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등반 몸 만들기" 1박 2일간 27km 기금거황 종주

민미정 2023. 6. 8.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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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야영] 기백·금원·거망·황석 환종주
거망산 정상에서 황석산 방향으로 100m 정도 내려오면 야영 가능한 공터가 있다. 텐트는 경량브랜드 HMG의 ULTAMID2.

드디어 3년 4개월 만에 '엔데믹'이 선언됐다. 코로나 시대가 끝난 것이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작년부터 해외건 어디건 떠났지만, 나는 여전히 기나긴 나태 바이러스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매년 해외원정 백패킹을 준비하며 꾸준히 운동했지만, 팬데믹 이후 무릎을 다쳐 잠시 쉰다는 게 그대로 쭉 쉬었던 것이다. 하지만 5월 말 스위스 원정 계획이 생기면서 각성했다. 먼저 체력을 테스트해야 했다. 해마다 기금거황 백패킹 종주를 계획만 했다. 김혜연과 나는 이번이 기회!라면서 실행에 옮겼다.

기금거황 종주는 경남 거창과 함양을 아우르는 기백산, 금원산, 거망산, 황석산을 연계하는 환종주 코스로, 거리 27km에 달한다. 하지만 우리가 종주 날짜를 잡은 날은 산불방지기간이라 입산 통제되는 구간이 있었다. 금원산~황석산 구간이 '산방기간'으로 입산 통제됐다(매년 3월에서 5월 15일까지). 우리는 거창군과 함양 안의면에 연락해 월간산 취재를 이유로 1박2일 허가서를 발급 받았다. 화기 및 인화물질은 지참할 수 없었다.

드론으로 담은 거망산 야영 터. 서쪽(사진 아래쪽 검은 부분)에 샘터가 있다.

우리는 배낭 무게도 줄이기 위해 혜연이의 티피텐트를 함께 쓰기로 했다. 이때 즈음, 덕유산에 상고대 소식이 있을 정도로 날씨가 꽤 쌀쌀했지만 우리는 발포 매트 하나만 챙겼다. 오랜만에 떠나는 장거리 백패킹이라 마음이 무거웠지만 한결 가벼운 배낭을 메고 출발했다. 함양 시내에서 숙박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안의터미널로 이동했다. 하루에 완주할 수 있는 코스를 1박2일로 나눴지만, 오랜 행락 백패킹 문화에 젖어 '체쓰(체력 쓰레기)'가 된 몸이었기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랐다. 우리는 서둘러 안의터미널에서 다시 용추사행 버스에 올랐다. '삐-' '삐-' 기합이 바짝 든 나와 혜연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카드를 태그하고 버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 아가씨들 잠깐만요!! 에이~ 거 그냥 무작정 찍으면 어떡해요!"

"네!?"

"용추사는 1,000원인데, 2,000원이 찍혔잖아요. 급하긴 참~. 잠깐만요."

기백산 전망데크에서 찍은 드론샷. 4월의 산정상은 아직 메말라 있어 산불에 조심해야 한다.

이어서 동전박스에서 동전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쨍그랑, 쨍그랑, 쨍그랑, 쨍그랑!" 손바닥 위에 동전 20개가 올려졌다. '맙소사! 이 녀석들을 데리고 걸으라고?' 고작 동전 가지고 웬 오버냐 싶겠지만, 막상 손바닥 위에 길게 놓인 동전을 보니, 체감 2kg은 되는 듯했다. 눈치 빠른 혜연이가 나섰다.

"주세요. 한 살이라도 어린 제가 들겠습니다."

"그래, 그러도록 하여라!"

사악한 동전 녀석들을 장난스레 혜연이에게 맡기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용추사로 향했다.

거망산에서의 아침. 옅은 운해와 붉게 떠오르는 태양이 장관이었다.

매트리스 어디 갔지?

들머리에 들어서자 쌀쌀했던 기온이 누그러졌다. 오랜만에 체력 테스트라 생각하니 모의고사날 아침 수험생처럼 긴장됐다. 등산화 끈을 단단히 묶었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체력은 그동안 나태했던 나를 그대로 드러냈다. 혜연이가 어느새 나와 멀어져 위쪽에서 기다렸다. "먼저 가아~ 난 글렀어~"라며 느리게 밀어내는 손짓을 했다. 머쓱했다. 혜연이가 피식 웃었다. 하염없이 이어지는 된비알은 딱 내 숨이 붙어 있을 만큼만 이어졌다. 다행이었다. 오르막이 여기서 약간 더 길었다면 배낭을 던져버릴 뻔했다. 고도 900m쯤 올리고 나서야 마침내 기백산 정상에 올라섰다. 숨을 고를 겸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드론을 띄웠다. 산자락부터 메마른 정상을 향해 푸른색 그러데이션 풍광이 펼쳐졌다. 장관이었다.

