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쓰레기 취급" 청소노동자 해고에 EBS 비판 한 목소리
공공운수노조·언론노조 기자회견 "청소노동자 해고 규탄·고용승계 촉구"
각계 노동자 100여명 참석한 결의대회 "EBS 사장, 부끄러워해야"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EBS(한국교육방송공사)가 경영악화를 이유로 청소노동자 노조 간부 3인에게 계약 연장 불가를 통보해 경영악화 책임을 청소노동자에게 떠넘긴다는 비판과 함께 노조를 무력화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이 삭감되더라도 전원 고용 승계할 것을 요구했지만, EBS는 “인력 고용은 EBS 권한 밖”이라며 사실상 거절의 뜻만 되풀이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전국언론노동조합은 8일 오전 경기도 일산 EBS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EBS의 청소노동자 해고를 규탄하고 고용승계를 촉구했다. 현장에는 50여명의 노동자들이 모였는데, 기자회견이 시작하고 채 10분도 되지 않은 때 김기홍 EBS 경영지원센터장이 나타나 노조에 불법집회라고 항의하며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256억 원 적자를 기록한 EBS는 4월25일 미화용역업체 신규입찰 공고에서 기존 27명에서 3명이 줄어든 24명의 투입인원을 확정해 과업지시서를 냈다. 입찰 공고에 따르면 3명 감축 외에도 오전조, 오후조 근무시간이 모두 1시간씩 줄었다. 주말근무, 휴일근무도 없앴다. 노동시간을 줄여 노동자들의 임금이 저하됐지만, 업무 범위는 그대로이고 인원도 감축돼 업무량이 증가한 상황인 것이다.
이에 고용불안을 느낀 청소노동자들이 모여 지난달 2일 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 EBS분회)을 결성했고, 신규 용역업체는 9일 분회장, 부분회장, 사무장 등 노동조합 핵심간부 3명에게 계약연장 불가를 통보했다. 처음 명단을 특정한 현장 관리소장과 신규 용역업체, EBS는 모두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계약만료를 통보받은 당사자 3명은 통보일로부터 현재까지 매일 출근 투쟁과 선전전을 진행해왔다.
노동자들은 임금이 삭감되더라도 전원 고용 승계를 할 것을 요구했지만, EBS는 지난달 26일 미디어오늘에 “인력 고용은 EBS 권한 밖”이라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 측은 공영방송인 EBS가 정부의 용역근로자 보호 지침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호 지침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을 승계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공공기관의 경우 지침 준수 여부에 따라 경영평가 페널티가 이뤄질 수도 있다.
현장 찾은 청소노동자 “내 동료가 해고됐지만 언제든 나일 수도 있어”
현장에는 EBS의 청소노동자들이 모였다. 현장에서 만난 한 청소노동자는 “내 위치가 '밑에 있는 사람들'밖에 안된다는 것에 좌절감이 온다. 이유가 무엇이고 각자의 책임은 무엇인지 직접 대화를 하고 싶은데, 사장과 사측 모두 대화 자체를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중간에 떠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본인의 임금을 줄여서라도 전체 고용 승계를 요구한 이유에 대해 다른 청소노동자는 “내 동료가 해고됐지만 언제든 그게 나일 수도 있으니까”라며 “그게 노조에 가입한 이유”라고 말했다.
업무는 그대로이지만 인원이 감축되고 근로시간이 줄어 청소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는 더해질 수밖에 없다. 청소노동자들에 따르면, 늘어난 업무량 때문에 월차도 사용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급여는 60만~70만원 가량이 줄었다. “주말과 연휴가 지나고 나면 쓰레기가 5배다. 20분이면 치울 걸 1시간반 동안 치워야한다. 오후가 2명으로 줄면서 오전조에 일이 전가되고 있지만, 현장소장은 방관하고 있다. EBS 직원들이 개인쓰레기를 치운다고 하는데, 우리에게 전달된 건 아무것도 없다. 소장에게 뭘 물어도 '내가 당신에게 보고할 필요 없다'고 한다. 우리를 지키고 보호해줘야 할 소장이 우리를 무시하고 차별하고 있다.” 또다른 청소노동자의 말이다.
