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몸 침투 100일 만에 500마리 번식…피부과학회, '옴' 퇴치 나선다

정심교 기자 2023. 6. 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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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옴 붙었네"

흔히 재수가 지독하게 없을 때 쓰는 이 말에서도 보듯, 옴은 사람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어 번식하는 기생충이자 진드기다. 전염력이 강하고 극심한 가려움증을 유발하는데, 요양병원에 장기간 입원한 어르신에게서 감염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옴을 우리나라에서 영구적으로 퇴치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피부과 전문의들이 총대를 멨다.

8일 대한피부과학회는 '제21회 피부 건강의 날'을 기념해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옴 퇴치 국민건강사업'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옴에 걸린 환자는 2012년 5만284명에서 2021년 2만9693명으로 지난 10년새 꾸준히 감소했다. 특히 코로나19 범유행 이후 병원 방문객이 줄면서 병원에서 외부로 퍼지는 옴 감염병도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인구 10만 명당 옴 감염병 발생비율(2021년 기준)은 80대 이상 > 60대 > 70대 > 50대 > 20대 > 40대 > 30대 순으로, 80대 이상 고령층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희대병원 피부과 정기헌 교수는 "80대 이상의 어르신은 젊은 층보다 피부 감각이 둔화하고 가려움을 유발하는 요인이 다양한 데다 면역력이 떨어져 있어 옴 감염 관리에 취약하다"며 "특히 단체 생활로 환자 간 밀접 접촉이 많고 혈압계·침구 등 물품을 공유하는 요양병원에서의 감염률이 가장 높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국내 요양병원의 옴 발생 현황을 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등록된 요양병원 110개에서 5년 내 옴 발생 보고 비율이 높고, 80세 이상 고령층이 옴에 유독 잘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요양병원에 입원한 고령 환자는 기저질환의 약물 사용으로 가려움증이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옴 감염병으로 인한 가려움증과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 이양원(대한피부과학회 홍보이사) 건국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노인 상당수는 면역력이 떨어져 있어 피부가 건조해지고 긁기 쉬운데, 이런 환경에 옴이 더 잘 달라붙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요양병원을 중심으로 옴 발생을 줄이는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파악됐다.
피부과학회, 요양병원 방문 진료하고 임상진료지침도 개발

이에 대한피부과학회는 '옴 퇴치 TF 팀'을 꾸려 질병관리청, 국내 제약사 등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옴 퇴치 국민건강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장성은(대한피부과학회 대외협력이사) 교수는 "우리 학회는 대한요양병원협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사전에 신청한 전국 14개 지역 208개 요양병원을 대상으로 전담 피부과 전문의를 지정했다"며 "피부과 전문의가 요양병원을 찾아가 진료하거나, 관리·상담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 학회는 옴을 퇴치하기 위해 '옴 임상진료지침'을 만들었다고도 밝혔다. 전북대병원 피부과 박진 교수는 "기존의 혈액검사로는 옴 진단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데다 옴 감염이 의심되는 부위에서 피부 검체를 채취해 현미경으로 관찰해도 검사자에 따라 양성률이 10~70%로 편차가 크다"며 "국내 옴 역학 특징을 바탕으로 한국인을 위해 개발한 옴 표준임상진료지침이 실용적인 지침서로 널리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8일 대한피부과학회가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박진 전북대병원 피부과 교수가 옴진드기를 현미경으로 관찰해 확진하는 것에 대한 한계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옴은 침구류나 수건 등에 붙어있다가 숙주인 사람에게 달라붙어 굴을 파고, 알을 낳으며 번식한다. 옴 중에서도 가장 큰 진드기는 암컷인데, 몸길이가 기껏해야 0.3~0.4㎜로, 1㎜가 채 되지 않는다. 경희대병원 피부과 정기헌 교수는 "크기가 작아 맨눈으로 옴진드기를 관찰하기는 힘들다"며 "겉 피부(표피층)에 굴을 파고 들어간 옴진드기 암컷은 거기서 양분을 먹으며 하루 평균 알을 2개 정도씩 낳는다"고 설명했다.

알에서 깨어난 옴은 2~3일 후 '어린이(유충)'가 되고, 다시 3~4일 후 '청소년기(약충)'를 거쳐 다시 4~7일 후 '어른(성충)'이 된다. 알에서부터 성충이 되기까지 2주가량이 소요된다. 암컷과 수컷이 교미하면 수컷은 죽지만 암컷은 굴을 파고 알을 낳는 일을 반복한다. 4~8주간 낳는 알의 갯수가 40~50개에 달한다. 정기헌 교수는 "사람이 와서 살라고 허락한 것도 아닌데 옴은 무단으로 사람 피부밑에 침입해 집(굴)을 짓고 영양분을 섭취하면서 알을 낳고 번식하는 기생충"이라고 정의했다.

옴이 사람의 피부에 닿으면 사람의 표피층에서 30분간 굴을 파고 들어간다. 피부에서 1분에 2.5㎝로 기어 다닌다. 무단 침입한 옴 가족은 50일이면 25마리로, 100일이면 500마리까지 번식한다. 이렇게 피부에 파고든 옴은 4~6주간 잠복기를 거쳐 극심한 가려움증을 유발하는데, 가려움증이 밤에 심해지는 게 특징이다. 또 피부가 접히는 부위에서 옴이 더 잘 감염된다. 손가락 사이, 손목 관절 부위, 남성의 성기 부위, 발가락, 발목, 여성의 가슴 부위, 겨드랑이, 허리 등에서 붉은 발진이 생기거나 결절·물집(수포)·딱지가 나타날 수 있다.

옴을 치료하려면 밤에 연고제를 전신에 발랐다가 다음 날 아침에 씻어내는 방법, 감염 후 내복·침구류를 세탁해 3일간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병행해야 한다. 환자의 가족, 환자와 접촉이 있었던 사람은 증상의 유무와 관계없이 동시에 검사·치료받아야 한다.

휴가철 숙소에서 옴진드기에 옮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양원 교수는 "피부에 달라붙은 옴진드기는 샤워만 잘해도 잘 떨어진다"며 "청결하지 않은 숙소에서 잠잘 땐 자기 전 이불을 잘 털고, 숙소 이용 후 샤워를 깨끗이 하면 옴 예방에 도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대한피부과학회 김유찬 회장은 8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옴 퇴치를 위해 학회 내 '옴퇴치 TF 팀'을 꾸리고 옴 퇴치 국민건강사업을 수행한다고 밝혔다. /사진=정심교 기자


이날 대한피부과학회 김유찬 회장은 "코로나19 이후 감염병을 예방하고 대처하는 일이 국가적 차원에서 매우 중대한 일이 됐다. 반면 코로나 방역 조치가 완화되고 고령화로 인해 집단 시설의 입소가 늘어나며 대표적 감염성 질환인 옴이 증가해 주의해야 할 필요성이 높다"며, "우리 학회는 요양 병원을 중심으로 피부과 전문의가 관리하는 시스템을 지속해서 보완, 평가하며 옴의 선제적 예방 활동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대한피부과학회는 1945년 10월에 설립됐으며 정회원(피부과 전문의) 2520명, 준회원(피부과 전공의) 284명, 기타 준회원 34명, 특별회원 1명 등 총 2839명이 소속해 있다. 11개 지부 학회, 15개 산하학회가 있고 각 학회는 진료·교육·연구 분야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학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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