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가위는 GMO와 다른 길을 갈까[홀리테크]

박건형 테크부장 입력 2023. 6. 8. 07:40 수정 2023. 6. 8. 10: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유전자 편집 샐러드 등장…안전성 논란 극복이 상용화 과제
페어와이즈가 출시한 유전자 편집 샐러드 /페어와이즈

박건형의 홀리테크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80905

지난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스타트업 페어와이즈가 겨자잎을 출시했습니다. 집앞 수퍼나 쌈밥집에 가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겨자잎이 화제를 모은 것은 이 겨자잎이 밭이 아닌 실험실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페어와이즈는 이른바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 유전자 편집 기술 크리스퍼(Crispr)를 이용해 겨자잎의 맛을 바꿨습니다.

겨자잎은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지만 생으로 먹으면 강한 후추향이 납니다. 이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죠. 페어와이즈의 겨자잎에는 특유의 후추향이 없습니다. 마치 싫어하는 사람을 찾기 힘든 상추처럼 겨자잎을 샐러드나 쌈으로 먹을 수 있게 한겁니다. 페어와이즈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톰 아담스는 기술전문 매체 와이어드에 “우리는 샐러드에 새로운 범주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크리스퍼는 2011년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와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교수의 공동 연구를 통해 개발했습니다. 2012년 6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온라인으로 발표되면서 전세계적인 화제를 모았고, 두 사람은 2020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크리스퍼는 유전정보를 담은 디옥시리보핵산(DNA)에서 특정 유전자만 골라 잘라내는 효소 단백질 복합체입니다. 원하는 유전자를 쏙쏙 잘라내고 이어붙일 수 있기 때문에 ‘유전자 가위’라고 불립니다. 동물과 식물 모두의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고, 기술적 난도도 높지 않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실험과 연구 성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페어와이즈처럼 상용화에 성공한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사람의 의도대로 유전자를 편집한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진화라는 자연의 섭리를 뛰어 넘습니다. 크리스퍼로 편집한 동식물을 사람이 섭취하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또 이들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까요. 수십년간 환경과 사람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란 속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유전자변형작물(GMO)과는 어떻게 다른 걸까요.

유전자가위를 개발해 2020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제니퍼 다우드나 UC버클리교수(오른쪽)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 플랑크 병원체 연구소장.

◇일본에선 크리스퍼 토마토 판매

크리스퍼가 처음 등장한 이후 과학자들은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어떤 유전자가 동식물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만 알고 있다면 얼마든지 특성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성장을 제한하는 유전자를 잘라내면 더 많은 수확량이 보장되고, 해충이 좋아하는 냄새를 뿜는 유전자를 편집하면 굳이 살충제를 뿌리지 않아도 됩니다. 크리스퍼 기술을 발명한 다우드나 교수는 올해초 와이어드 기고에서 “크리스퍼를 이용하면 쌀과 같은 주요 작물에서도 더 적은 물과 비료를 이용한 재배법을 구현할 수 있고, 이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 전세계를 기아에서 구원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본 농업기술기업 사나텍시드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로 일반 토마토보다 4~5배 많은 영양 성분을 갖는 토마토를 만들었다. /사나텍시드

페어와이즈가 유전자 편집 작물을 처음 상용화한 것은 아닙니다. 2021년 도쿄의 스타트업 사나텍시드는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BA)를 다량 함유하도록 유전자 편집한 시칠리안 루즈 토마토인 ‘고가바(Go GABA)’를 출시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뇌에서 작용하는 GABA는 신경 세포 사이의 자극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데, 사나텍시드는 자사의 토마토가 스트레스 해소와 혈압을 낮추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GABA는 일본에서 마치 비타민C처럼 건강보조제로 팔리는 화합물인데 초콜릿 등의 형태로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이삭 수 늘린 옥수수·질병 저항 카카오

옥수수 이삭 수를 늘리거나, 질병에 대한 높은 저항을 가진 카카오 나무도 크리스퍼 기술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뉴욕 콜드스프링 하버 연구소와 메사추세츠대 연구팀은 줄기 세포 성장을 멈추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유전자 ‘ZmCLE7′을 옥수수에서 편집하면서 더 많은 이삭을 갖도록 만들었습니다. 연구를 주도한 데이비드 잭슨 박사는 “유전자를 완전히 삭제할 경우 옥수수의 외형이 바뀌는 문제가 있어, 이삭 수를 조절하는 부분만 편집하는 방식을 개발했다”고 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연구팀은 앰엔드앰즈·쓰리머스킷티어스·스니커즈 등을 만드는 마스사와 협업해 특정 곰팡이 및 바이러스에 내성을 가진 카카오 나무를 만들었습니다.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어메리칸은 “기존 카카오 나무는 자라서 열매를 맺기까지 5~7년이 걸리는데, 다 자란 후에야 질병에 걸렸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면서 “처음부터 질병에 저항하도록 유전자를 편집했기 때문에 수확량 증대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기술은 현재 카사바, 쌀, 밀 같은 주요 작물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크리스퍼가 식물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것이 말라리아 모기입니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암컷 모기의 번식력을 감소시키는 유전자를 찾아 크리스퍼로 이를 편집했습니다. 이 모기를 자연에 풀어놓으면 점차 많은 모기가 편집된 유전자를 갖게 되면서 전체 말라리아 모기 감소로 이어지게 됩니다.

