후 선순위 채권의 원리금을 상환한 뒤에야 새 임차인은 임대보증금을 반환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는 무리하게 갭투자를 한 임대인의 유동성 위험을 새 임차인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당국은 역전세난으로부터 임차인을 보호하려면 임대인에게 DSR 규제를 완화해줄 것이 아니라 역전세를 핑계로 전세보증금 반환을 거부하는 임대인에게 임차인이 신속한 법적 절차를 통해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도록 법률 서비스를 지원해주는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