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물어보고 테러하겠나” 안보·중국문제 與野 없이 뭉친 美의회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2023. 6. 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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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하원 청문회 르포, 전직 與野 의원 이례적 초청
7일(현지 시각) 미 연방 하원 캐논 건물에서 열린 정보위 청문회에서 정보위 출신 전직 하원의원들이 참석해 발언을 준비하고 있다. 왼쪽부터 짐 랑게빈(11선) 전 민주당 의원, 공화당 일리애나 로스-레티넌(15선) 전 의원, 제인 하먼(9선) 전 민주당 의원, 프랭크 로비온도(12선) 전 공화당 의원, 피터 킹(14선) 전 공화당 의원. /CSPAN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을 공격하기 전에 우리에게 ‘당신 어떤 당이냐’고 물어보겠습니까. 우리(의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정당이 아니라 국가를 지키는 것입니다.”

7일(현지 시각) 오전 연방 하원 캐논 건물 390호. 9선(選)을 지낸 민주당 소속 제인 하먼 전 의원이 “안보 문제에서만큼은 여야(與野)간 협력이 필수”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CIA(중앙정보국), NSA(국가안보국) 등 미국의 정보 기관을 감시하는 미 하원 정보위원회는 정보위 소속으로 일했던 공화·민주 의원 5명을 초청해 적성 국가들에 대한 효과적인 정보 수집 방안 등을 논의하는 청문회를 열었다. 공화당 마이크 터너 위원장과 민주당 간사 짐 하임스 의원이 ‘선배 의원’들을 모시고 조언을 들어보자고 합의해 이 자리가 마련됐다. 북·중·러 등이 미국에 대한 위협을 고조시키는 상황에서 여야가 분쟁을 잠시 멈추고 미 정보 기관이 생산하는 정보를 어떻게 국익과 연결시킬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정부 고위 공무원, 기업 CEO 등을 소환하는 보통 청문회와 달리 전직 동료 의원들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터너 위원장은 이날 청문회를 시작하면서 “(이날 청문회를 통해) 이 위원회가 초당적인 협력을 토대로 다시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하임스 의원은 “정보위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직면한 가장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문제들을 살펴보는 위원회이지만, 기관들을 효과적으로 감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문제”라며 “(전직 의원 선배들의) 관점과 전문성을 공유할 수 있도록 이 자리에 우리를 모이게 해주신 위원장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청문회에 앞서 전·현직 동료 등은 당을 떠나 웃으며 악수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중국, 중동 테러리스트 대응 우려 “미국의 역량 더 키워야”

이날 청문회에서 의원들이 상당 시간 집중했던 주제는 미국의 최대 적성 국가인 중국과 중동 등의 문제였다. 12선의 공화당 프랭크 로비온도 전 의원은 “미국의 아프리카에 소홀한 틈을 타 중국이 아프리카 대륙을 가로지르고 있다. 아프리카는 중국에 훨씬 더 가까워지고 있다”며 “미국은 아프리카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터너 의원장이 ‘아프리카에서의 미 정보 기관 역량 향상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 이들 국가들이 미국에 적대적이었나’고 묻자 로비온도 전 의원은 “의원 시절 아프리카에 20회 이상 출장을 가 미국 정보 기관에 적대적인 소말리아, 앙골라 등의 국가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집중했었다”라며 “놀랍게도 그들은 미국이 해당 지역에서 정보 활동을 하고 있었는지 되물었다”라고 했다. 이어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선)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CIA, NSA의 인적 구성과 예산 등 역량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알 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조종하는 항공기의 공격을 받아 화염에 싸여 있는 모습. /조선일보db

“9·11 테러로 수백 명의 친구, 이웃, 유권자들을 잃은 뉴요커로서 9·11의 당일의 공포를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14선의 피터 킹 전 공화당 하원의원은 미국이 알카에다 등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감시·대응을 소홀히 하고 있다며 정보위가 이에 대해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했다. 뉴욕주가 지역구였던 그는 “당시 정보위 일원이자, 국토안보위 위원장으로서 나는 또 다른 9·11 사태를 막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쳤었다”고 했다.

