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천 모래톱이 남아있네? 멸종위기 흰목물떼새에 친절한 행정 덕분
서울 노원구와 도봉구를 지나는 중랑천 상류 구간의 모래톱은 주민들에게 익숙한 풍경이다. 매년 봄마다 이 모래톱을 준설하지만 자연스러운 퇴적 작용으로 다시 모래톱이 형성되는 것 역시 주민들과 동부간선도로를 지나는 이들에겐 일상이었다.
지난봄 중랑천 모래톱에서는 예년과 다른 일이 벌어졌다. 8일 환경단체 북부환경정의 중랑천사람들과 각 자치구에 따르면 지난 3~5월 사이 중랑천에서 흰목물떼새의 번식·서식지 역할을 하면서 생태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하는 모래톱은 그대로 남았다. 사람들은 야생동물에 영향을 덜 미치는 모래톱만 파냈다.
과거 노원구청이 환경단체와 협의를 해 흰목물떼새의 번식, 포란 시기가 지난 뒤 모래톱을 준설한 적은 있지만 중랑천 상류 구간을 관리하는 노원구와 도봉구가 모두 ‘흰목물떼새에게 친절한 행정’을 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멸종위기 조류인 흰목물떼새는 도요목 물떼샛과의 텃새로, 몸길이는 약 20㎝가량이다. 흰목물떼새라는 이름은 목과 배의 선명한 흰색 때문에 붙었다.
매년 자치구들은 모래톱을 준설해 없애느라 환경단체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자치구들은 홍수 시 피해 대비를 위해 준설이 필요하다 주장하고 환경단체들은 흰목물떼새를 포함한 다양한 동식물 피해를 이유로 이를 반대했다. 환경단체들은 중랑천 상류 구간의 수심이 얕은 데다, 대체로 넓은 둔치와 자전거도로, 산책로 너머에 대형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형태라 보행자 출입만 막으면 큰 비에도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다고 주장했다.
중랑천 상류는 물론 중류와 청계천·한강 합수부에서도 흰목물떼새는 물론 멸종위기 파충류 남생이 서식이 확인되면서 자치구들도 태도를 바꿨다. 야생동물과 상생을 위해 일부 모래톱을 존치하기로 했다. 환경단체들은 개발이나 치수 등을 하면서 생태계 보전도 고려하는 방향으로 행정이 변화했다고 평가했다.
흰목물떼새에게 모래톱 존재 여부는 번식, 생존과 직결된다. 모래톱을 준설해 번식·서식지 면적이 급감하면 다른 조류와 경쟁도 해야 한다. 흰목물떼새는 4대강 사업을 비롯한 하천 생태계 훼손으로 인해 수가 급격히 줄어든 조류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이 새를 멸종위기종 목록인 적색목록에서 LC(관심필요) 범주로 분류하고 있다.
모래톱 일부를 남겨둔 효과는 벌써 나타났다. 흰목물떼새, 꼬마물떼새들의 번식이 예년보다 더 활발해졌다. 이정숙 북부환경정의 중랑천사람들 대표는 “올해가 다수의 모래톱을 남겨놓은 첫해인데 흰목물떼새들이 번식과 포란 시도가 더 늘어난 것이 관찰되고 있다”며 “서식환경이 좋아진 것이 흰목물떼새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지속해서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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