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시장 사업은 나몰라라…지자체 뒤집기에 민간 손실 눈덩이

지홍구 기자(gigu@mk.co.kr), 이상헌 기자(mklsh@mk.co.kr) 2023. 6. 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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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자체 갑질 행정 ◆

8일 의정부 복합문화융합단지 내 물류센터 용지가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돼 있다. 물류센터는 전임 안병용 시장 당시 도시지원시설로 건축 허가까지 받았지만, 지난해 6·1 지방선거 때 '물류센터 백지화'를 공약한 김동근 시장이 당선되면서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박형기 기자

지방선거를 통해 단체장 교체가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부동산 개발 사업을 추진하다 번복되거나 좌초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전임 단체장 때 승인받은 사업을 후임 단체장이 수정하거나 제동을 걸면서 기존에 승인을 받았던 사업들도 줄줄이 지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4년마다 반복되는 단체장 교체기에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사업 뒤집기'와 '고무줄 행정'은 지역 개발 사업의 혼란을 부추기고 행정 불신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자초한다는 지적이다.

경기 의정부 리듬시티 물류센터 사업에 제동이 걸린 것은 지난해 7월 민선 8기 김동근 의정부시장이 취임하면서다. 전임 시장 때 건축 허가를 받은 물류센터 사업자들은 착공을 위해 지난해 안전관리계획서를 승인받았다.

하지만 지난 2월 김 시장이 물류센터 사업자에게 상생협약서를 제안하면서 사업은 돌연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의정부시는 사업자들에게 '물류센터 관련 일체의 사업 및 행정 신청을 진행하지 아니한다' 등의 내용이 담긴 협약 체결을 요구했다. 사업자들은 "실질적으로 사업 포기를 강요한 것"이라면서 거부했다.

김 시장이 사실상 사업 백지화 카드를 내민 건 선거 기간에 약속한 공약 때문이다. 리듬시티 인근 주민들은 물류센터 바로 옆에 고산공공주택지구가 들어서고, 내년 3월 물류센터 인근에 초등학교가 개교하면 아이들과 주민들이 이용하는 도로에 대형 화물차가 다녀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면서 물류센터 취소를 주장해왔다.

물류센터 사업자들은 이 같은 의정부시 방침에 대해 사업 취소를 위한 꼼수로 받아들이고 있다. "2년 내 착공하지 않으면 인허가가 취소될 수 있다"면서 의도적 지연이라는 것이다.

사업자들은 "법이 정한 대로 시설 용지 개발을 위한 토지계약과 교통영향평가 등 절차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건축 허가까지 받은 사업에 대해 주민 민원을 이유로 사실상 사업 백지화를 추진하는 것은 권한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민관합동사업 출범 전 주주 간 협약을 체결했는데 공공출자자인 의정부시의 의무도 들어가 있다"면서 "토지 보상과 각종 인허가를 지원하기로 한 의정부시가 지금에 와서 못하게 하는 건 주주 간 협약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사업이 지체되는 사이에 사업자 부담은 계속 커지고 있다. 이들은 의정부시의 '갑질 행정'으로 사업이 장기간 표류하면서 사업비 조달을 위한 브리지대출 연장 이자와 수수료로 100억원 이상이 지출됐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의정부시에 신청한 준공 전 사용 허가가 나지 않으면 종합부동산세, 브리지대출 만기 연장을 위한 이자 부담 등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업자들은 "물류 사업에 자금을 조달해준 금융사 등은 사업 난항을 우려하며 공매 처분까지 검토하고 있고, 물류센터를 임차하려던 대기업들도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이런 상황이 끝까지 간다면 민형사 소송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임 단체장 시절 결정된 사업이 새 단체장에 의해 제동이 걸린 건 이뿐만이 아니다. 양주 옥정물류센터 사업은 2021~2022년 건축 허가가 완료됐지만 민선 8기 강수현 양주시장이 허가 취소 검토를 지시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전북 남원테마파크는 383억원을 들여 함파우 관광지에 모노레일과 짚와이어 등을 만들어 남원시에 기부채납하고 운영권을 갖는 조건으로 2020년 6월 남원시와 협약했다. 민간 사업자는 시설물을 준공하고 지난해 6월 개장하려 했지만 새로 취임한 최경식 시장이 '사업비 과다 책정과 계약조건 불합리(재정부담 증가)' 등을 이유로 전방위 감사를 지시해 제동이 걸렸다.

민간 사업자들은 '공공복리'를 앞세워 사업을 뒤집는 단체장을 상대로 소송전을 불사하고 있다. 상당수는 '지자체 패소'로 이어진다. 2021년 8월 착공한 남양주시 별내물류창고는 민선 8기 남양주시가 소음·교통안전 등의 피해 우려를 이유로 지난해 10월 공사중지명령을 내렸지만 지난달 법원은 건축주 손을 들어줬다.

강수현 시장이 제동을 걸었던 양주 옥정물류센터는 지난해 11월 강 시장이 스스로 백기를 들었다. 강 시장은 "법률자문 결과 건축 허가에 위법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소송하게 되면 승소해도 패소해도 문제가 된다는 의견을 받았다"면서 옥정물류센터 백지화 계획을 포기했다.

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치적 변화에 따라 자기 정책가치를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행정의 일관성이나 지속성 차원에서 급격한 변화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면서 "정치적 요소가 경제적 판단에 개입되거나 정책의 변화가 심하면 행정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홍구 기자 /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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