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김재규의 마지막 하루 [사람IN]

임지영 기자 2023. 6. 8.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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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 작가가 초등학생일 때의 일이다.

조성기 작가는, 김재규 개인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이 박정희를 죽인 거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김재규를 통해 발현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은) 이제껏 살며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작가로서 숙제였다."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오늘의 작가상(1985)' '이상문학상(1991)'을 수상하고 10권 넘는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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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 작가가 출간한 〈1980년 5월24일〉은 사형수 김재규의 마지막 하루를 그린 장편소설이다. 박정희의 죽음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작가로서 숙제이기도 했다.

조성기 작가가 초등학생일 때의 일이다. 육군 소장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직후였다. 교사였던 아버지가 용공분자로 몰렸다. 누군가 교실 문을 열고 수업하던 아버지를 데려갔다. 당시 목격자인 반장에 따르면, 학생들에게 자습을 지시한 아버지는 교실 위쪽을 쳐다보며 밖을 나섰다. 위층 교실에 아들 조성기 작가가 있었다. 가까스로 아버지가 육군교도소에 갇힌 걸 알게 됐지만 면회가 되지 않았다. 단체로 화장실 가는 시간을 알아내 가족들과 교도소 뒤쪽 숲에서 기다렸다. 안부를 적은 편지지를 말아 창문 없는 화장실 안쪽으로 던졌다. 아버지는 중학교 입시를 준비 중인 아들에게 예상문제를 적어 보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세계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이 있었다.” 아버지는 불기소처분을 받았지만 교사직을 잃고 중앙정보부의 감시를 받는 ‘요시찰’ 인물이 되었다.

초등학생이던 조 작가가 70대가 되었다. 그가 얼마 전 출간한 〈1980년 5월24일〉은 사형수 김재규의 마지막 하루를 그린 장편소설이다. ‘1980년 5월24일 오늘은 내가 사형당하는 날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사형 당일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시작해 서대문형무소의 사형 장면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그사이 현재와 과거가 교차된다. 조성기 작가는, 김재규 개인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이 박정희를 죽인 거라고 말한다. 그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공포와 분노가 있었다. 술에 의존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그를 암살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김재규를 통해 발현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은) 이제껏 살며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작가로서 숙제였다.”

5월24일 <1980년 5월24일> 북토크에 참석한 조성기 소설가. ⓒ시사IN 이명익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오늘의 작가상(1985)’ ‘이상문학상(1991)’을 수상하고 10권 넘는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냈다. 이번에 작가로서 안고 있던 ‘숙제’를 해냈지만 어려움은 있었다. 일단 김재규에 대한 평가가 상반되었다. 권력 다툼에서 밀려 홧김에 ‘주군’을 살해한 인사라는 평가와 민주화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는 시각이 엇갈렸다. “당시 판결문을 봐도 이런 말이 나온다. 김재규 사건은 계획적이지만 허술하고 우발적이지만 치밀하다. 중앙정보부장으로 있으면서 민주 인사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암암리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조 작가는 1인칭 시점을 선택했다. 내면의 이야기와 실제 있었던 사건을 한데 섞었다. 참회록이면서 일대기이고 시대의 정언록이 되도록 했다. 김재규에 관해 남은, 많지 않은 기록을 참고하고 자료조사를 했다. 작가가 살고 목격했던 시대라 지난 삶을 반추하는 의미도 있었다. “나는 초대 대통령부터 현재 대통령까지 다 경험한 세대다. 그런 시대를 살지 않은 독자들이 책을 통해, 김재규를 통해 얼마나 엄혹한 시대를 지나왔는지 성찰해보길 바란다.”

5월24일, 서울 중구 순화동 한 서점에서 조 작가의 ‘북토크’가 열렸다. 43년 전 같은 날, 김재규가 사형을 당했다. 독자 100여 명이 모인 자리, 김재규의 조카 김성신 출판평론가도 있었다. 2020년 김재규의 유족들은 그의 내란 혐의를 부정하며 재심을 청구했다. 이날 조 작가는 소설의 한 대목을 낭독했다. “나는 사형당해 죽겠지만 나의 결행으로 삶을 다시 얻을 수많은 사람은 환호할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감사를 표하리라 기대할 수는 없지만 다시 얻은 그들의 삶 속에서 나도 여전히 호흡하고 있으리라.” 뒤로 갈수록 작가의 목소리가 떨렸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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