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잡는 데 '일등공신' 택시기사 …각종 범인 검거 '숨은 주역들'

새벽 시간 혼자 캐리어 끌고 가는 모습 수상히 여겨 신고
신고 후 트라우마 시달리기도…경찰, 표창장·포상금 전달 예정

(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박상아 수습기자 = 20대 또래 여성을 살해한 정유정을 빠른 시간에 검거할 수 있었던 것은 택시 기사의 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사망에 닿지 않는 피의자를 검거하는 데 택시 기사가 우리 사회의 '숨은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27일 새벽 택시 기사 A씨는 부산 북구에서 정유정을 태우고 경남 양산 낙동강변에 하차시켰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정유정은 여행용 가방(캐리어)을 택시 뒷좌석에 두었고, 택시에 내리자마자 혼자 캐리어를 끌고 풀숲으로 이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수상히 여긴 A씨는 경찰에 곧바로 신고했고, 정유정은 풀숲 인근 도로변에서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A씨의 기지로 흉악범 정유정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정유정이 범행 전 방송 매체를 통해 범죄 수사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범행을 학습해 온 만큼 A씨의 신고가 없었다면 또다른 피해자가 나왔을 수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처럼 택시 기사들은 범행을 밝히는 데 '숨은 주역'이 되기도 한다.

부산 북구에서 만난 택시 기사 B씨는 3년 전 북구 덕천동 사거리에서 차량을 들이박고 도주한 차량을 목격했다. B씨는 이 차량을 끝까지 쫓아나섰고 근처 지구대와 파출소에도 신고했다.

B씨는 경찰에서 신고 접수가 따로 되지 않았다는 말에 자신이 직접 뺑소니 차량 번호를 넘기고 실시간 이동 동선을 파악해 전달했다. B씨의 노력으로 뺑소니범은 마트 앞에서 경찰에 검거됐다.

B씨는 포상금 75만원과 감사장을 받았다. B씨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누구나 그런 상황을 목격한다면 다들 나처럼 행동하지 않을까"라고 겸손해 했다.

지난 2020년 10월 택시 기사 C씨도 사기범을 검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감사장을 받았다.

C씨는 자신이 '금융업에 종사한다'는 손님이 가는 곳마다 ATM 기기로 이동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을 수상히 여겨 손님이 ATM에 돈을 송금하는 사이 사진을 촬영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손님은 제2금융권 직원을 사칭해 저금리 대환대출을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현금을 갈취해온 것으로 드러났고, 사기 혐의로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같은 신고에도 택시 기사들에게는 잊히 못할 트라우마가 찾아온다.

A씨의 주변 동료와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신고 이후 일을 잠시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동료 기사 D씨는 "A씨가 많이 힘들어해서 연락도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C씨 역시 "가족들에게 정의로운 아빠로 기억되기에 기쁘긴 하지만, 수상한 모습을 촬영하고 경찰에 신고할 때 많이 긴장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승객으로부터 혹시 모를 위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택시 보호격벽(뒷좌석과 운전석 사이 설치되는 유리막) 설치에 대한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시내버스의 경우 보호격벽 설치가 의무화된 반면 택시는 지자체의 시범 지원 말고는 설치를 명문화한 법안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정유정을 최초 신고한 A씨에게 표창장과 신고 포상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다만 A씨의 트라우마 등 때문에 별도의 전달 행사는 하지 않고 경찰이 비대면으로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검거 등 공로자 보상에 관한 규정' 제6조에 따르면 사형, 무기징역, 10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자 검거에 도움을 주면 100만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경찰은 정유정이 과외 앱을 통해 B씨 외에도 추가로 접촉한 피해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blackstamp@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