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으로 변한 백주대낮 뉴욕 하늘... “이것이 기후변화의 얼굴”

이용성 기자 입력 2023. 6. 8. 13:30 수정 2023. 6. 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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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다나 산불 여파로 뉴욕 공기질 ‘세계 최악’ 수준
미 환경청, 1억명에 ‘대기질 경보’ 발령
선거운동·뮤지컬·프로야구 등 ‘올스톱’

캐나다 전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연기가 국경을 넘어 미 동부를 급습하면서 7일(현지 시각) 오후 3시 기준 뉴욕시의 공기질지수(AQI)는 342까지 치솟아 전 세계 주요 도시 중 ‘최악의 공기질’ 1위라는 불명예를 썼다고 CNBC와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이 보도했다.

7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의 하늘이 캐나다 산불의 영향으로 뿌옇게 변했다.

최대 500까지 측정하는 AQI는 통상 100 이상이면 숨쉴 때 건강에 좋지 않고, 300 이상이면 ‘위험’ 수준으로 평가된다. AQI가 100만 넘어도 노약자와 기저질환자는 외출을 자제해야 하며, 한국이 황사와 미세먼지가 심할 때가 통상 170~200 정도다.

그런데 이날 뉴욕주(州) 중부 시러큐스와 빙엄의 AQI는 한때 400을 돌파했다. 캐나다 오타와 등 남동부 400여곳 자연 산불로 인한 연기가 남동풍 바람을 타고 내려와 미 북동부를 뒤덮은 가운데, 뉴욕주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이는 뉴욕 기상관측 사상 최악의 대기질로, 2001년 9·11 테러로 분진에 뒤덮였을 때도 AQI가 이렇게까지 치솟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7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 위치한 자유의 여신상이 캐나다 산불 영향으로 뿌옇게 변해 있다. 지난달 초 캐나다에서 시작된 산불 연기가 미 동부까지 확산한 가운데 이날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1억명 이상의 주민에게 대기질 경보를 발령했다.

캐나다 산불 연기가 수일째 뉴욕 등 미국 동부까지 퍼지자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이날 미국 인구의 3분의 1가량인 1억명의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대기질 경보’를 발령했다. EPA는 AQI가 151 이상일 때 모든 사람의 건강에 안 좋은 수준으로 보고 경보를 발령한다.

뉴욕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 등은 형체를 간신히 알아볼 정도로 대기가 탁해졌다. 지난달부터 캐나다 동부 퀘벡주(州)를 중심으로 발생한 산불이 수백 곳으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미국 동부까지 연기가 밀려온 탓이다. 미국 기상청(NWS)의 기상학자 마이크 하디먼은 이날 뉴욕타임스(NYT)에 “마치 화성을 보는 것 같다”며 “대기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뉴욕시 도서관 등 관공서들도 이날 오후 3시쯤 서둘러 문닫았고, 동물원도 문을 닫고 동물들을 실내로 대피시켰다. 브로드웨이 일부 공연은 배우들이 출근을 못해 취소됐다. 이달 말 선거를 치르는 뉴욕시의회 각 정당별 선거운동도 잠정 중단됐다.

7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시의 하늘이 산불 연기로 뒤덮여 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은 이날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릴 예정이던 뉴욕 양키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경기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서 펼쳐지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경기 또한 미뤄졌다.

대기오염으로 취소된 프로스포츠는 야구뿐만이 아니다. 뉴저지에서 열릴 예정이던 전국 여자 축구 리그(NWSL)와 미국여자프로농구(WNBA)가 취소됐고, 뉴욕을 연고지로 둔 미식축구(NFL) 팀인 뉴욕 자이언츠와 뉴욕 제츠는 계획된 훈련을 취소했다.

캐나다에서 발생한 산불 연기가 미국의 동부 지역까지 확산하는 가운데 7일(현지 시각) 한 남성이 방진 마스크를 쓴 채 뉴욕 거리를 걷고 있다. 이날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1억명 이상의 주민에게 대기질 경보를 발령했다.

해마다 이맘때쯤 캐나다에선 산불이 반복돼 왔지만, 유독 올해 피해가 컸던 건 평년보다 따뜻하고 건조한 봄 날씨 탓이다. 현지 소방 당국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날씨가 건조해지고 기온이 높아지면서 산불이 더 자주, 강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시 보건당국 책임자는 “이것이 바로 글로벌 기후변화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수천 마일 떨어진 외국에서 극심한 고온 건조 현상으로 산불의 강도와 빈도가 매년 악화하고, 아무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다른 나라 인구 수천만명이 고통받는 것”이라는 것이다.

지난달 14일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산불 진압 현장.

실제 뉴욕에선 최근 수년간 미 서부나 남부 같은 극심한 가뭄이나 홍수, 허리케인은 겪은 적이 없다. 뉴욕시는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에 대비해 해안가 방파제를 올리는 작업을 수년째 해왔지만, 이처럼 직접적으로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은 적은 없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캐나다에서 산불 피해가 가장 큰 퀘벡주의 경우 최소 154건의 화재가 보고됐다. 지난달부터 캐나다 전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7일 기준 380만 헥타르(3만8000㎢)의 캐나다 국토가 소실됐다. 남한 면적(약 10만㎢)의 3분의 1 이상이다.

또, 곳곳에서 도로·주택·고압 송전선 등이 파괴됐고, 퀘벡주 주민 2만여명 등 캐나다 전역에서 12만명 이상이 긴급 대피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주요 원유 생산지인 앨버타주의 석유·가스 생산도 타격을 입었다.

문제는 산불이 쉽게 잡히기 어려울 것이란 점이다. 캐나다 산림청 관계자는 “기후 변화로 캐나다에서 산불의 빈도·강도가 증가했으며 이에 따라 산불 시즌도 길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BBC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현재 같은 상태가 이번 여름 내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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