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관리 본질은 ‘행정작용’… 선관위의 감사원 직무감찰 거부는 위법[Deep Read]

2023. 6. 8.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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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민의 Deep Read - 선관위의 법적 지위
미국·프랑스 선거관리기구 법적지위도 독립행정기관… 선관위, 헌법 97조 따른 감찰 대상
선거범죄 고발주체가 재판주체 되는 건 기초법리 위배… 개혁 거부땐 기관 존폐 각오해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지역 선관위에서 고위간부 자녀 경력 채용과 ‘셀프 결재’를 통한 고용세습, ‘아빠 찬스’를 이용한 고속 승진 등 불공정·비리 사례가 그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노태악 위원장과 선관위 측은 선거관리라는 행정작용을 주된 업무로 삼는 ‘독립행정기관’인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직무감찰)를 거부한다. 이에 선관위 개혁을 넘어 기관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선관위의 법적 지위

헌법 제114조 제1항은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관리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고 밝히고, 제2항 이하에서 중앙선관위의 구성 및 임기 등에 관해 규정한다. 이를 근거로 선관위 측은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는 감사원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선관위가 행하는 선거관리업무의 본질은 행정작용이며, 따라서 선관위의 법적 지위는 독립행정기관이라고 봐야 한다. 즉, 대한민국 헌법 제97조에 따른 감사원 직무감찰 대상이란 뜻이다. 이는 헌법이 헌법기관으로 국회(제3장), 대통령·총리 등 정부(제4장), 법원(제5장), 헌법재판소(제6장) 등 ‘기관’을 열거하면서도 유독 선관위 관련 사항만 선거관리(제7장)라는 제목으로 ‘직무’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분명해진다.

미국의 연방선거위원회(Federal Election Commission)도 행정기관인 독립규제기관이며, 프랑스 선거관리위원회(CNCCEP) 역시 독립행정기관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보장받고 있다. 모두 행정기관인 것이다. ‘독립’의 의미는 직무상 상위 기관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지, 결코 어떤 기관으로부터도 감시·견제·통제받지 않고 무책임하게 방치돼도 좋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선관위를 헌법상 독립기구로 규정한 것은 공정성 보장을 위한 것일 뿐이다.

프랑스 헌법위원회는 행정권을 총괄하는 총리의 권한을 각료에게 위임할 수 있도록 한 프랑스 헌법 제21조를 근거로 총리가 의회와 함께 독립행정기관에 대한 최종적 감독권을 행사한다고 판단했다. 우리의 경우도 헌법 제66조 제4항에서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만큼 프랑스와 같이 국회와 대통령이 선관위에 대한 최종적 감독권을 행사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

◇직무감찰 대상인 선관위

헌법 제1조에서 규정하는 국민주권주의는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 민주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국가운영에 필요한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구체화된다. 감사원은 헌법 제97조에서 규정하는 대통령 소속 기관으로서, 대통령의 권한 중 국가의 세입·세출과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감찰 권한을 갖는다.

감사원법 제24조 제3항은 직무감찰 대상에서 국회·법원 및 헌법재판소 소속 공무원만 제외하고 있을 뿐이어서 선관위 공무원이 직무감찰 대상이 됨은 법률상 명백하다. 선관위는 인사혁신처장의 인사 사무 감사 대상에서 선관위 공무원을 제외한 국가공무원법 제17조를 근거로 감사원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인사혁신처와 감사원을 동일시하는 건 적절치 않다.

과거에도 감사원의 직무감찰은 꾸준히 있었다. 2019년 10월 실시한 감사원의 중앙선관위 기관운영감사 결과를 보면 ①선관위 조직 및 정원 운영 부적정 ②경력경쟁채용 서류전형 업무 부당 처리 ③서류전형 시험위원 위촉규정 미비 ④공무 국외출장 업무 처리 부적정 ⑤공무원 범죄사건 처리기준 불합리 등 15건이 지적됐다. 2016년 2월 기관운영감사에서도 ①대체휴무 제도 운영 부적정 ②정원 초과 부당 승진임용 및 채용 등이 지적됐는데, 모두 인사를 포함한 직무감찰 사안이다.

