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재건축, 너도나도 ‘49층 짓겠다’는 이유[부동산 빨간펜]

이축복 기자 2023. 6. 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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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 하락세가 다소 진정되면서 다시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빈 땅이 거의 없는 서울의 경우 재건축 단지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다보니 관련 질문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압구정, 여의도, 잠실 등 노른자 땅에서 줄줄이 대규모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요즘 발표되는 재건축 계획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너도나도 약속이라도 한듯 ‘49층 이상의 고층으로 짓겠다고 발표하고 있는 건데요. 이달 1일 열린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압구정2구역 재건축 조합 설계공모 작품 전시회에선 국내 유명 건축설계업체 3곳이 예상 조감도와 실물 모형을 선보였는데, 공통적으로 49층(한 곳은 최고 65층 안도 제안)으로 짓겠다고 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강북에서는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이 68층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고, 여의도에서는 한양아파트(최고 54층), 시범아파트(최고 65층) 등이 초고층 추진 단지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오늘은 최근 재건축 단지들이 내세우는 초고층 설계에 대해 왜 재건축 조합들이 이런 선택을 하는건지, 장단점은 무엇인지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Q. 왜 이렇게 다들 고층으로 짓겠다고 하는 건가요? 계기가 있는 건가요?

“과거 서울, 특히 한강변에는 이른바 ‘35층 룰’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새로 짓는 아파트(주상복합 제외)의 최고층수를 35층으로 하는 서울시의 경관 관리 방안 중 하나였죠. ‘35층 룰’은 획일적인 고층 아파트의 건설이 한강, 남산, 북한산, 관악산 등 서울이 지닌 도시 경관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훼손한다는 측면에서 도입됐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획일적인 규제라는 비판이 많았죠. 최종적으로 서울시가 올해 1월 새로운 도시계획인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발표하며 35층 룰은 의무조항에서 삭제된 상태입니다. 그러다보니 여러 재건축 단지들이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초고층 설계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는 거죠.”

올해 1월 확정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 주요 내용. 기존 규제인 35층 룰을 삭제해 다양한 경관 창출에 나섰다. 서울시 제공


Q. 그런데 고층으로 지으면 좋은 건가요?

“고층 설계는 재건축 조합 사이에서 일종의 ‘랜드마크’ 전략으로 분류됩니다. 지역을 대표하는 단지로 자리매김해 조합원의 자산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것이죠. 인근 단지와의 자존심 경쟁으로 비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익도 많습니다. 건물을 높게 지으면 사생활 보호를 위한 거리를 확보하기 좋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여러 동을 지을 때는 채광, 화재 등의 이유로 건물 간 거리를 일정 간격 이상 띄워야 합니다. 또 이 간격은 건축물의 높이에 따라 비례해 커집니다. 건물의 높이가 낮아질수록 건물간 간격의 하한선이 낮아져 빽빽하게 지을 수 있다보니 저층 건물은 사생활 보호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죠.


현재 서울시에 적용되는 인동거리 규정. 건물이 높아질수록 간격을 넓게 해야 한다.서울시 제공.


고층 건물 꼭대기층에 지어지는 주거공간인 ‘펜트하우스’가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을 보면 현재 시장에 초고층 건물 수요가 있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고층 건물에 대한 동경이 시장가격에 반영되는 것 같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Q. 건물은 높을수록 무조건 좋은 건가요?

“단점도 많습니다. 가장 크게는 공사비가 늘어나죠. 건물이 높아질수록 건물에 부딪히는 바람의 속도는 빨라집니다. 이 때 바람이 미는 힘은 풍속의 제곱에 비례해 늘어나죠. 계산해보면 건물 높이가 30층 이상인 건물은 바람이 미는 힘이 건물 자체의 무게가 누르는 힘보다 커진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잘못 지으면 바람에 건물이 뽑힐 수도 있단 얘기죠.

이런 이유에서 건물을 높이 지으면 지을 수록 골조공사 비용은 더 많이 들어갑니다. 한국초고층도시건축학회의 설명에 따르면 같은 면적의 건물을 40층으로 지을 때보다 80층으로 지을 때 골조 비용이 2배 이상 들고 이는 최종적인 건축비용을 약 1.4배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물론 공사 기간도 길어지겠죠.”

Q. 그런데 유독 60층도, 100층도 아니고 49층으로 짓겠다는 설계안이 많은건 왜 그런 건가요?

“재난 대피를 위한 공간 때문입니다. 건축법은 높이 200m 또는 50층 이상부터 초고층 건물로 분류합니다. 초고층 건물은 대피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30층마다 한 층을 모두 비우는 피난안전층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곧 분양할 수 있는 면적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49층 아파트의 경우 ‘준초고층’으로 분류돼 이 규제를 적용받지 않습니다. 분양 가능면적만 보면 초고층으로 분류되지 않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죠. 초고층 건물에 적용되는 사전재난영향성검토 대상에서도 제외됩니다. 이 때문에 35층 룰 폐지가 다양한 높이를 지닌 아파트 단지 경관을 조성하기보다 획일적인 49층 높이 아파트를 낳는 요소에 불과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Q. 너도나도 고층으로 짓겠다고 하면 문제는 없는 건가요?

“누군가 사는 집 남쪽에 있는 아파트가 초고층으로 재건축돼 햇볕을 가로막는 일이 벌어진다면 당연히 반발이 생기겠죠. 또 남산, 한강 등 서울 내 자연경관을 고층 건물에 있는 소수만 누리게 된다면 이 또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반포대교 남단 상부, 선유도 전망대 등 조망점 39곳과 조망축 26곳을 설정해 개발 이후 형성될 경관을 관리합니다. 한양도성 인근 역사도심, 한강변, 인왕산, 남산 등 주요산 주변은 중점경관관리구역으로 설정했죠. 재건축 계획을 심의하는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이런 점을 참고해 경관 심의를 합니다. 다만 업계에서는 관련 심의 때 심의위원의 평가 기준을 알기 어려워 통과가 쉽지 않다고 호소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서울시에서 설정한 중점경관관리구역. 각 구역마다 경관 가이드라인이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서울시 제공.


이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고층 설계를 허용하는 대신, 특정 단지가 경관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일부를 기부채납 형태로 개방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가 대표적인데요. 당시의 35층 룰을 깨고 38층까지 지을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대신 커뮤니티 센터를 일반에 개방하도록 하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준공 뒤엔 입주민 불편이 우려된다며 이를 폐쇄해 빈축을 사기도 했죠. 서초구청에서 수천만 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고 나서자 2018년 5월 반포동 주민에 한해 개방하며 사태는 마무리됐습니다.

Q. 그래도 다들 고층으로 지으려고 하지 않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반포주공1단지(1, 2, 4주구) 재건축 사례를 한번 보시죠. 55개 동, 5002채 규모 단지를 짓는 사업인데 지난달 조합에서 총회를 열었습니다. 35층 층수 제한이 폐지되었으니 기존 설계안인 35층안 대신 49층안으로 바꾸자는 안건이 상정됐습니다. 공사 기간은 기존 대비 7개월 연장되고 공사비용은 약 2000억 원 인상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투표 결과는 어땠을까요? 찬성 634표 대 반대 1297표로 부결되며 35층안으로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2003년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승인돼 2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난 데다가 이주·철거가 끝난 상황에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힘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반포주공1단지(1·2·4 주구) 재건축 배치도. 최고층수는 35층이며 공공개방 커뮤니티 시설은 단지 중앙에 있는 스카이브리지에 들어선다.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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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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