◇소·닭·연어·토끼도 허가

가축에도 크리스퍼를 적용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미네소타 스타트업 액셀리젠의 유전자 편집 소 생산을 승인했습니다. 이 회사는 소의 유전자를 편집해 짧고 매끄러운 털이 나도록 했습니다. 털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소가 고온을 버티게 하는 유전자와 관련이 있습니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덜 받는 소를 만들어낸 것이죠. PRLR-SLICK이라고 불리는 이 소는 전통적으로 짧은 털을 가진 자연산 소와 유전적인 차이가 없습니다. FDA는 “검토 결과 유전자 편집 소가 사람이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FDA는 닭, 연어, 토끼, 돼지 등에 대해서도 크리스퍼 기술 적용을 허가했습니다.

유전자를 편집해 짧은 털을 갖고 고온에 잘 견디는 소 /ISAAA

크리스퍼 기술의 확산은 새로운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크리스퍼 기술로 만들어진 동식물을 섭취한 사람이 과연 안전하냐는 것이죠. 1990년대 유전공학이 유전자 재조합 기술인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를 처음 만들어낸 이후 GMO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됐습니다. 밀과 옥수수, 대두를 비롯한 수많은 GMO 작물이 이미 생산되고 유통되고 있지만 GMO를 섭취하면 위험하다는 인식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수많은 식품 회사들인 GMO프리(GMO를 사용하지 않았음)라는 라벨을 마케팅에 활용할 정도입니다.

◇사람의 질병 치료에서도 효과

유전자 편집 기술은 사람에도 적용됩니다. 유전에서 비롯된 난치병 극복이나 치료가 대표적입니다. 다우드나 교수가 창업한 인텔리아 세러퓨틱스는 손상된 간 단백질이 혈액에 쌓이면서 생기는 증상인 ‘트랜스레틴 아밀로이드증’을 유전자 편집으로 치료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유전자 편집은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방식입니다. 단 한번에 완치가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스위스 크리스퍼 세러퓨틱스는 난치성 빈혈 환자 수십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대부분 증상이 개선되는 효과를 나타냈다고 발표했습니다. 콜레스테롤 저하, 신경 손상을 일으키는 유전 질환 샤르코-마리-투스병 등의 임상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흑인들에서 주로 나타나는 겸상적혈구병의 경우 올해 정식 치료법으로 승인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개발해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NIH

유전적 발병 요인이 높은 각종 암이나 신경 질환에도 크리스퍼가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를 모습니다. 물론 사람에 대해 크리스퍼를 적용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높습니다. 실제로 2018년 중국에서는 유전자 편집으로 난치병에 걸리지 않는 쌍둥이가 태어나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전세계 과학자들이 크리스퍼 사용에서 윤리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안전성 아무리 설득해도 지나치지 않아

GMO가 안전하지 않다는 과학적 증거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검증된 과학적 차원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퓨리서치의 201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1%는 GMO가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크리스퍼는 GMO와 다를까요. 과학자들의 답은 ‘그렇다’입니다. GMO과 크리스퍼의 가장 큰 차이는 ‘외부 유전자 도입’ 여부입니다. GMO가 기본적으로 원래 동식물에 없었던 유전자를 집어 넣어 재조합하는 방식이라면, 크리스퍼는 원래 갖고 있는 유전자를 편집하는 기술입니다. 동식물의 유전자를 편집했을 때 생길 변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다만 크리스퍼 역시 GMO와 같은 비호감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해 아이오와 주립대 연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75%는 유전자 편집 식품에 GMO와 마찬가지로 라벨을 붙여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편견과 오해를 뛰어넘을 증거와 명백한 혜택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보다 적극적인 연구로 유전자 편집의 안전성을 알리는 것은 물론, 밀과 쌀의 수확량 증대 같은 확실한 이득을 보여주면서 당위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죠. ‘나는 당장이라도 먹을 수 있다’ 같은 발언으로는 충분히 않다는 겁니다. 대중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입니다.

박건형의 홀리테크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80905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