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고 웃기는 존재의 총합 ‘이반지하’, 정상사회 견고함을 흔들다[플랫]

플랫팀 기자 2023. 6. 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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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검색창에 ‘이반지하’라고 쳐보자. 혼란스럽다. 머리에 ‘탈’을 쓰고 성별을 인식하는 기준이 되는 신체 부위를 겨우 가린 채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부터 단발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비교적 ‘정상적’인 모습까지. 이반지하를 수식하는 단어 또한 많다. 퀴어 페미니스트, 현대미술가, 퍼포머, 애니메이션 감독, 작가. 반지하 방에 작품을 쌓아놓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충당한다. 이반지하를 하나로 요약하기는 불가능하다. 이 요란하고 이상하고 전복적인 존재, 불편하고 웃기는 존재의 총합이 이반지하다. 그는 말한다.

나는 그냥 보여줄게. 설명은 너희가 해봐. 내가 뭔지.
퀴어 아티스트 이반지하가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반지하는 퀴어를 뜻하는 한국말 ‘이반’과 작가의 생활공간이자 작업공간을 상징하는 ‘반지하’를 결합한 이름이다. 백준서·양다영 PD

한국 퀴어(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이반지하는 하나의 현상과도 같았다. 2013년 솔로 앨범 <이반지하>를 출시하고, 2019년 ‘이반지하 최초마지막단독인권콘서트’에서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듣는 이의 머릿속에서 ‘ㅋㅋㅋㅋㅋ’가 자동으로 떠오르게 만드는 거침없는 입담으로 인기를 끌었고, 퀴어 시트콤 <으랏파파>의 각본을 썼다. 한국 사회에 일찍이 없었던 퀴어 문화를 그는 온몸으로 만들어냈다. “너와 내가 만나고 우리와 그들이 만나서 만든 오염”(자작곡 ‘오염’)이란 가사처럼, 이반지하는 퀴어 커뮤니티를 넘어 정상 사회까지 자신의 활동 무대를 넓히고 있다. 2021년 첫 에세이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문학동네)를 펴낸 그는 지난달 두 번째 에세이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이야기장수)를 냈다. 그는 말한다.

“앞으로도 계속 웃기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삶의 근본이고 라이프스타일이며 젠더이고 섹슈얼리티이자 커뮤니티이다.”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이반지하를 만나 그의 삶과 예술, 유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퀴어 아티스트 이반지하가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반지하는 퀴어를 뜻하는 한국말 ‘이반’과 작가의 생활공간이자 작업공간을 상징하는 ‘반지하’를 결합한 이름이다. 백준서·양다영 PD

“유머는 제가 취하는 삶의 태도인 것 같아요. 엄청나게 웃겨야겠다고, 대안적 시선으로 바라봐야겠다고 일부러 마음먹기보다는 경험한 것들을 나의 필터로 걸러 밖으로 내보내는 예술가로서의 방법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반지하의 글은 웃긴다. 책장을 넘기다 불시에 ‘현웃’(현실웃음)이 터지고, 낄낄대다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하지만 웃음의 재료는 그가 한국에서 퀴어이자 예술가로서 살면서 겪어온 고통, 차별과 억압이다. 고통스러운 삶과 그것을 끝내 버텨내는 이반지하의 팽팽한 기싸움 속에서 능청스럽지만 날카로운 유머가 터져 나온다. 그는 “유머는 유통기한이 굉장히 짧은 신선식품” “외줄타기를 하는 광대가 추는 칼춤”이라고도 말한다.

첫 책에서 자전적 이야기를 들려줬던 이반지하는 이번 책에서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한국에서 퀴어로 살아가는 삶과 일상, 자신의 예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는 대한출판문화협회 ‘올해의 청소년교양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첫 책이 좋은 평가를 받고 독자들과 교감하면서 두 번째 책에서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저 자신을 추구할 수 있었어요. 감사한 일이죠. 첫 책을 내고서는 제 일부분을 계속 밖에 두고 집에 안 들어오는 느낌이었어요. 대중에 노출되는 데 쓰이는 에너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책에 대해 기존 관념에 기대어 해석을 하다 보니 ‘이반지하’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소비가 되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는 이반지하의 인기에 대해 “1차적으로는 ‘사이다’ 서사가 있다. 이반지하가 거침없이 시원하게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깊이 들어가보면 단순히 속을 시원하게 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며 “이런 요소가 이반지하에게 입체적인 매력을 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반지하는 당시 단발이었던 머리카락을 투블록으로 시원하게 잘랐다. 사회가 생각하는 남성·여성적 외모에 부합하지 않는 그의 외모에서 ‘젠더 트러블’이 발생한다. “젠더퀴어 등 남녀 이분법적 성별이 아닌 다른 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여성의 맥락에만 위치지어지는 부분들이 있어 불편함과 부대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머리스타일을 바꾸게 된 것 같아요.”