기백산에서 금원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통과하기가 비교적 수월했다. 숨 고르기 구간이었다. 몸은 풀렸지만, 강렬한 태양에 몸이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한 자리 수에 머물렀던 기온이 24℃까지 올랐다. 그늘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메마른 나뭇가지들로 뒤덮인 사이로 발을 내디뎠다. 깡마른 들짐승의 앙상하게 드러난 등골마냥 볼 품 없는 능선이 이어졌다. 간간이 피어 있는 산철쭉이 아쉬움을 달랬다.

수망령에서 물을 보충했다. 야영지인 거망산에도 샘터가 있었지만, 해지기 전에 도착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다음날 식수까지 충분히 준비했다. 식수의 무게만큼 배낭이 더욱 어깨를 짓눌렀다. 완만했던 길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렸다. 해가 지기까지 2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드론을 날리느라 시간을 많이 지체했지만, 야영지까지는 문제없을 것 같았다.

야영지를 정리하고 출발 전 화이팅을 외치며 멋진 운해와 함께 인증샷!

등산화를 벗고 마지막 휴식을 취했다. 발바닥 땀이 식을 때쯤 다시 등산화를 고쳐 신고 배낭을 들어올리는데 배낭 사이드에 고정해 뒀던 발포매트가 사라졌다! 앗, 어디 갔지? 중간에 간식을 꺼내느라 배낭 끈이 헐거워진 사이 빠져나간 것이다. 혜연이가 찍어준 사진을 보며 어디쯤인지 대충 파악했다. 대략 25분 전 촬영한 사진에 매트리스가 붙어 있는 걸 보니, 약 1km 전 지점에서 떨어뜨렸다고 추측했다. 매트도 없이 빙점의 맨바닥에서 잘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쓰레기를 산중에 두고 올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배낭을 혜연에게 맡기고 뒤돌아 무작정 달렸다. 아침부터 그렇게 힘을 냈다면 벌써 거망산에 자리 깔고 누워 있었으리라.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쯤 저만치서 새파란 매트가 보였다. 매트를 옆구리에 끼고 되돌아 달렸다. 하지만 발은 더 이상 치고 나가지 못했다. '부스터'가 사라졌다. 게다가 올 때는 눈에 띄지 않았던 가파른 암릉까지 길을 막았다. '이렇게 치고 내려왔던가?' 싶을 정도로 끝도 없이 올라갔다. 낙엽 쌓인 길을 걸은 땐 계속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 같았다. 마침내 혜연이의 모습이 보였다.

황석산을 눈앞에 두고 오르기 전에 거북바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혜연아, 너 혹시 내 배낭 들고 이동했니??? 왜 이렇게 멀어졌지?"

"무슨 소리예요. 언니!! 정신 차리세요!!!" 혜연이가 웃으며 소리쳤다.

아끼고 아꼈던 비상 에너지를 소비하고 나니, 걸음이 더뎌졌다. 텐트 칠 만한 공터를 찾기 시작했다. '물도 있겠다. 자리만 나오면 멈추자고 해야지.' 호시탐탐 혜연이를 공략할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야속한 거망산은 해가 질 때까지 틈을 내주지 않았다. '망할 거망산 같으니라고!!!' 사고는 내가 쳐놓고 애꿎은 거망산을 타박하는 꼴이라니! 참으로 못난 체쓰다. 반성하면서 어두워진 길을 조심스레 걸었다. 뒤쳐진 나를 기다리는 혜연이까지 어둠의 길로 빠져들게 할 수 없어 먼저 가라고 재촉했다.

