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97) “강원도 특산물 감자 소비를 위해 감자맥주를 만들었어요.”

박순욱 선임기자 2023. 6. 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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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춘천의 지역 수제맥주 업체 감자아일랜드 김규현, 안홍준 공동대표
특수 효소 사용해 알코올발효 난관 극복하고, 감자 이취도 거의 잡아
강원도 농산물인 옥수수, 팥, 복숭아, 사과로도 맥주 만들어
“감자아일랜드 브랜드 가치 키워 지역경제 상생방안 찾을 터”
감자아일랜드 주요 제품들. 왼쪽부터 감자맥주, 옥수수맥주, 팥맥주, 사과맥주, 복숭아맥주. 모두 강원도 농산물을 부재료로 사용한 맥주들이다. /감자아일랜드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몰 지하에 새로 들어선 팝업매장 감자아일랜드. 강원도 특산물인 감자를 아낌없이 넣은 감자아일랜드피자를 비롯해 춘천닭갈비 피자 등이 인기 메뉴다. 그리고, 식당 입구의 글귀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돌릴 만하다.

“비옥한 토양과 건강한 나무에서 자라난 우수한 농산물이 맥주가 되어 자라나는 미지의 섬 ‘감자아일랜드’를 향한 항해 길에 초대합니다.”

이곳에서 내놓는 음식 식자재 대부분은 강원도 농산물이다. 강원도에서 나고 자라, 강원도 춘천에서 대학을 다닌 청년 둘이 만든 기업이 지난 5월말부터 운영하는 임시매장이 이곳 롯데월드몰 지하1층 감자아일랜드다. 강원도 춘천에 본사를 둔 감자아일랜드는 2021년에 설립한 신생 맥주 양조장이다.

감자아일랜드의 김규현(사진 왼쪽), 안홍준 공동대표. 강원대 4학년 재학 중 창업강좌를 같이 수강한 게 계기가 돼, 지역 수제맥주 양조장을 창업했다. /박순욱 기자

그런데 이곳을 찾는 고객들이 음식과 함께 누구든 공통적으로 시키는 음료가 하나 있다. 이곳 업장의 시그니쳐 맥주인 감자맥주다. 강원도 감자를 맥주 부재료로 넣은 맥주다. 청량감과 함께 쌉싸름함이 특징인 수제맥주에 그런데 감자라니? 감자맥주 맛은 과연 어떨까?

그런데 웬걸? 감자 향이나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라거 같은 에일맥주 스타일이다. 목 너머로 잘 넘어가지만, 홉에서 느껴지는 쌉싸름함이 마시는 이를 기분좋게 한다. 잘 만든 수제맥주다. 하지만, 감자 맛이나 향이 느껴지지 않는 감자맥주는 좀 이상하다. 감자 향이 안나는 맥주에 굳이 감자는 왜 넣었을까? 싶기도 하다. 고향인 강원도 농산물인 감자 소비를 위해? 세상에 없는 맥주를 만들고 싶어서? 또, 생각해보면 감자 맛이 나는 맥주는 호불호가 나뉠 것 같았다. 사실, 감자는 술 재료로 각광받는 농산물이 아니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보드카를 제외하고는 감자가 들어간 술은 찾기 어렵다. 전세계 맥주시장 전체를 둘러봐도 감자맥주 개발 기록은 일부 있지만, 시판 중인 감자맥주는 어디에도 없다. 세상에 없는 감자맥주를 무슨 생각에서 만들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감자아일랜드 본사가 있는 춘천으로 차를 달렸다.

감자아일랜드는 강원도의 대표 작물인 감자를 활용한 수제맥주를 만드는 청년 스타트업이다. 춘천의 강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선후배인 김규현, 안홍준 두 청년이 공동대표다. 강원대 재학 중에 수강한 창업강좌가 계기가 됐다. ‘해마다 버려지는 감자를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떠올린 아이디어가 지역 수제맥주 양조장으로 이어졌다. 인터뷰는 김규현 대표 혼자 응했다.

우선, 궁금했던 감자맥주 개발 스토리를 물었다. 감자를 넣고도 감자 맛이나 향이 안나게 만든 이유는 뭐고, 또 그렇게 되기까지 개발 기간이 얼마나 걸렸나?

