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즈에서 중국, 러시아와 군사적 긴장 이어지는 이유는?
사전통보 ‘관례’ 인정에 국가 간 이견
한·중 직통망 있지만 중국 사용 안해
한·러 직통망 개설 작업 “잠정 중단”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현충일인 지난 6일 사전 통보 없이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에 진입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방공식별구역 무단 진입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군용기 간 우발적인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방공식별구역 사전 비행 계획 등을 통보해주는 게 일종의 관례지만 중·러는 이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다.
8일 군 당국 등에 따르면 중·러의 방공식별구역 무단 진입 문제가 반복되는 것은 방공식별구역의 지위가 임의적이라는 데서 기인한다. 이 때문에 사전에 카디즈 진입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통신망이 개설돼있지 않거나, 있다고 해도 실효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공식별구역은 국제법이 규정하지 않는 개념으로, 영공에 접근하는 타국 항공기를 일찍 식별해 대응하기 위해 설정한 임의의 구역이다. 1951년 미 태평양공군사령부가 설정한 것이 시초가 됐다. 그러나 임의적인 지위 때문에 영공과 달리 방공식별구역에 외국 군용기 등이 무단으로 진입한다고 해서 이에 대한 무력 대응은 국제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외국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기 전 통보할 국제적인 의무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지 않은 나라가 더 많다.
다만 사전 통보를 국제 관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진영이 있고 한국이 여기에 해당한다. 외국 항공기가 사전 통보 없이 우리 측 방공식별구역에 들어오는 것이 준불법 행위라고 이해하는 경우에는 ‘진입’ 대신 ‘침범’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중국과의 방공식별구역 관련 정보 교환은 양국 공군 간 직통망을 통해 이뤄진다. 한국이 중국 방공식별구역(차디즈)에 진입할 일은 사실상 없다. 직통망은 중국군이 단독으로 혹은 러시아군과 동중국해에서 공중 연합 훈련을 앞둔 경우 카디즈 진입 계획 등을 통보할 수 있도록 한 도구다. 하지만 그마저도 카디즈 진입을 앞두고 사전 통보를 하는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 하다는 게 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현재의 카디즈 영역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2013년 중국이 동중국해 상으로 방공식별구역(차디즈)을 확대하자 한국도 이에 대응해 카디즈를 확장한 것이 발단이 됐다. 하지만 중국 항공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카디즈 외곽을 따라 비행하는 모습이 레이더에 포착되는 경우가 많아 카디즈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군이 중국의 사전 통보 없는 카디즈 진입을 사실상의 ‘도발’로 인식하는 이유다.
방공식별구역 존재 자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러시아와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군은 중국처럼 러시아 공군과도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직통망을 개설하기 위해 2021년 11월 양국 해·공군 간 직통망 설치·운용 관련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그러나 1년 반이 지난 현재 모든 작업은 잠정 중단된 상태이며 군에 따르면 “현재 국제 상황”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후 동북아 역내 안보 긴장 상황이 중첩된 결과로 풀이된다. 군은 “대외 여건을 감안해 직통망 운영을 위한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미·일과 북·중·러 사이 대립 구도가 굳어지고 상호 견제가 이어지면서 방공식별구역에서의 신경전이 양측 무력 충돌로까지 번질 가능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군 관계자는 “방공식별구역은 타국 군용기와 영공에서 맞닥뜨리기 전 완충 지대로서 기능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무력 대응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 일종의 군사 도발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6일 오전 11시52분부터 오후 1시49분까지 중·러 군용기가 사전 통보 없이 카디즈에 진입했다고 당일 오후 4시25분쯤 알렸다. 이보다 앞서 중국 국방부는 위챗(중국판 SNS카카오톡) 공식 채널을 통해 중·러가 연간 협력 계획에 따라 제6차 연합 공중 전략 순찰을 실시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튿날 한국 국방부는 양국에 엄중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했는데 중·러는 통상적인 훈련 상황이었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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