계약만료를 통보받은 김미숙 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 EBS분회 부분회장은 “임금은 삭감되고 노동은 과중돼 남은 동료들의 근무 환경은 더욱 악화되었고 나는 하루아침에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복직은 물론 다시 돌아올 일터는 적절한 임금과 급여 보호, 안전한 근무환경과 보장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 환경을 만들고자 투쟁에 나섰다. 사업주는 근로자를 해고할 때 합법적인 사유와 절차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서정애 EBS분회장은 “2017년 4월부터 6년을 넘게, 건물 지으면서부터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하루 아침에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문자로 받았다. EBS에서는 있을 수 없는 감봉과 감축으로 청소노동자를 짓밟아버리는 행위를 했다”며 “맨 밑에 있는 우리를 쓰레기 취급한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심각한 경영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이라도 대책을 마련해야하는 경영진의 조급함이 이러한 무리수를 만들어냈다”며 “EBS 경영적자에 해고된 청소노동자들의 책임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되나. 경영진은 과연 몇 퍼센트가 되나. 비례하는 책임이 벌어지고 있나”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과연 EBS는 이 경영위기를 탈출하고 새로운 비전을 들일 수 있나. 적자가 해소되면 그 다음엔 누구를 자를 것인가. 당신과 제작현장에 같이 있었던 또다른 동료의 목을 칠 것인가”라고 물었다.
미디어 산업의 노동인권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김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장은 “고용불안에 최소한의 권리라도 지켜보고자 노조를 만들자 노조 간부들을 골라 해고하는 노조 탄압은 아주 익숙한 일”이라며 “방송 분야 비정규직 스태프들은 노조를 가입하는 것만으로도 여러 가지 유무형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국가적으로 노조를 폭력배처럼 몰아가는 요즘, 노조와 대화의 선례를 만들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는 더욱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김봄빛나래 민주언론시민연합 교육콘텐츠팀장은 지난 2020년 청소노동자의 노동인권을 조명한 EBS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에서 제작진이 전한 당부를 읽었다. “촬영하는 동안 청소 노동자들은 행여 들킬세라 그림자처럼 움직여야 했습니다. 얼굴이 알려지면 일자리를 잃을까 봐 인터뷰를 하면서도 신분을 감춰야 했습니다. 취재진을 따라다니는 감시의 눈길도 있었습니다. 당연한 요구를 하면서도 해고되지 않을까 걱정부터 해야 하는 청소노동자들이 방송이 나간 후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EBS '세상을 잇는 다큐it'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도 없는>편)
김 팀장은 “EBS 다큐멘터리를 만든 제작진들의 우려가 지금 EBS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다”며 “간접고용이라고 하더라도 청소노동자 또한 EBS의 소중한 구성원으로, 일방적인 해고 통보는 명백한 노조 탄압이고 노동 탄압이다. EBS는 경영 악화의 책임을 청소노동자에게 전달해 일방적으로 단행했던 해고를 철회하고 전원 고용 승계하라”고 말했다.
근본적 해결방법인 직접 고용에 대한 요구도 나왔다. 이준형 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본부장은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 시행된 후 공공기관에서부터 상시·지속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정규직 전환을 해나가는 작업을 시작했다”며 “왜 공영방송인 EBS가 따르지 않고 있는 지 의문이다. EBS는 당연히 고용승계를 하고 직접 고용을 해나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계 노동자 100여명 참석한 결의대회 “EBS 사장, 부끄러워해야”
오전조 청소노동자들의 퇴근 시간인 오후 2시 EBS 앞에서 이어진 결의대회에서는 EBS분회 조합원 공연과 노동자들의 연대발언, 노동인권에 대한 바람을 적은 소원 리본 달기 등의 행사가 이어졌다. 결의대회에는 예술 노동자, 대학 청소노동자, 건설 노동자, 버스 노동자 등 약 100여명의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노동당, 정의당, 진보당 등 정치권에서도 이날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안소희 진보당 경기도당 대변인은 “진보정당들이 여러분들이 외치는 분노를 더 큰 목소리를 대변해서 공영방송 사장이 부끄러워하고 자기의 책무를 제대로 알고, 청소노동자에 대한 고용을 안정화하고 함께 공생할 수 있도록 하는데 정치의 힘을 모아나가겠다”며 “오늘부터 더 많이 공론화하겠다. 공영방송 EBS가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국민의 여론이 만들어질 때까지 이 투쟁에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박유준 언론노조 EBS지부장은 “공적 책무를 감당해야 할 EBS가 재정상황을 이유로 여러분들에게 고통을 드리고 있다는 점이 부끄럽다. 청소노동자분들에게 상처를 안겨드린 것 같아 EBS구성원으로서 가슴깊이 사과드린다”며 “우리도 이렇게 심각한 재정적자 상황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돼 지금까지 여러분들의 고통을 수수방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EBS 내에는 지금 여러분들의 상황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는 분들이 여전히 많다. EBS 노조도 사장과 경영진을 설득하는데 노력하고 끝까지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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