“감자는 특유의 이취가 있다. 이 냄새는 사실, 술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감자의 이취를 최대한 줄이는게 관건이다. 아직 감자 특유의 이취를 완전히 잡지는 못했다. 감자 함유량을 더 늘리지 못하는 이유다. 감자 함유량은 전체의 2%가 못된다. 하지만, 이게 적은게 아니다. 맥아 투입량의 40% 수준이다.”

하지만 감자맥주 개발에 2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감자의 이취 때문만은 아니었다. 감자에는 전분이 많다. 이 전분이 당분으로 바뀌고, 이 당분이 알코올로 바뀌는 과정이 바로 발효다. 그런데, 맥주의 알코올은 맥아(싹을 틔운 보리)에서 나온다. 맥아가 갖고 있는 전분이, 당분으로, 또 알코올로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감자맥주는 맥아에도 전분이 있고, 감자에도 전분이 있으니, 알코올 만들기가 더 쉬웠을까?

“생각했던 것보다 발효공정이 너무 어려웠다. 감자 전분의 당화발효, 알코올 발효가 예상치보다 훨씬 낮았다. 발효에 문제가 있는데다 냄새도 꼬리꼬리한 향이 나서, 도저히 술로서는 빵점이었다. 경기대학교 수수보리아카데미에서 맥주 양조를 배웠지만, 공동창업자 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전문양조인도 영입하고, 또 강원도 농업기술원 도움도 받았다. 감자 알코올 발효는 몇가지 효소를 넣어서 어느 정도 해결했고, 꼬리꼬리한 이취는 상당부분 잡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감자를 맥주에 넣기가 그렇게 어렵다면, 감자를 안 넣으면 될 일 아닌가? 어차피 감자는 부재료에 불과한데. 어차피 맥주 맛을 결정하는 건 감자가 아니라, 맥아와 홉인데 말이다. 그런데 두 청년의 생각은 달랐다. 맥주 양조를 포기했으면 했지, 감자맥주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강원도의 대표 지역농산물인 감자가 해마다 상당량 버려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감자를 맥주에 넣어서 감자 소비를 늘려보자는 생각에서 감자맥주 개발을 시작했다. 말하자면, 단순히 맛있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 창업을 한 것이 아니라, 감자로 맥주를 만들기 위해 맥주 양조장을 차린 것이다. 우리에게 감자는 이 사업을 시작하게 했고, 또 결실을 봐야할 가장 핵심적인 아이템이다.”

강원도의 특산물로 감자만 있는게 아니듯이, 감자아일랜드가 감자맥주만 만드는 건 아니다. 강원도 홍천의 옥수수를 넣은 옥수수맥주, 영월의 팥과 사과를 넣은 팥맥주와 사과맥주, 그리고 춘천의 복숭아를 넣은 복숭아맥주도 인기리에 판매 중이다.

이들 부재료들은 맥주 양조 과정에서 투입하는 시기는 다 다르다. 감자와 옥수수는 당화과정(전분을 당분으로 바꾸는 과정)에 넣고, 팥은 맥즙을 끓일 때, 그리고 사과와 복숭아는 발효가 끝나고 맥주를 숙성시킬 때 넣는다. 감자아일랜드 김규현 대표는 “감자와 옥수수는 전분이 있고, 사과와 복숭아는 당분이 있는 점을 감안하고, 또 재료 특유의 향이 맥주에 잘 느껴지도록 하기 위해 투입 시기를 달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팥맥주는 팥 외에 팥 착향료를 일부 넣는다. 실제 팥은 풍미 역할(맥주를 마셨을 때 느끼는 팥맛)을, 착향료는 향(코로 맥주 향을 맡을 때 느끼는 팥향) 역할을 한다고 한다. 김 대표는 “이런 과정 역시, 30번 이상의 양조실험을 하고 나서 터득한 노하우”라고 말했다.

감자아일랜드 안홍준(왼쪽), 김규현 공동대표가 제조 중인 맥주 향과 맛을 보고 있다. /박순욱 기자

지역 수제맥주 양조장인 감자아일랜드는 두 공동대표가 대학 재학 중 창업한 탓에, 학교의 도움을 적잖이 받았지만, 지금은 거꾸로 모교에 도움을 줄 정도로 성장했다. 종업원 8명 중 5명이 강원대 모교 출신이며, 대학 축제 때는 총학생회와 손잡고 ‘곰두리(강원대 마스코트)맥주’를 판매해, 수익금을 학교 발전기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감자아일랜드 가격은 일반 수제맥주에 비해 싸지 않다. 355ml 한캔에 6000원 정도다. 500ml 네 캔에 1만원, 1만1000원 하는 편의점 수제맥주에 비해서는 가격 경쟁력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김규현 대표는 입장이 명확했다.

