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과 아키오의 엇갈린 전략…포니와 크라운에 있다

문광민 기자(door@mk.co.kr) 2023. 6. 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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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라는 독자 모델 생산으로 축적된 정신적·경험적 자산은 오늘날 현대차를 만들었습니다. 정주영 선대 회장의 인본주의 철학과 정몽구 명예회장이 강조한 품질·기본을 바탕으로 저는 미래 모빌리티를 통해 사람을 위한 진보가 계속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지난 7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창업자인 도요다 기이치로는 대중을 위한 승용차로 일본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크라운은 일본의 세계적 기술과 숙련된 노동력을 결합해 일본의 성공과 자부심을 상징해왔습니다. 전 세계가 일본의 크라운(왕관)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합니다."(지난해 7월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회장(당시 사장))

현대차그룹과 도요타자동차의 두 창업 3세가 각각 브랜드 최초 독자 모델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나섰다. 지난해 도요타가 일본에서 하이브리드 모델 16세대 크라운을 공개하기에 앞서 1세대 모델을 복원했고, 현대차는 최근 '포니 쿠페 콘셉트'(시제차)를 원형 그대로 되살려냈다.

현대차그룹을 세계 3위 완성차 기업으로 성장시킨 정의선 회장, 대규모 리콜 사태로 최악의 위기에 빠진 도요타를 세계 1위로 올려놓은 도요다 아키오 회장. 새로운 전성기를 이끌어낸 두 회장이 이제 와 과거를 되짚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를 알아야 미래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게 두 회장의 공통된 인식이지만, 발언을 들여다보면 미묘한 차이가 있다. 정 회장은 33년여 전 단종된 모델을 밑받침 삼아 미래 모빌리티 사업의 청사진을 제시한 반면, 도요다 회장은 세대를 바꿔가며 70년 가까이 판매되고 있는 모델로 과거의 영광을 계승하자는 데 집중했다. 포니와 크라운은 지금의 현대차와 도요타를 설명하는 상징적인 모델로 꼽힌다. 하지만 디자인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차이가 크다.

현대차는 부족한 점이 있다면 외부 전문가 영입을 마다하지 않았다. 1975년 출시된 포니는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디자인으로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1973년 말 이탈리아 토리노를 방문해 자동차 디자인을 직접 요청한 이후 주지아로는 포니, 포니 엑셀, 프레스토, 스텔라, 쏘나타 1·2세대 등 현대차 초기 모델을 디자인했다. 포니 쿠페 콘셉트도 주지아로의 디자인 결과물이다.

1955년 출시된 크라운은 도요타 소속 엔지니어들의 손끝에서 완성됐다. 나카무라 겐야라는 이름의 도요타 수석엔지니어가 크라운 1세대 모델의 외관 디자인부터 서스펜션 기술까지 책임졌다. 1세대 크라운은 일본의 기술로 일본 고유의 고급차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만들었다.

고유의 것을 강조하는 도요타의 자세는 현재 인적 구성에서도 나타난다. 2019년부터 도요타의 디자인 부문 수장을 맡고 있는 사이먼 험프리스는 국적만 영국일 뿐 1994년 도요타에 입사한 도요타맨이다. 험프리스에 앞서 도요타 디자인을 책임졌던 후쿠이치 도쿠오도 1974년 대학 졸업 직후인 스물네 살에 도요타에 입사했다. 이 같은 순혈주의는 도요타가 차량 디자인에 있어 변화를 추구하되 기존 결과물을 계승하는 경향이 강한 이유로 통한다.

반면 현대차그룹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는 루크 동커볼케 현대차그룹 최고창의력책임자(CCO),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 카림 하비브 기아디자인센터장 등은 모두 외부 출신이다. 현대차그룹은 디자인을 총괄하는 자리에 유럽·미국 자동차 회사를 거치며 실력을 인정받은 이들을 영입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자동차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포니 쿠페 콘셉트 디자인을 차용한 수소전기차 콘셉트 'N 비전 74'의 경우 지난해 영국 자동차 전문매체 탑기어가 선정한 '올해의 인기 차량'으로 선정됐다.

1937년 설립된 도요타는 1967년 세워진 현대차가 따라가야 할 목표로 여겨졌다. 미래를 위한 밑받침이 된 포니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크라운. 브랜드 헤리티지(유산)에 대한 두 회장의 시각차는 현대차와 도요타의 현 상황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2009년부터 올해 초까지 사장 신분으로 도요타를 이끌었던 도요다 아키오 회장은 "하이브리드가 미래"라며 전기차 전환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현재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선 상태다. 올해 들어 도요타는 2030년까지 전기차 연간 350만대를 판매하겠다며 전동화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지만 이조차 현대차그룹의 목표치(364만대)를 뒤쫓는 형국이다.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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