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읽기] 기후위기와 농어업의 위기, 그리고 지속가능성

2023. 6. 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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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석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위원장

(서울=뉴스1) = 미래에도 반드시 그 가치와 존립이 유지되어야 하는 필수산업 한 가지를 꼽아야 한다면 그것은 농어업이라고 확신한다. 5000만 국민 주식인 쌀의 부족 상황은 국가적인 충격은 물론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소금 또한 대체제가 없는 필수영양소이기 때문에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다면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이렇듯 한국 농어업은 우리 민족과 5000년 역사를 함께 해온 중요한 생명산업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농산어촌을 중심으로 한 지방 소멸 위기라는 참담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특히 이상저온, 가뭄, 홍수, 태풍 등 빈번한 이상기후는 곡물 및 농작물 생산감소와 수산업 피해를 직격했다. 전세계 식량위기는 현실화되어 코로나19 대유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불안해진 공급망으로 인해 식량가격은 폭등하고, 국가마다 식량수출 제한조치가 내려지기도 했다.

향후 지구 평균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쌀, 밀, 옥수수 등 주요 작물의 생산량이 최대 16%까지 감소할 수 있고(미국 워싱턴대 데이비드 바티스트 교수), 곤충으로 인한 피해가 최대 25% 증가한다(스위스 뇌샤텔대)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실제 국내에서도 가뭄과 기습적인 폭우가 반복되고, 기온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어 우리의 농어업도 기후위기에서 절대 자유롭지 않다.

‘기후위기는 식량위기’라는 당면 과제와 함께 무엇이 한국 농어업의 미래 존립을 어렵게 하고 있으며,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으로서 그동안의 의정활동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정부 대책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온 과정이었다.

한 산업의 미래를 보려면 그 과거와 현재를 살펴봐야 한다. 어려움에 처해 있는 여건을 개선하고 성과를 냈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대책과 노력이 지속되지 않으면 언제든 과거로 회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쌀과 소금은 과거에 모두 화폐로 사용될만큼 높은 가치를 지녔다. 삼국시대에 쌀은 세금납부 뿐만 아니라 품삯의 대가, 물품화폐로서 기능했고, 소금은 로마시대에 군인의 급료로 지급되었으며, 금과 소금의 가치가 비슷하여, 소금을 운반하는 소금길이 로마 부흥의 비결이었다고도 한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은 쌀이 귀해서 보릿고개의 어려움이 해마다 반복되었다. 1977년 쌀 자급이 달성되기까지 '쌀 없는 날'(無米日)이 운영되어 쌀밥에 다른 곡물을 섞어 먹는 혼분식을 장려했다. 모두 쌀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소금은 어떠했는가?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 총독부에 전매국을 신설하고 일제가 특정 상품을 독점하여 제조 판매하는 천일염 전매(專賣)를 시행했다. 일제의 대규모 침략전쟁으로 많은 군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재원 충당을 위해 가치가 높았던 천일염을 이용한 것이다. 특히 한국의 천일염은 균형 잡힌 미네랄 공급원일 뿐만 아니라 마그네슘 함량이 프랑스 게랑드 소금보다도 약 2.5배 더 많아 품질이 우수하여 일제가 이익을 수탈하기에 안성맞춤인 특등 품목이었을 것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이처럼 높은 대우를 받았던 쌀과 소금의 현재는 그 대우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천일염은 정부의 육성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어 왔는지는 차치하고라도 가격 변동 폭이 크고, 쌀 산업은 공급이 과잉이라는 오해까지 받아 가며 위태로운 위험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그러나 식량자급의 측면에서 이러한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21년 쌀 식량자급률은 84.6%로 10년 중(2012년~2021년) 가장 낮았다. 100% 가까운 자급률로 쌀이 남는다는 주장과는 달리 국내 쌀 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적신호가 통계수치로 드러나는 셈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쌀 자급률 하락 원인에 대해 생산량이 지속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어 식량자급률 제고를 위해서는 오히려 쌀 생산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힘을 보태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 최근의 코로나19, 불안한 국제정세로 인해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온 상황에서 헌법상 농어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국가의 실천과 정책 수단 강구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23조 제4항은 “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가장 최근의 헌법개정인 1987년 9차 개헌에 반영된 내용으로 세계적으로도 농어업의 가치를 직접 헌법에 명시한 드문 사례이다. 그만큼 대한민국 헌법은 농어업의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이지만 실제는 역대 정부의 헌법 준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랬다면 애초에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제기될 일도, 생산비도 못 건지고 있다는 쌀 농가의 고통스런 외침도 없었을 것이다. 천일염 산업 또한 현재 가격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생산인력 감소와 고령화에 취약한 구조적인 해결과제가 남아있다.

역대 정부의 대응은 헌법상 책무와는 달리 시장의 논리 혹은 물가 관리 차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쌀을 비롯한 주요 농산물의 가격폭락사태는 되풀이되었고 농산어촌을 중심으로 한 소멸 위기가 오늘날 한국 농어업이 처한 참담한 현실이었다.

심지어 역대 정부가 농어업을 대하는 태도는 적극적인 여타 경제정책과도 대조되어, 농어업에 대한 차별로 보이는 측면마저 있었다. 정부는 본래 기준금리 인상과 인하를 통해 경기 상황을 관리하고 무역수지 흑자로 국내 유입되는 달러를 매수함으로써 환율로 인한 수출기업들의 불이익을 해소하는 등의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대안 없이 방치하게 된다면 닥쳐온 기후위기와 함께 과거에 있었던 쌀 부족, 소금 부족 등의 사태로 전 국가적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대안은 무엇인가? 헌법을 지키면 된다. 농사짓고 물고기 잡아서 생계가 유지되지 않는 현실이 고향을 떠나는 농산어촌 소멸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민의 이익을 보장한다”라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농산물과 천일염에 대한 생산비 보장법을 재발의한 상태인데 현재 농해수위에서 계류 중이다. 먼저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쌀을 비롯한 농산물의 가격이 생산비 이하로 하락할 경우, 국가에서 그 차액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를 마련했다. '소금산업진흥법'개정안은 동일한 취지로 천일염에 대한 최저가격보장제 도입의 근거를 마련했다.

지금까지 한국 농어업의 미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가격보장과 헌법 준수를 위한 정부의 인식 전환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왔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노력할 계획이다.

끝으로 비록 과거 타국의 사례이지만 농어업의 공익적 가치를 잘 함축하고 있는 미국 대선 후보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의 연설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자 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 연설 중 하나로 꼽히는 1896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도시가 불타도 농촌이 건재하면, 도시는 마법처럼 다시 생겨날 것입니다. 그러나 농촌을 파괴하면, 모든 도시의 황량한 거리에는 풀만 자라게 될 것입니다.”

당면한 기후위기 대응과제는 무엇보다 생명산업으로서의 농어업의 가치에 대한 정부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는 것을 재차 강조 드린다.

/서삼석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위원장

※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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