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칼럼] 또 다른 한류 K-아트

2023. 6. 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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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줍는 여인'은 자연주의화가 밀레(J-F Millet, 1814~1875)가 그린 룻 이야기다.

룻이 먼발치에서 다른 여인과 함께 떨어진 이삭을 줍고 있다.

룻은 들에 나가 이삭을 줍는다.

'이삭 줍는 여인'과 함께 밀레의 또 다른 대표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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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줍는 여인’은 자연주의화가 밀레(J-F Millet, 1814~1875)가 그린 룻 이야기다. 추수꾼은 알곡을 거둬 수레에 높이 쌓았다. 룻이 먼발치에서 다른 여인과 함께 떨어진 이삭을 줍고 있다. 유대 땅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 아내 나오미와 함께 살았다. 나오미와 결혼해 기룐과 말론 두 아들을 얻었다. 부유하게 살았으나 여러 해 가뭄이 계속되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 이방 땅 모압으로 가서 새롭게 시작했다. 농장을 일궈 잘 정착했다. 두 아들도 결혼해 기룐은 오르바를, 말론은 룻을 아내로 맞았다. 이방 여인들이다. 그러나 엘리멜렉과 기룐 그리고 말론이 병들어 죽고 만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유대 땅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맏며느리는 고향에 남았다. 둘째며느리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 남편 고향으로 갔다.

고향마을에서는 추수가 한창이다. 추수꾼은 추수하고 난 뒤에 바닥에 떨어진 이삭을 줍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다. 룻은 들에 나가 이삭을 줍는다. 유대인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이삭 줍는 착한 이방인 며느리 이야기는 유대인 사이에 금방 퍼진다. 엘리멜렉의 사촌 보아스도 룻 이야기를 들었다. 보아스는 추수꾼에게 이삭을 많이 떨어뜨리라고 지시한다. 보아스는 옛 엘리멜렉의 땅을 사들이고 룻에게 청혼한다. 둘은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새를 낳았다.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 부족연맹을 왕국으로 키운 왕이다. 다윗의 후손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해 아들 예수를 낳았다. 그러니 이방인을 차별하지 말라는 메시지다.

‘이삭 줍는 여인’과 함께 밀레의 또 다른 대표작이 있다. ‘만종’이다. 종이 울린다. 농부가 일손을 멈춘다. 가엾게 죽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밀레가 그린 그림에 감동한 열두 살 소년이 기도한다. “하나님, 이 담에 커서 밀레와 같이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주세요.” 화가로 성장한 박수근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명동 미군PX에서 초상화를 그렸다. 직장 동료가 있었다. 소설가 박완서다.

1965년 10월 박완서는 ‘박수근 유작전’에서 ‘나무와 두 여인’을 보고 큰 감동을 받는다. “텅빈 최전방도시 서울에서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에 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지 않고, 가족 부양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예술가의 삶을 증언”하기로 다짐한다. 생애 첫 소설 ‘나목’은 이렇게 탄생했다. 누가 읽어도 경아는 박완서다. 아니라고 생각하고 읽어도 옥희도는 박수근이다. 아무리 소설이라고 되뇌어도 박수근과 박완서 두 사람 사이에 심리묘사는 사실 같다. 2010년 10월 박완서는 ‘박수근 45주기전’을 본다. 수필은 쓴다. 그로부터 석 달 뒤 2011년 1월 박완서는 세상을 뜬다. 수필 ‘보석처럼 빛나던 나무와 여인’은 생애 마지막 글이 됐다. 나무 같은 남자 박수근과 변치 않는 여인 박완서는 글과 그림으로 서로 사랑했으리라.

지난해 우리나라 미술품 유통액은 1조377억원이다. 37.2%나 성장해서 역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었다. 아트페어 매출액은 2021년 1889억원에서 2022년 3020억원으로 59.8% 성장했다. 아트페어 방문객 숫자도 2021년 77만4000명에서 지난해 87만5000명으로, 13.1% 늘었다.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 전쟁포화 속에서도 그림을 그렸던 많은 박수근이 있었다. 그 작품에 감동했던 많은 박완서가 있었다. 또 다른 한류 K-아트(Art)를 기대한다.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장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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