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공기를 담아낸 역사서…신간 '부다페스트 19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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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공기를 담아내는 것은 어쩌면 예술가들의 장기다.
그는 벤야민이 19세기 후반 파리를 분석한 것처럼 1900년 유럽의 변방이었던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를 조명했다.
최근 번역 출간된 '부다페스트 1900년'(글항아리)은 그런 시도의 결과물이다.
유대인, 그리스인, 노르웨이인 등 이민을 온 여러 민족이 부다페스트에서 신흥 부르주아로 발돋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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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시대의 공기를 담아내는 것은 어쩌면 예술가들의 장기다. 문인, 화가, 음악인, 영화감독 등은 감수성이라는 기민한 안테나를 활용해 그 시대를 작품에 녹여낸다. 발자크와 졸라는 한 시대를 총체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총서라는 야심 찬 기획을 했고, 어수선하고 무질서한 당대를 쇤베르크는 불협화음으로 표현했으며 아이젠슈타인은 민중 혁명의 기운을 담아내고자 몽타주 기법을 만들어냈다.
예술가들이 아닌 학자들도 가끔 그런 시도를 한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19세기 후반 정점을 향해 치닫던 자본주의 문화를 샅샅이 분석했던 벤야민도 그런 이들 중의 하나였다. 국내에는 생소한 헝가리 출신 미국 역사학자 존 루카스도 벤야민과 같은 시도를 했다. 그는 벤야민이 19세기 후반 파리를 분석한 것처럼 1900년 유럽의 변방이었던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를 조명했다. 최근 번역 출간된 '부다페스트 1900년'(글항아리)은 그런 시도의 결과물이다.
헝가리는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문화적으로 유럽의 변방이었다. 아시아계 마자르족이 중부 유럽에 똬리를 틀면서 세운 헝가리는 오랜 부침을 겪었다. 150여년에 걸친 오스만튀르크의 지배 이후 오스만을 격파한 합스부르크가의 통치를 받았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민중봉기와 잦은 전쟁으로 합스부르크가가 약해진 틈을 타 1867년 오스트리아와의 '대타협'을 통해 자치권을 획득했다.
자치권을 획득하고, 유대인 등 이주민을 받아들이면서 부다페스트는 발전해갔다. 1799년 5만4천여명에 불과했던 인구는 100년이 채 되지 않은 1890년 50만명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이촌향도와 이민자 수용으로 인구가 늘자 건축 붐이 일었다. 아파트 건설이 유행했고, 철도와 도로 등 각종 공사가 진행됐다.
도시가 팽창하면서 시민 간 경쟁은 불가피해졌다. 중산층 이상의 집안에선 자녀 성별과 관계없이 사회적·교육적·직업적으로 부모보다 지위가 높아야 한다는 무언의 믿음이 팽배했다. 자녀의 교육 기간은 길어졌고, 학교도 다양해졌다. 1875년부터 1900년까지 부다페스트의 학교, 교사, 학생 수는 배 이상 증가했다.
중류층 이상은 하루에 다섯 끼를 먹었고, 하녀를 고용했다. 매춘이 유행하면서 매독에 걸리는 남성들은 늘어만 갔다. 경마 등 스포츠도 인기를 끌었다. 다주택자, 금융 자본가, 상인집단이 대거 등장하면서 부의 지도도 조금씩 바뀌어 갔다. 유대인, 그리스인, 노르웨이인 등 이민을 온 여러 민족이 부다페스트에서 신흥 부르주아로 발돋움했다. 1900년경 부다페스트는 동유럽에서 부르주아 색채가 가장 강한 도시로 변해가고 있었다.
인구가 늘고, 교육 수준이 높아지며 민족적 구성원도 다양해지면서 다채로운 문화가 꽃을 피웠다. 도시 곳곳에 있는 '커피하우스'에 예술인들과 언론인들이 모여들었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 있었고, 무료로 쓸 수 있는 펜과 종이가 구비돼 있었다. 작가, 조각가, 화가, 음악가들은 각자의 테이블에 모여 치열하게 대화하고, 글을 썼다. 작곡가 버르토크, 코다이, 문학 철학자 루카치 등 국제적 명성을 떨친 이들을 비롯해 작가 크루디 줄러, 바비츠 미하이, 코스톨라니 데죄 등 헝가리 문학의 황금기를 이끈 이른바 '부다페스트 세대'들이 카페로 속속 모여들었다. 저자는 "1900년 세대 상당수가 부다페스트서 태어났다"며 "그들의 과학·문학·예술 경력이 부다페스트에서 시작됐으며 대부분이 부다페스트 학교에서 기본 교육을 받았다"고 말한다.
책은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 같은 여행서와는 거리가 먼, '역사서'지만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부다페스트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생각을 자극한다. 부다페스트 건축물과 예술 작품에 관한 상세한 묘사, 활기차면서도 쓸쓸한 거리 풍경, 도시의 국제적이고 세련된 감각, 화려했던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가 저자의 감성적인 문체 속에서 부각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결이 전혀 다르지만, 이스탄불에 대한 애정이 절절한 오르한 파묵의 에세이 '이스탄불'과 비슷한 DNA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지영 옮김. 412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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