첫 책이 성공을 거두며 이반지하의 예술과 대중의 접점은 넓어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이반지하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고 말한다.

퀴어 아티스트 이반지하가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반지하는 퀴어를 뜻하는 한국말 ‘이반’과 작가의 생활공간이자 작업공간을 상징하는 ‘반지하’를 결합한 이름이다. 백준서·양다영 PD

“대중과 만나는 면적은 넓어졌다고 할 수 있지만 방향은 여전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요청하는 대로 살면 이반지하의 예술은 나올 수가 없어요. 마치 정상성을 요구하는 사회가 없는 것처럼, 유연한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야 생존할 수 있거든요. 그래야 다른 젠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삶의 많은 순간들이 투쟁적이라고 느낄 때가 많아요. 예술의 특징은 착각하는 공감이기도 합니다. 제 예술이 어떤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과 제 삶이 사람들의 삶과 접점을 갖는 건 조금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책에는 지인들의 장례식에 참여하며 겪은 퀴어들의 죽음,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차별과 편견이 빼곡히 담겼다. 장례식장 영정 속 지인들의 얼굴을 보면서 그는 “아, 제발 좀 죽지 말고 늙기만 하세요!” “당신들의 죽음은 영원히 이르다”라고 속으로 외친다. 이반지하는 “퀴어들의 죽음이 개인적으로 중요한 주제다. 기록할 의무를 느끼고 있다”며 “예술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죽음을 기록하는 것, 이반지하라는 예술가의 필터 속에서 이런 감정들을 일으켰다는 것을 계속해서 써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반지하는 2021년 캐나다와 미국에서 현지 예술가들과 함께 공연과 전시 협업을 했다. 북미에서도 ‘K대중문화’ 열풍은 뜨거웠다. 책에는 한 캐나다 예술가가 한국 리얼리티쇼와 드라마를 언급하며 열띤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한국의 LGBTQ 인권 상황은 어떠니”라고 묻자, 이반지하가 “이제 차별금지법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야”라고 답하고 함께 박장대소하는 장면이 있다. 그는 “해외에 나가면 한국 문화를 힙하고 세련되게 여긴다. 그런 사회의 인권의식이 뒤처져 있다는 데서 아이러니를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반지하는 ‘부치의 자궁’에 대해서도 말한다. 레즈비언 중 ‘남성성’이 돋보이는‘부치’들이 중년으로 접어들며 맺는 신체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직접 들었다. 산부인과에 가는 것이 싫어 평생 산부인과를 가지 않던 ‘성확정’이 자궁이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병원에서 자궁 제거 수술을 받은 사연, 배가 아파 병원으로 간 ‘성열’이 어디가 아프냐는 질문 이전에 남성으로 보이는 외모에 대한 질문부터 들어야 했던 에피소드는 성소수자들이 의료에서 경험하는 차별을 보여준다. 그는 “퀴어들의 삶을 두껍게 전달해 삶 전체를 보여줄 때 많은 연대나 공감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반지하의 본명은 김소윤이다. 그는 이제 “김소윤이냐 이반지하냐의 틀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지금이 가장 저답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삶의 목표가 뭐냐고 했을 때, 나답게 살다 죽는 것이잖아요. 내부에 분열됐던 것들이 많이 통합된 것 같고 그래서 좀 더 위험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반지하는 곧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전시도 열 계획이다. 이반지하에게는 삶 자체가 예술이며, 실험이다. 그의 예술과 삶이 성공했으면, 그래서 그의 ‘위험한 유머’를 계속해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다.

아무리 멀리 던져버려도 악몽처럼 되돌아오는 탱탱볼 정도는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어디에 부딪치든 딱 그만큼 탱탱하게 튕겨올라와 자꾸만 거슬리게 하는 작고 꽉 찬 싸구려 형광색 공. 그래, 굳이 말하자면 나는 이쪽이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han.kr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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