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맘카페 운영자, 기자 질문에 '퍽'…가방에선 명품 '우르르'
지난주 화요일(5월 30일), 인천지법에서 50대 맘카페 운영자 박 모 씨의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가 열렸습니다. 지난 2월 첫 보도 후 100일 넘게 지나서야 처음으로 박 씨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취재진은 1시간 전부터 법정 앞 출입구에서 박 씨를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박 씨의 모습을 꼭 카메라에 담고 싶었고, 쌓아두었던 질문을 꼭 던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피의자들은 영장심사에 정해진 시간보다 미리 출석합니다. 도주와 증거인멸의 가능성을 주로 판단하는 영장심사에 지각하면 본인에게 좋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박 씨는 심문 시작 시간이 거의 임박해서야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법정 앞에 기다리고 있는 취재진을 보고는 다시 발길을 돌렸습니다. 어디로 도망갔나 보니 법정 입구에서 20m쯤 떨어진 공원에서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영장심사 일정이 알려진 것에 대해 경찰에게 항의한 겁니다. 변호인이 나서 설득한 뒤에야 박 씨는 법정 출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10분이나 지각했습니다.
"맘카페 사기 혐의 인정하십니까?"
첫 번째 질문을 던지자, 박 씨는 두 손으로 양쪽에 있던 취재진의 마이크를 내리쳤습니다. '퍽'하는 타격음은 카메라에 고스란히 녹음 됐습니다. 손에 들고 있던 마이크와 휴대전화를 떨어트릴 정도의 육중한 타격이었지만, 손아귀 힘을 꽉 주고 다시 물었습니다. 생생한 타격음은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awtmYYNOeqg ]
"명품 살 돈은 있고, 피해자들에게 줄 돈은 없습니까?"
꼭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순간 당황한 박 씨가 가방을 떨어트렸고, 가방 속 소지품이 법정 입구 앞에 우르르 쏟아졌습니다. 떨어진 화장품과 휴대전화 케이스 등에는 대문짝만 하게 명품 로고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카메라에는 담기지 않았습니다. 박 씨는 떨어진 명품들을 주워 담고 법정으로 다시 향했습니다. 법원에 찾아온 일부 피해자들은 "야 박○○, 내 돈 내놔!"라고 뒤에서 소리쳤습니다. 아마도 피해자들의 돈으로 명품을 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이크를 잡고 있던 제 손과 팔에는 선명하게 긁힌 자국이 3군데 나 있었습니다. 박 씨의 폭력적인 모습은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무려 '460억 원'
박 씨는 회원 1만 5천 명이 넘는 네이버 맘카페를 운영했습니다. 지난 2018년부터 맘카페에서 유아용품과 가전제품을 싸게 팔면서 엄마들을 끌어 모았습니다. 그러다 박 씨는 돌연 2019년부터 상품권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백화점 상품권과 주유 상품권 등 각종 상품권이 등장했습니다. 이른바 '상테크(상품권 재테크)'입니다. 박 씨는 자신이 상품권을 정상 가격보다 싸게 가져올 수 있다며 회원들에게 투자를 권유했습니다. 10만 원을 내면 상품권 13만 원어치를 주는 식입니다. 카페 회원 등급에 따라 원금의 15~39%까지 상품권이 지급됐습니다. 피해자들은 앞서 박 씨가 가전제품을 싸게 판매하는 등 평소 사업 수완이 좋다고 생각했고, 상품권 역시 비슷한 구조로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피해자들은 처음에는 소액을 투자했고, 이때까지만 해도 상품권은 돌아왔습니다. 카페에는 좋은 후기가 이어졌습니다. 그러자 박 씨는 수천만 원 이상 구매 시 명품과 골드바까지 지급하겠다며 피해자들에게 더 큰 투자를 독려했습니다. 결국 피해자들은 은행 대출을 받거나 집 보증금을 빼 박 씨에게 넘겼습니다. 5억 원 넘게 상품권을 구매한 피해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상품권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경찰에 단체 고소를 한 피해자들 61명, 이들이 주장하는 피해액은 142억 원에 달합니다. 고소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까지 더하면 모두 282명에 피해액은 460억 원 규모입니다. 일부 피해자들은 아직도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본인이 피해를 당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경찰에 피해를 진술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박 씨는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면 순차적으로 돌려준다. 사업에 투자했기 때문에 곧 돈 들어올 곳이 있다"는 식으로 해명했습니다. 심지어 "구속되면 돈을 못 돌려준다. 구속되지 않게 법원에 탄원서를 써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부 피해자들은 이 말까지 믿은 겁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씨가 처음부터 갚을 의사와 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보고 박 씨가 판매한 상품권 액수 460억 원 전체를 피해액으로 판단했습니다. 경찰은 피해액의 추징 보전을 위해서 박 씨와 공범 2명의 재산 파악에도 나선 상황입니다.
'맘카페 + 별스타그램'의 함정
피해자들은 박 씨의 SNS 때문에 속았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박 씨의 SNS에는 재력과 명품, 인맥 자랑이 가득했습니다. 취재진도 박 씨의 SNS 사진과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박 씨와 일당은 인천과 부산 등에 펜트하우스를 소유하고 있었고, 집에는 명품이 넘쳤습니다. 구매 실적이 쌓여야만 구매할 수 있다는 '하이앤드 명품'도 박스채로 쌓여 있었습니다. 수억 원 대의 슈퍼카도 여러 대 보였습니다.
또 박 씨와 일당의 SNS에는 유명인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얼굴만 봐도,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연예인들이 나왔습니다. 유명배우가 박 씨의 집에서 함께 식사를 했고, 시대를 풍미했던 개그맨은 박 씨의 생일 파티에 참석해 친분을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인플루언서들도 박 씨를 '우리 언니'라고 부르며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습니다. 화룡정점은 정치인이었습니다. 지역의 전 국회의원, 교육감, 시의원까지 박 씨의 SNS에 등장했습니다. 일반인이 알기 쉽지 않은 인물들과 밥도 먹고 파티도 즐기는 모습에 피해자들은 '이 사람은 정말 뭐가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던 겁니다. 상품권 사기는 맘카페에서 발생했지만, 피해자들이 속았던 배경에는 박 씨의 화려한 SNS가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취재진이 연예인과 정치인들에게 직접 연락을 해봤습니다. 하나같이 "전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다들 박 씨를 유능한 사업가라고 생각했을 뿐, 맘카페에서 수백억 대 사기판을 벌였다거나, 과거에도 '공동구매 사기'로 전국에 지명수배됐던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겁니다. 일부 연예인 중에는 취재진의 연락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해당 연예인도 박 씨에게 수억 원대 피해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실제 맘카페 보도 후에도 기자 개인 메일로 다양한 제보가 쏟아졌습니다. '상품권 사기를 당했다', '아파트 분양권 사기를 당했다', '공동구매 사기를 당했다'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이렇게 많은 사기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번 취재를 통해서 알게 됐습니다.
"싸면 의심해야"
사공성근 기자 40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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