1994년 12월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감사원법 개정안 논의과정에서 선관위를 직무감찰 제외 대상에 포함할 것인지 여부가 논란이 됐지만 결국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당시 이시윤 감사원장은 국회에서 “선관위 사무는 행정작용이라는 점에서 직무감찰에서 배제되는 사법작용이나 입법작용과는 다르고, 과거 50년간 직무감찰 대상이 됐음에도 정당의 자유로운 활동에 지장을 받은 사례가 없다”면서 “막대한 국고보조금이 나가는 정당 감독에 관한 사무가 직무감찰에서 배제된다면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불가능하게 된다”고 발언했다.

◇기초법리 위반

헌법 제114조 제2항은 중앙선관위원장을 위원 중에서 호선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대법관이 명예직처럼 관행적으로 비상근 선관위원장을 맡아왔다. 그 결과 사무총장과 상임위원이 선관위를 좌우하며 논란을 낳고 선관위를 적폐 온상처럼 만들었다.

따라서 중앙선관위원장 선출도 헌법 규정에 맞아야 하고 상임으로 근무하며 실질적인 업무 장악과 감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도 선관위원장을 현직 판사가 맡는 관행도 바꿔야 한다. 판사가 위원장인 선관위가 선거범죄를 고발하고 법원이 선거범죄를 재판하는 건 ‘누구도 자기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Nemo iudex in causa sua)’는 기초법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선관위 조직과 업무 범위가 지나치게 방대하다는 점도 문제다. 우리나라 선관위 전체 직원이 3000명에 근접하지만 미국 연방선관위 직원 수는 2018년 기준 509명에 불과하다. 선관위가 선거관리와 정당 사무관리 외에도 정치자금 사무관리, 민주시민 정치교육, 선거정치제도 연구를 업무로 하면서 권한이 비대해지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선관위에서 선거관리를 하지만 선거자금은 별도 기구인 선거자금관리위원회에서, 미디어와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운동은 방송정보통신규제기구에서 각각 감독하는 것과 비교된다.

선관위에 정치자금 관련 업무가 집중된 것도 큰 문제를 낳는다. 국고보조금 지급 및 지출상황 관리, 기탁금 수탁 및 배분, 후원회 등록 및 기부상황, 정치자금 모금 등을 선관위가 감독하는데, 정치적으로 편향된 선관위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개혁이냐 기관 폐지냐

선관위는 각급 선관위원장 선출(혹은 임명)의 개혁, 적폐 척결, 업무의 분산과 축소, 감사원 감사 수용을 통한 투명한 직무 관리, 조직과 정원의 대폭 축소와 같은 산적한 개혁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복마전과도 같은 불공정·비리 구조를 근본적으로 뿌리 뽑지 않고 끝내 개혁을 거부한다면 선관위는 기관의 존폐를 각오해야 할 수도 있다.

변호사, 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 용어 설명

‘행정작용’이란 행정 주체가 행정 목적의 실현을 위해 행하는 일체의 작용을 말함. 법률적 작용, 사실적 작용, 권력적 작용, 비권력적 작용, 입법적 작용, 사법적 작용, 통치적 작용이 모두 포함됨.

‘직무감찰’은 행정기관의 사무와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하는 것. 직무감찰은 행정의 합법성과 능률성을 검토하는 것으로, 행정사무감찰과 대인감찰로 구분되며 대상 범위가 행정기관에 한정됨.

■ 세줄 요약

선관위의 법적 지위 : 선관위가 행하는 선거관리업무의 본질은 행정작용이며, 따라서 선관위의 법적 지위는 독립행정기관이라고 봐야. 미국 연방선거위원회나 프랑스 선관위 역시 독립행정기관의 지위를 가짐.

직무감찰 대상 선관위 : 막대한 국고보조금이 나가는 정당 감독에 관한 사무가 직무감찰에서 배제된다면 큰 문제. 선관위는 헌법 제97조에 따른 감사원 직무감찰 대상. 선관위에 대한 직무감찰은 꾸준히 있었음.

기초법리 위반 : 판사가 위원장인 선관위가 선거범죄를 고발하고 법원이 이를 재판하는 건 ‘누구도 자기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법리 위반. 선관위가 개혁을 거부하면 기관 존폐를 각오해야 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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