그는 “9·11 테러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역사가 아니다. 미국을 상대로 하는 지속적인 테러 위협은 뉴욕만의 문제도 아니다”라며 “테러 위협은 나라 전체에 영향을 미침에도 미국인들은 너무 자주 단기적인 기억 상실을 겪는다”라고 했다. 특히 미국이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군하면서 중동 지역에 대한 경각심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킹 전 의원은 “IS(이슬람국가), 알 카에다는 여전히 치명적인 세력”이라며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남부 국경 안보의 붕괴, 중동의 불안정은 그들의 치명성을 높이고 있다”고 했다.

특히 이날 청문회는 올해 말 효력이 만료되는 미국 해외정보감시법(FISA) 702조의 연장 문제 등을 두고 정치권이 논쟁을 벌이는 가운데 열려 주목을 받았다. 2008년 해외 테러 등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제정된 이 조항은 정보 기관 들이 의심 가는 외국 개인이나 기관, 정부 등을 도·감청할 근거를 담고 있다. 2달 전 미국의 동맹국 도·감청 논란 등으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기밀 유출 사태’의 법적 근거가 되는 조항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은 ‘해외 테러 등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선 연장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이 법을 통해 외국 기관·개인을 도감청하는 FBI(연방수사국) 등과 갈등 관계에 있는 공화당 강성 의원들은 재승인에 소극적인 입장이다. 공화당 일부는 FBI가 전직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나섰던 것을 언급하면서 ‘내부 물갈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관련 조항 재승인에 반대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허먼 의원은 “양당 지도부가 702조 재승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초당적으로 논의하기로 한 데 박수를 보낸다”라며 “미국 밖의 해외 기관에 대한 정보 수집 권한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동맹국들의 도감청 논란을 의식한 듯 “다만 (해외 기관 및 개인의) 정보 보호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개혁을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의원들도 AI 기술 알아야 된다”

이날 정보위 간사 짐 하임스 의원은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지금이야말로 ‘경보’를 울리고 인공지능(AI)를 규제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도 실행 가능한 제안을 하지 않아 고민”이라고 했다. AI라는 거대 신기술에 대해 의회가 적절한 규제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AI의 발전 속도에 민주·공화를 불문하고 쩔쩔매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난달 16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 덕슨 연방상원 건물 226호실에서 크리스 쿤스(왼쪽) 민주당 상원의원과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가 대화하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11선의 짐 랑게빈 전 민주당 하원의원은 “AI와 합성 생물학, 마이크로 전자 공학, 고급 컴퓨팅 등 신흥 기술은 세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으며 앞으로도 계속 변화시킬 것”이라며 “그러나 현재 미국은 많은 신흥 기술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지 않다”고 했다. 특히 양자 등 분야에서 중국에 밀리고 있는 상황을 언급한 것이다. 그는 “미국과 동맹국들에 대한 위협은 점점 더 빨라지고, 더 위험해지고, 이를 막는 데 더 돈이 들고 지출될 것”이라며 “정보위는 이런 기술들을 따라가야 한다. 위원회는 (정보 기관 등이) 효율적으로 첨단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최근까지 미 싱크탱크 우드로윌슨센터 원장을 지낸 하먼 전 의원은 “정보위는 향후 인공지능(AI)을 업무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의원들도 (AI와 관련한) 기술적 역량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 기술의 급속한 발전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은 앞으로 지능의 수집, 분석 및 공식화를 위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청문회는 미 의회가 최첨단 기술 혁신이 미국 사회 전반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를 입법을 통해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지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왔다. 의회 소식통은 “어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민주, 공화간 싸움은 치열하지만 첨단 기술, 안보 등에선 초당파 협력을 하는 것이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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