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천안함은 북한소행' 왜 말을 못하나

이진명 기자(lee.jinmyung@mk.co.kr) 2023. 6. 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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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대표, 대변인, 최고위원…
천안함 이야기만 나오면 함구
아직도 북한 눈치 보나 의구심
국민적 의혹 털어내려면
북한에 당당히 책임 물어야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 권칠승 수석대변인, 장경태 최고위원. 6월 6일 현충일을 전후해 벌어진 천안함 논란의 등장인물들이다. 이들의 발언에 공통점이 있다. '나는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고 생각한다'는 명확한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충일 추념식에서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이 이 대표를 찾아가 물었다. "북한의 만행이죠?" 이 대표는 대답하지 않았다.

권 대변인은 전날 기자들과 대화하다가 "부하들 다 죽이고…"라고 했다. 천안함 침몰의 책임을 북한이 아니라 최 전 함장에게 몰아가는 듯한 뉘앙스였다. 권 대변인은 이틀 후 유감을 표명하면서 "청문회 과정에서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소행'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했다. 아마도 2021년 자신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 국회 청문회를 말하는 것 같다. 2년 전 청문회 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건가.

권 대변인은 8일 최 전 함장을 만나 비공개로 사과했다. 굳이 비공개로 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게다가 사과는 최 전 함장에게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지, 천안함 사건이 누구의 소행인지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장 최고위원은 라디오 방송에 나와 권 대변인을 옹호하면서 "(최 전 함장이) 지휘관으로서의 어떤 책임감을 좀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물론 천안함 사건이 누구 소행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시간을 거슬러 2020년 3월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도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천안함 유족이 대통령을 붙들고 "누구 소행인가 말씀 좀 해주세요"라고 하자 문 전 대통령은 "북한 소행이라는 것이 정부 공식 입장 아닙니까"라고 했다. '나의' 입장이 아니라 '정부의' 입장이라고 했다.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의 공식 입장이기는 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우리 정부'라거나 '문재인 정부'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그저 '북한 소행입니다'라고 한마디면 될 것을 굳이 저렇게 표현해야 했을까 싶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1년 후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서 천안함 사건 재조사를 추진했다가 여론의 비판을 받고 철회한 적이 있다.

강제 징용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를 요구할 때마다 역대 일본 총리들이 '과거 정부의 인식을 계승한다' 정도로 얼버무릴 때 우리는 사과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나 싶어 속이 터진다. 민주당 인사들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입장을 애매모호하게 얼버무릴 때도 국민들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민주당 의원들이 아직도 북한 눈치를 보는 것인지 우려스럽다.

지난 정부 때는 천안함이 거론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전 정부 최대 치적이라고 생각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기본 전제가 '북한은 남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고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제를 근거로 군사분계선 일대 훈련 중단, 비행금지구역 설정, 감시초소(GP) 철수 등의 내용을 담은 9·19 남북군사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네 번이나 만났지만 천안함 폭침에 대해 사과 요구는커녕 언급조차 한 일이 없다.

지금은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로 9·19 남북군사합의가 형해화됐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유명무실해졌다. 더 이상 북한의 눈치를 볼 일이 없어졌다는 뜻이다.

이제 민주당도 '나는 천안함 사건을 북한 소행이라고 믿는다'고 당당히 선언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래야 국민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둔다. 그것이 민주당 혁신의 시작이다.

[이진명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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