거망산에서 황석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암릉구간이 많다. 북봉 우회길에는 슬랩구간이 있으나 로프가 걸려 있어 오르기 수월하다

마지막인 듯한 오르막을 헉헉대며 올랐다. 거망산 정상석이 나타났다.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본전 생각이 났다. '이럴 거였으면 괜히 물 많이 짊어지고 왔네. 칫!' 고작 무게 1.5kg 더했다고 억울해 하다니! 못난이 체쓰는 서러웠다. 하지만 야영지에 도착하니 이미 텐트가 세워져 있었다. 안락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둔 혜연이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밤하늘의 별이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일단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매트를 깔고 누웠다.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달달한 간식으로 피로를 풀며 하루를 곱씹었다. 오늘의 모의고사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현재의 몸 상태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원정을 떠날 때까지 트레이닝 설정값이 정해졌다. 몸이 편해지니 마음도 안정됐다. 텐트 문을 열었다. 하늘 위로 무수한 별이 떠있었다. 전투적인 하루를 보내는 와중에도 낭만적인 밤하늘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카메라를 설치했다. 우리가 피곤에 지쳐 잠든 사이에도 밤하늘의 별들은 쉼 없이 움직였다.

북봉 암릉 구간에서 김혜연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북봉의 암릉은 위험해서 통과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바람이 심해, 도중에 되돌아 내려와 우회로를 이용했다.

하염없이 내려가는 우회길

다음날 아침, 전날의 피곤함이 고스란히 스민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렸다. 벌써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맨발로 뛰쳐나갔다. 금세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드론을 띄웠다. 우리가 걸어온 산줄기가 장쾌하게 이어져 있었다. 양쪽으로 하얀 운해가 짙게 깔려 있었다. 어제는 꼴도 보기 싫었던 산이 오늘은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 드론이 흔들릴 정도로 강풍이 불고 있었다. 발끝이 시렸다. 재빨리 드론을 회수하고, 떠날 채비를 했다.

마지막 남은 황석산! 눈을 부릅떴다. 빵으로 배를 채우고 길 위로 올라섰다. 암릉 구간이 나타났다. 오른쪽으로 우회길이 있었다. 우리는 암릉을 넘어가기로 했다. 강풍이 멎길 바라며 바위를 기어 올랐다. 바람이 불어 몸이 휘청댔지만 지루한 능선 길보다 재미있었다. 몇 개의 바위를 넘고 멈췄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기어 오르기엔 무리가 있는 바위가 나타났다. 잘못하면 그대로 추락이었다. 혜연이와 상의했다. 입산허가를 받고 들어온 만큼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무리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우회길은 하염없이 내려갔다.

들머리로 이동하는 길. 시작 전이라 기운이 넘쳤다.

"아니 왜 이렇게 계속 내려가는 거지? 바닥 친 어제의 내 자존심 같은데?"

하산이라도 하는 듯 아래로 치닫는 길에 너스레를 떨었다. 혜연이가 또 피식 웃었다. 깎아먹었던 고도를 다시 회복하자 암릉 구간의 끝에 다다랐다. 찬 바람이 쉴 새 없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저 멀리 황석산이 보였다. 드디어 저기만 오르면 끝이다! 끝이라 생각하니, 엔도르핀이 마구 분비되는 듯했다. 황석산까지 한걸음에 달려 올랐다. 마지막 인증을 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홀가분한 마음과는 달리 하산길은 짜증날 정도로 가팔랐다. 나는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게 변했다. 집중한 끝에 900m 고도를 순식간에 해치운 기분이 들었다. 용추사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 심신이 너덜너덜해졌다. 나는 다짐했다.

기백산 정상 인증. 기금거황 종주의 첫번째 정상이다. 아침에는 쌀쌀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온이 올라가 무척 더웠다.

'내일부터 스위스로 떠날 때까지 초강력 트레이닝 시작이다!'

순간 쩔렁 소리가 났다. 내 손바닥 위에 동전 10개가 올려졌다.

"언니, 우리 이걸로 버스비 내요!"

혜연이가 갖고 있던 동전 반을 덜어냈다.

"그래!"

어제는 그렇게 무겁던 동전이 하찮게 느껴졌다. 웃음이 터졌다.

각 군청에서 발급받은 입산허가증.

민미정 깨알 팁(아무도 묻지 않아도 알려주고 싶은 정보)

산불방지기간 중 우리는 어떻게 산에 갔을까?

산불방지기간이라고 전국 모든 지역이 산행을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건 아니다. 함양 안의면의 경우 산행을 원하면 허가서를 발급해 준다. 거창군의 경우 사유가 있어야 했는데, 우리는 월간산 취재를 이유로 허가서를 요청했다.

기백산

통제 아님

금원산~거망산

거창군청 산림과 TEL) 055-940-3472, FAX) 055-940-3459 / 거창군청 홈페이지

황석산

함양 안의면 산림과 TEL) 055-960-8783 FAX) 055-960-9027 / 함양군청 홈페이지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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