“우리 제품을 편의점에 판매할 생각이 없다. 편의점의 저가 공세에 맞출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한때는 편의점이 수제맥주 시장을 키운다는 긍정적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반대라고 여긴다. 편의점 맥주 매대를 한번 가보면 금방 안다. 어떤 수제맥주가 새로 나왔는지 고객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또다른 제품들로 교체된다. 신제품 교체를 너무 빨리하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브랜드를 제대로 알리기 어렵다. 이건, 수제맥주 시장을 죽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특히, 편의점 본사에서 너무 낮은 단가를 요구하다보니, 결국 품질 좋은 수제맥주들은 편의점에 진출할 수 없고, 소비자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수제맥주들은 재료를 아낀 제품들일 수밖에 없는 게 지금 현실이다.”

편의점에 진출하지 않으면서도 감자아일랜드는 맥주 캔 제품은 왜 만들었을까? 수제맥주 업체들은 편의점 진출을 염두에 두고 캔 제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감자아일랜드 맥주 제품은 병 제품이 아닌 캔에 전량 담는다. 일부는 생맥주로도 판매하고 있다. “캔 제품은 첫째, 보관이 유리하다. 맥주가 가장 취약한 게 빛, 열, 산소 이렇게 셋인데, 병 패키지는 이것들을 완전히 차단하지 못한다. 캔 제품은 빛과 산소는 거의 완벽하게 막을 수 있다. 둘째 이유는, 캔은 쉽게 차곡차곡 쌓을 수 있어 포장하기가 병 제품보다 낫다.”

강원도 농산물 활용을 목표로 감자아일랜드를 창업했다고 하지만, 감자아일랜드의 지역 농산물 소비는 아직 미미하다. 우선 맥주 재료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맥아와 홉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산 보리 맥아와 홉을 사용하는 수제맥주 업체들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양조장은 수입산을 쓰고 있다. 테라, 캘리를 생산하는 대기업 맥주회사는 광고에서 대놓고 ‘우리는 호주산, 덴마크산 맥아를 사용한다’고 자랑하는 게 우리 맥주시장의 현주소다. 말로는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했다고들 하지만, 국내 주류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맥주의 원료가 전량 수입산이라는 건, 문제가 적지 않다.

정작 감자맥주도 감자 소비를 많이 하지 못한다. 감자맥주의 경우, 이취를 완전히 잡지는 못한 탓에, 맥주에 들어가는 감자 함유량이 2%가 채 못된다. 그리고 맥주 전체 생산량이 많지 않아, 한해에 소비하는 감자 양이 많을 수가 없다. 옥수수, 팥 등 맥주에 들어가는 다른 부재료도 아직은 사정이 마찬가지다.

감자아일랜드 팝업매장인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몰점. /감자아일랜드

지역특산주 제도의 범위 확대도 국산농산물 소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지역 농산물 소비 권장을 취지로 도입된 지역특산주 제도는 현재 탁주, 약주에만 허용돼 있다. 앞으로 맥주 양조에도 지역특산주 제도가 도입되면 지역농산물을 사용한 수제맥주 업체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지역특산주 면허를 취득하면, 온라인 판매 허용과 세금 50% 감면 혜택이 주어진다.

끝으로 김규현 대표에게 앞으로의 계획, 포부를 물었다. “우리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서 맥주를 만들어, 지역과 상생하고, 이 맥주들을 국내 전체와 나중에는 해외에까지 퍼뜨릴 욕심을 갖고 있다. 우리 브랜드와 우리 농산물 인지도를 최대한 끌어올린 뒤에는 다시 지역으로 회귀하는 게 최종 목표다. ‘감자 섬’이라는 오프라인 공간을 만들어 우리가 현재 만들고 있는 감자아일랜드 브랜드 전체를 판매할 것이다. 여기에는 맥주뿐 아니라 다양한 음료, 의류, 굿즈 상품들도 있을 것이고, 지역의 우수한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만든 다양한 지역 브랜드도 선보일 생각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전국과 해외로 진출한 뒤, 다시 지역으로 돌아와 지역경제와 또다른 차원에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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